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 부의 불평등 논쟁에 돌풍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지난해 9월 방한했을 때 일이다. 피케티는 한 청중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불평등이 성장동력이라는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디턴과 자신의 주장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디턴은 정말로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했을까. ‘한국경제신문’(한경)에 따르면 그렇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상은 계속 불평등해진다는 피케티의 주장과 달리 세상은 놀랄 정도로 평평해진다는 실증적 연구도 많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 ‘위대한 탈출’도 그런 책이다. 불평등이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켰고, 그 결과 세상은 얼마나 평등해지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경이 자회사인 한경BP에서 출간한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피케티 대항마로 디턴 동원
피케티의 해명과 달리 한경은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피케티 대 디턴’ 구도를 만들어 적극 활용했다. 처음 이 구도를 제시한 것은 정규재 한경 주필의 2014년 6월 칼럼이었다. 정 주필은 세상이 점점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힐난하면서 디턴을 대항마로 제시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 오래된 착각의 21세기 버전이다. (중략) (디턴의 ‘위대한 탈출’은) 지구는 갈수록 평등해지고 있고 부자가 될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에 붙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소개글 제목은 ‘피케티 vs. 디턴, 불평등을 논하다’로 대결 구도를 더욱 확실히 했다. 한경과 자유경제원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경련은 지난해 말 ‘위대한 탈출’에 시장경제상을 수여했다.
10월 12일 디턴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한경은 자축포를 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한경 기사에 따르면 ‘(디턴은) 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을 통해 그 어떤 시대보다 불평등을 줄이고 있다고 강조해왔다’고 썼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작성된 해설 기사는 ‘위대한 탈출은 피케티 허구 드러낸 역작’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 해설 기사는 한경이 ‘위대한 탈출’을 출간하게 된 배경을 상세히 들려준다. ‘피케티 신드롬’의 대항마로 디턴을 내세우게 됐다는 것. 기사는 학계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펼쳐지고 국내에서도 ‘1 대 99’ 논리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까지 퍼지면서 일방적으로 한쪽 주장만 확산돼선 곤란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대안을 찾자는 공감대가 컸다.’
여기서 한경이 말하는 학계란 자유경제원과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외에는 피케티와 디턴을 대립 구도로 놓고 설명하는 경제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도 ‘주간동아’ 1010호에 기고한 글에서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생각은 ‘불평등이 성장의 기회’라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며 ‘오히려 소득불평등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민주주의라는 정치 문제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피케티와 유사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한경이 ‘피케티 대 디턴’ 프레임으로 디턴과 그의 저서를 홍보해온 탓에 노벨상 수상 발표가 나자 국내 언론들이 한경의 프레임을 가져다 디턴을 소개했고, 디턴은 그렇게 피케티의 호적수가 됐다.
“저서의 전반적 성격과 취지를 심각하게 왜곡”
하지만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에 심각한 왜곡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0월 18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번역본이 원문 내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저자 서문을 아예 삭제하고 서설(introduction)도 원문의 3분의 1만 번역했으며 목차 제목도 대부분 바꿨다는 것. 논란이 일자 출판사인 한경BP 측이 해명에 나섰다.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었던 편집상의 문제”였을 뿐 “왜곡 의도나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논란에 대해 디턴 교수에서 설명했고 다음 판 인쇄 때 이를 수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경 측 해명에 대해 김공회 연구위원은 본문 내용까지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김 연구위원은 책의 제5장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는데 그 결과 상당히 많은 분량의 원문 단락이 번역본에서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5장 후반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번역본에서 빠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권력과 부를 가진 엘리트는 과거 경제성장을 억압한 바 있으며, 이들이 경제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를 침식시킬 수 있다면 다시 그리할 수 있다.’ ‘은행가와 금융가가 자신들의 사회적 인센티브를 과장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은행업과 금융업은 너무 비대해질 테고 이로 인해 초래될 불평등은 막을 수 없다.’(기자 번역)
김 연구위원은 “한경BP는 책 전체의 구성과 각 장절의 제목을 변경함으로써, 그리고 저자의 견해가 들어간 중요한 부분들을 번역에서 뺌으로써 ‘위대한 탈출’의 전반적인 성격과 취지를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결론지었다. “그 왜곡의 ‘방향’으로 미뤄볼 때, 나는 이것이 한경BP와 그 배후에 있는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 식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탈출’의 원문을 출판한 프린스턴대 출판부도 10월 22일 성명을 냈다. ‘한경BP는 현 한국어판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한경BP는 번역을 새로 할 것이며 디턴 교수의 책 원문을 정확하게 반영했는지 독립적인 검토를 거칠 것이다.’ 단순히 다음 판에서 지적된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한경 측의 처음 성명과는 내용이 다르다. ‘독립적인 검토’를 언급한 것은 프린스턴대 출판부도 한경이 원문 내용을 어느 정도 훼손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한국어판을 구매한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경BP 측은 “현재 프린스턴대 출판부가 개정판 내용에 대한 승인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승인이 나서 책을 새로 제작한 후에 (기존 한국어판에 대한) 교환 등의 문제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디턴은 정말로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주장했을까. ‘한국경제신문’(한경)에 따르면 그렇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상은 계속 불평등해진다는 피케티의 주장과 달리 세상은 놀랄 정도로 평평해진다는 실증적 연구도 많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 ‘위대한 탈출’도 그런 책이다. 불평등이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켰고, 그 결과 세상은 얼마나 평등해지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경이 자회사인 한경BP에서 출간한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피케티 대항마로 디턴 동원
피케티의 해명과 달리 한경은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피케티 대 디턴’ 구도를 만들어 적극 활용했다. 처음 이 구도를 제시한 것은 정규재 한경 주필의 2014년 6월 칼럼이었다. 정 주필은 세상이 점점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힐난하면서 디턴을 대항마로 제시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 오래된 착각의 21세기 버전이다. (중략) (디턴의 ‘위대한 탈출’은) 지구는 갈수록 평등해지고 있고 부자가 될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에 붙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소개글 제목은 ‘피케티 vs. 디턴, 불평등을 논하다’로 대결 구도를 더욱 확실히 했다. 한경과 자유경제원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전경련은 지난해 말 ‘위대한 탈출’에 시장경제상을 수여했다.
