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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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화해 행보, 낮고 소외된 자 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 파리=전승훈 동아일보 기자 raphy@donga.com

    입력2014-12-22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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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는 화해 행보, 낮고 소외된 자 곁으로

    세월호 참사로 집단우울증에 빠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세월호 참사로 집단우울증에 빠졌던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교황은 종교를 떠나 분단과 이념 갈등, 빈부격차로 찢긴 한국인의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국내 정치지도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위로와 행복감을 안겨줬다. 교황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세월호 유가족, 일제의 종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주노동자, 새터민 등 소외된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며 껴안았다.

    일각에서는 교황의 행보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교황은 “인간적 슬픔에 빠진 사람 앞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순 없다”고 말했다. AP통신은 “극심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교황의 발언은 교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큰 지지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초 미국 대중음악잡지 ‘롤링스톤’의 표지를 장식하며 한 해를 시작했다. 롤링스톤은 교황이 종교와 성별, 세대를 넘어 구가하는 인기를 분석하면서 그를 ‘록스타 교황’이라고 불렀다. 교황은 무엇보다 ‘가난한 자의 벗’으로서 소외계층에 다가서고, 부패를 척결하는 용기 있는 행보로 세계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교황은 이탈리아 마피아 본거지를 찾아 “마피아는 악의 숭배자”라며 파문을 선언해 암살 위협을 받기도 했으며, 온몸이 피부병으로 뒤덮인 노숙자에게 입을 맞추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교황은 한국 외에도 정치적 분쟁과 종교 갈등이 극심한 곳에서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다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지 팔레스티나(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 지역)를 방문했다. 방문 중 예고 없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갈라놓은 분리장벽에 서서 기도하는가 하면, 이스라엘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올리브나무를 함께 심기도 했다. 교황은 터키를 방문해서는 이슬람사원인 술탄아흐메트 자미(블루 모스크)를 방문해 메카를 향해 2분 동안 눈을 감고 있는 등 종교 간 대화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개혁을 내건 교황의 행보는 가톨릭 내부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0월 동성애, 동거, 이혼, 재혼 등 ‘가족’을 주제로 열린 천주교 세계주교대의원대회(주교 시노드)가 절정이었다. 시노드 보고서는 ‘동성애자도 기독교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은사와 자질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환영하는 교회를 만나길 원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내년 시노드 정기총회에서 최종 채택될 보고서는 향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세계 각국의 법체계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러한 시노드 논쟁은 보수파 성직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보수파의 대부’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도하는 교회는 방향타 없는 배와 같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버크 추기경은 시노드 직후 교황청 대심원장(대법원장)직에서 경질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독교와 현대 과학의 오랜 쟁점이던 ‘진화론’과 ‘창조론’이 모순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12월 17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78세 생일을 축하하는 탱고 파티가 열렸다. 수백 명의 축하객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좋아하는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 것이다.

    고령에도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준비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만, 삶이 선물한 좋은 일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삶은 기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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