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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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사관 ‘조명철 사건’ 은폐 의혹

실종신고 받고도 늑장 대응…국정원 등 본국에 보고조차 안해

  • 입력2006-02-21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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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대사관 ‘조명철 사건’ 은폐 의혹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박사 납치 사건은 주중 한국대사관이 실종 사실을 사전에 신고받고도 초기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아 당사자들의 피해를 가중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납치됐던 조박사 일행에 대한 최초 신고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애초 조명철박사 일행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경태원장으로부터 조박사를 포함한 2명의 실종 사실을 통보받았으나 경찰청 외사협력관에게도 통보하지 않은 것은 물론 본국에도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명철박사와 동료 연구원 정모 박사가 차를 마시기 위해 숙소인 켐핀스키 호텔을 나온 시각은 이미 알려진 대로 2월1일 밤 11시경. 이날 저녁식사 자리에는 조박사 일행의 팀장격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경태원장 일행 4명뿐 아니라 베이징 주재 현대 계열사 책임자 중 한명인 김모씨도 함께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숙소에 들어왔다가 이원장은 잠자리에 들었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조박사와 정박사만 차를 마시기 위해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가 조선족 최모씨 등을 만나는 바람에 납치사건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이경태원장 일행은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비행기 탑승시간에 쫓겨 일단 공항으로 향했다. 이원장 일행이 탑승할 비행기는 오후 1시 베이징을 출발하는 대한항공 KE852편. 일반 탑승객들 대부분이 탑승 수속을 마칠 때까지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이원장은 주중 한국대사관에 최초 신고를 하게 된다. 이때가 2월2일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다음은 이경태원장의 증언.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으로부터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원 주재관의 휴대전화 번호를 넘겨받아 두 사람의 실종 사실을 신고했다. 이 국정원 관계자는 ‘알았다’고 이야기한 뒤 영사부에도 신고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에 쫓겨 영사부에는 연구원 베이징사무소 박모 소장에게 통보하라고 지시한 뒤 비행기에 탑승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국정원 주재관 A씨도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 이원장의 신고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 B공사가 조박사 일행이 실종됐다는 전화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점심식사를 마치고 2시경 조박사 일행이 무사하다는 전화를 받고 더 이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누구로부터 그러한 전화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실종신고를 받고 외사협력관에게 이야기해서 범인들이 요구했던 몸값의 인출을 막는 등 너무나 신속히 조처했기 때문에 조박사 일행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의 경찰청 외사협력관은 조박사가 귀국한 2월3일에야 사건 개요를 알았다고 말해 이 관계자의 증언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모 외사협력관은 “2월3일 아침 정무2과에서 사건 전모를 알려줘서 그제서야 납치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 알았기 때문에 경찰청에도 그때 보고했다. 우리가 한 조처는 계좌에서 자금이 인출되지 못하도록 한 것뿐이다” 고 말했다.

    당연히 경찰청에서 이 사건을 접수한 것은 2월3일 오후 4시경 조명철박사가 귀국한 이후. 조박사는 이날 오후 8시경 관할 경찰서인 성동서에 사건을 신고했다. 국정원이 사건 내용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는 동안, 사건이 일어난 뒤 이틀이 지날 때까지도 경찰청은 전혀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조씨가 귀국할 때까지 경찰청에 통보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원장의 신고를 받은 주중 한국대사관의 국정원 주재관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점심을 먹고 있는 사이’ 조명철박사와 정모 박사는 납치범들로부터 구타와 협박에 시달리며 죽음의 선을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조명철박사는 이원장이 두 사람의 실종 사실을 신고한 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 사무소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호텔로 가고 있으며 무사하다’고 전해온 바 있다. 그러나 조박사에 따르면 이는 납치범들이 옆구리에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발언한 것이다. 조박사의 증언.

    “2일 오후 감금돼 있는 상황에서 베이징 사무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범인들이 시키는 대로 ‘무사하다’고 전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들은 내내 내 옆구리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중 한국대사관에 조박사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린 사람은 누구일까. 이는 바로 현대 계열사의 김모씨다. 그는 “이원장 일행이 떠나고 난 지 5시간이 지난 2월2일 오후 6시경 조박사와 통화한 뒤 그의 납치 사실을 주중 한국대사관의 B공사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김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의 국정원 관계자 A씨는 ‘2시쯤 무사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실종신고를 받고 실종보고서를 쓰려고 하던 중 무사하다는 연락이 와서 (조박사의 신병에 대한) 더 이상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모 부장으로부터 조박사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는 관계자 B씨는 실종신고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조씨 납치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뒤 지난 2월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납치범들로부터 탈출한 사실을 주중 대사관을 통해 통보받고 북한 공작 조직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추적하는 한편 이 사실을 조씨의 신병을 관리하고 있는 경찰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조씨의 납치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은 조씨가 여권을 가지러 켐핀스키 호텔에 도착해 격투 끝에 탈출에 성공한 다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주중 한국대사관측이 국정원 주재관을 통해 실종 사실을 안 것은 적어도 조박사가 감금당한 상태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던 낮 12시경, 그리고 탈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날 오후 6시경으로 추정된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우리가 사건을 처음 보고받은 것은 2월2일 조씨와 정씨가 풀려나 주중 한국대사관에 신고해온 뒤였다”고 말했다. 18시간의 납치극이 조박사와 정박사의 탈출극으로 완전히 종료된 이후에야 서울에 보고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이원장으로부터 2월2일 12시경 조박사 실종 사실에 대한 신고를 받은 주중 한국대사관측은 적어도 6시간 동안 서울에 대한 보고는 물론 경찰청 외사협력관에 대한 통보 등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측은 기자의 사실 확인 요구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자금 인출을 막았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주중 한국대사관측이 귀순자 출신에다 김일성대 교수 출신인 조명철씨의 베이징 출장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신변 보호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반 귀순자들의 경우 귀순후 2년 동안 거주지 관할 경찰서의 보안과 담당관으로부터 정착 지원 및 보호를 받게 된다. 조씨가 귀순한 것은 94년 7월이므로 규정대로만 따지자면 조씨가 아직까지도 특별 보호를 받아야 할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은 조씨의 베이징 출장과 실종 사실 역시 조씨가 귀국후 성동서에 신고하기 훨씬 전에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도 “여권이나 비자 등 출국수속 과정에서도 출국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의 신변을 보호해야 할 대사관이 실종신고를 받고 머뭇거리면서 이를 은폐하는 사이 조명철박사는 몸에 사제 폭탄이 장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납치범들과 격투를 벌여 스스로 탈출했던 것이다. 북한과 대치하는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의 정보기관은 실종상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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