주간동아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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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의 정치학

르포 |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잠정 중단으로 들끓는 울산

대책 없이 원전 짓던 40년 ‘적폐’의 현주소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7-24 10: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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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사람이 진짜 많았어요. 성수기엔 인파에 휩쓸려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한여름에,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해변이 텅 비었잖아요.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에서 만난 장명대 씨는 원자력발전소(원전) 얘기를 꺼내자 얼굴빛이 흐려졌다. 진하해수욕장은 신고리 6호기 건설 현장에서 10km쯤 떨어져 있다. 차로 2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이곳 해변에서 매생이국밥집을 운영하는 장씨는 “원전을 짓네 마네 하면서 동네가 시끄러워진 이후 장사가 엉망이 됐다”고 했다.

    “외부에선 서생면 사람들이 원전 덕에 다 잘 먹고 잘사는 줄 알죠. 전혀 아닙니다. 난 원전 없을 때가 훨씬 좋았어요.”

    장씨의 얘기다. 그를 만난 7월 18일 울산은 폭염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 전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잠정 중단을 결정한 데 대한 논쟁도 곳곳에서 뜨거웠다.





    어촌마을 갈라놓은 원전 논란

    신고리 5, 6호기는 서생면 남동쪽 끝에 있는 작은 어촌 ‘신리마을’에 건설될 예정이었다. 지난해 상업운전을 시작한 서생면의 신고리 3호기와 그 옆에서 공사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인 신고리 4호기(6월 말 현재 공정률 99.55%) 바로 옆에 터를 잡고, 지난해 여름 첫 삽을 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탈핵 드라이브’가 본격화하면서 7월 14일 관련 작업이 잠정 중단된 것이다. 

    신고리 5, 6호기와 맞닿은 신리마을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붉고 노란 글씨가 적힌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리마을 주민 생존권 위협하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 철회하라!’ 등의 글귀가 선명했다. 그러나 오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한 주민은 “동네 사람 대부분이 서생면사무소에서 열리는 한수원 간담회장에 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간담회장엔 이관섭 한수원 사장이 앉아 있었다. 이 사장은 주민들에게 “원전 영구 중단을 막고자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참석자들의 분노는 쉬 가시지 않는 듯 보였다. 이상대 원전 건설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장은 “국무위원과 한수원 이사진의 집 앞에서 개별 농성을 해서라도 원전 중단 결정을 막아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왜 원전을 지어야 하는지 물었다.

    “저렇게 짓다 말면 보상도 안 해준다 아닙니까. 마을이 이미 다 망가졌는데 여기서 어떻게 그냥 살라는 거요.”

    신리마을에서 5대째 살아왔다는 주민의 얘기다. 그는 면사무소 밖으로 내다보이는 신리마을 해안선을 가리키며 “저기 바다를 다 벽으로 막아놓은 거 보이는교”라고 했다.

    “저기 공사한다고 땅을 얼마나 들이팠는지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덜덜 떨렸어요. 그 통에 물고기가 다 도망갔고, 우리 집도 지붕이 다 깨졌죠. 좀 지나면 보상금 받고 조용한 데로 이사 가겠지 싶어 대충 고치고 말았어요. 그거 하는 데만도 350만 원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10원 한 장 준 사람이 없습니다.”

    신리마을에서 농사짓고, 해녀로도 일했다는 올해 68세 주민이 분노를 토해내는 사이 다른 주민들도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던 다른 주민이 “우리 모두 보상 문제가 걸려 있다”고 귀띔해줬다.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고리에 원전 들어온 지 40년 됐다. 우리도 원전 위험한 거 알지만 나라가 필요하다니까 그동안 희생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 ‘주민 위해 중단’한다는 거냐”며 “그럴 거면 원전을 싹 다 없애든가, 아니면 오락가락하지 말고 애초 약속을 지켜주면 좋겠다”고 했다.



    전기는 모두에게, 피해는 ‘그들’에게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제작한 ‘국내원전현황’ 인포그래픽을 보면 우리나라 원전이 동남부 해안 쪽에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에 고리, 신고리 원전 10개가 모여 있는데, 이 가운데 고리 1호기는 6월 18일 가동을 멈췄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여전히 원전 7개가 남는다. 경북 경주의 월성 1~4호기, 신월성 1, 2호기를 포함하면 13개다. 경북 울진군에서는 현재 신한울 원전 1, 2호기 건설 마무리 작업이 한창(6월 말 현재 공정률 94.52%)이다. 이것까지 포함하면 15개다(그림 참조). 