10월 12일 디턴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한경은 자축포를 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한경 기사에 따르면 ‘(디턴은) 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을 통해 그 어떤 시대보다 불평등을 줄이고 있다고 강조해왔다’고 썼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작성된 해설 기사는 ‘위대한 탈출은 피케티 허구 드러낸 역작’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 해설 기사는 한경이 ‘위대한 탈출’을 출간하게 된 배경을 상세히 들려준다. ‘피케티 신드롬’의 대항마로 디턴을 내세우게 됐다는 것. 기사는 학계의 한 관계자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펼쳐지고 국내에서도 ‘1 대 99’ 논리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까지 퍼지면서 일방적으로 한쪽 주장만 확산돼선 곤란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대안을 찾자는 공감대가 컸다.’
여기서 한경이 말하는 학계란 자유경제원과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외에는 피케티와 디턴을 대립 구도로 놓고 설명하는 경제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도 ‘주간동아’ 1010호에 기고한 글에서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생각은 ‘불평등이 성장의 기회’라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며 ‘오히려 소득불평등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민주주의라는 정치 문제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피케티와 유사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한경이 ‘피케티 대 디턴’ 프레임으로 디턴과 그의 저서를 홍보해온 탓에 노벨상 수상 발표가 나자 국내 언론들이 한경의 프레임을 가져다 디턴을 소개했고, 디턴은 그렇게 피케티의 호적수가 됐다.
“저서의 전반적 성격과 취지를 심각하게 왜곡”
하지만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에 심각한 왜곡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0월 18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번역본이 원문 내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저자 서문을 아예 삭제하고 서설(introduction)도 원문의 3분의 1만 번역했으며 목차 제목도 대부분 바꿨다는 것. 논란이 일자 출판사인 한경BP 측이 해명에 나섰다.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었던 편집상의 문제”였을 뿐 “왜곡 의도나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논란에 대해 디턴 교수에서 설명했고 다음 판 인쇄 때 이를 수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경 측 해명에 대해 김공회 연구위원은 본문 내용까지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김 연구위원은 책의 제5장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는데 그 결과 상당히 많은 분량의 원문 단락이 번역본에서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5장 후반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번역본에서 빠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권력과 부를 가진 엘리트는 과거 경제성장을 억압한 바 있으며, 이들이 경제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제도를 침식시킬 수 있다면 다시 그리할 수 있다.’ ‘은행가와 금융가가 자신들의 사회적 인센티브를 과장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은행업과 금융업은 너무 비대해질 테고 이로 인해 초래될 불평등은 막을 수 없다.’(기자 번역)
김 연구위원은 “한경BP는 책 전체의 구성과 각 장절의 제목을 변경함으로써, 그리고 저자의 견해가 들어간 중요한 부분들을 번역에서 뺌으로써 ‘위대한 탈출’의 전반적인 성격과 취지를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결론지었다. “그 왜곡의 ‘방향’으로 미뤄볼 때, 나는 이것이 한경BP와 그 배후에 있는 한국경제신문과 자유경제원 식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탈출’의 원문을 출판한 프린스턴대 출판부도 10월 22일 성명을 냈다. ‘한경BP는 현 한국어판의 판매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한경BP는 번역을 새로 할 것이며 디턴 교수의 책 원문을 정확하게 반영했는지 독립적인 검토를 거칠 것이다.’ 단순히 다음 판에서 지적된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한경 측의 처음 성명과는 내용이 다르다. ‘독립적인 검토’를 언급한 것은 프린스턴대 출판부도 한경이 원문 내용을 어느 정도 훼손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한국어판을 구매한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경BP 측은 “현재 프린스턴대 출판부가 개정판 내용에 대한 승인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승인이 나서 책을 새로 제작한 후에 (기존 한국어판에 대한) 교환 등의 문제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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