    원전업계는 보통 원전 반경 30km를 ‘방사능 비상구역’으로 본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일본 정부는 사고 현장 30km 이내 지역에 피난 혹은 옥내 대피 지시를 내렸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울주군 12개 읍·면은 모두 방사능 비상구역이다. 특히 ‘길을 걷다 돌아보면 이쪽엔 사돈, 저쪽엔 사촌이 있다’고 할 만큼 작은 어촌공동체인 신리마을은 전체가 원전의 직접 영향권에 든다.

    이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삶의 터전을 상당 부분 원전에 양도해왔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전 반경 560m 안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원전 터가 정해지면 해당 지역 주민은 집과 땅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신고리 1, 2호기 건립 때 신리마을 행정구역 중 40만여㎡(약 13만 평)가 편입됐다. 3, 4호기 건립 때 다시 54만여㎡(약 18만 평), 5, 6호기 건설이 결정되면서 18만여㎡(약 6만 평)가 또 쪼개졌다.  

    한 주민에 따르면 2010년 겨울 신고리 5, 6호기를 신고리 3, 4호기 옆에 나란히 짓는 것으로 결정됐을 때 신리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신리마을 주민 약 40%의 주거지가 거주제한구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해당 구역에 살지 않는 주민을 포함해 마을 전체를 이주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청와대에 내는 등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이 뜻이 받아들여져 2014년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인가됐을 때 한수원은 신리마을 전체에 대한 보상금 1538억 원을 울주군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돈의 집행과 관련해 주민 간 의견 차가 생기면서 이주 및 보상이 차일피일 미뤄졌다는 점이다. 신리마을은 ‘신리마을 보상 및 이주생계대책위원회’와 ‘신리마을 이주비상대책위원회’로 갈라져 긴 다툼을 시작했고, 이 문제가 채 해결되기 전 ‘원전 건설 잠정 중단’이라는 ‘폭탄’이 마을에 떨어졌다. 지금 상당수 신리마을 주민은 이러다가 원전 건설이 영구 중단되고 보상 논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은 ‘영구 중단’ 사태만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방침이라 영구 중단을 가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고만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3개월 동안 ‘공론화’ 절차를 거친 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재개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탈핵’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 후보도 제시한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또 2월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등은 원전 토지 경계선으로부터 30km 이내 거주 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설 경우 특정 지역에 추가로 원전을 짓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원자력안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보수층에서도 원전이 집중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큰 셈이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현재 반원전 시민단체들은 “울산 일대의 원전 주변 인구가 380만 명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사무국장은 “울산 땅이 세계 최대 핵밀집지역이자 세계 최대 핵 인근 인구밀집지역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영구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울산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살기 위해’ 원전 건설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신리마을에서 약 6km 떨어진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은 내륙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정윤 씨에게 원전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간절곶에서 신리마을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리켰다. 신리마을 주민이 시내에 나갈 때 이용하는 도로라고 했다. 차선이 하나뿐이라 육중한 공사차량이 천천히 지나가면 꼼짝없이 꽁무니를 따라가야 한다. “원전 지어서 동네가 좋아졌으면 도로가 여적 이 모양이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김씨의 얼굴이 피로해보였다.

    2015년 12월 21일 울주군의회 회의록을 보면 김민식 군의원(원전특별위원회 위원)도 이 지역 도로 문제를 지적했다. 원전밀집지역의 좁은 도로가 주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면서 ‘전반적으로 원전 부분이 다 밀집돼 있는 부분에서 대피로라든지 제반시설, 기반시설이 지금 전혀 진행이 안 돼 있는데 (중략) 어느 천년에 이걸 하는지 (중략) 한번 말씀해보십시오’라고 질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도로는 좁고, 안전장치도 부족하다. 그렇게 열악한 터에 계속 원전을 짓겠다던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건설 중단을 결정하면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보려던 주민들만 더 힘든 처지에 빠져버렸다. 그 과정에서 지난 40년간 쌓인 문제와 갈등이 일거에 폭발하는 모양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대한 울산 정서는 지금 찬반이 팽팽한 걸로 보입니다. 울주군 의회 내 분위기도 그래요.”

    김민식 의원 얘기다. 그 갈등을 3개월짜리 공론화위원회가 풀어낼 수 있을까. 답답한 질문이 굽이진 도로처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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