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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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네오콘’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

업무도 리더십도 세계관도 미국식…“조직 변화 적을 것”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3-13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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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네오콘’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
    “한마디로 줄이자면 ‘한국의 네오콘’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모두 마찬가지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선악(善惡) 대결에 가까운 안보관을 가졌다는 점이 전자라면, 미국식 시스템에 대한 신념과 정보기관 고유의 임무를 중시하는 탈(脫)정치적 태도는 후자다. ‘이병호 국정원’의 미래를 점칠 변수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않으리라 본다.”(전직 국가정보원 간부)

    3월 초순 이병호(75)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기간 집무실로 사용한 서울 강남 도곡동 빌딩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검은색 고급 세단으로 겹겹이 이중 주차된 지하주차장에는 차 한 대 세울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 안보부처를 담당해온 직원들을 차출해 급히 만든 청문회 준비팀은 물론, 현안을 보고하기 위해 달려온 간부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신군부, 워싱턴, 현실주의

    새 수장으로 지목된 이후 이 후보자가 어떤 인물인지가 정부 안팎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970년 중앙정보부에 입부해 96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2차장을 끝으로 조직을 떠난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아는 이가 적었다. 그가 퇴직할 무렵 말단 요원이었을 직원들은 19년이 지난 지금 실·국장급 중견간부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가 누구인지 설명해줄 인물들은 퇴직한 국정원 간부들과 군 생활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두에 소개한 전직 간부의 말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 후보자의 캐릭터 가운데 핵심적인 키워드를 모두 담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19기인 이 후보자의 젊은 시절 최대 강점은 단연 영어였다. 미국에 체류한 경험은 없지만 ‘타임’지를 밑줄 쳐가며 독학한 실력 덕분에 권진호 전 대통령비서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19기를 대표하는 영어통으로 불렸다는 게 사관학교 선후배들의 회고다. 이 후보자가 정보기관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 역시 중앙정보부 산하 정보학교에 영어 교수요원으로 차출되면서부터. 창설 직후에는 김종필 초대 부장을 비롯한 요직 대부분을 육사 출신이 차지했지만, 이 무렵은 이미 1965년부터 선발된 정규과정 출신이 대세를 이뤄가던 시기였다. 능력과 성실성, 모나지 않은 성품을 인정받아 정보부에 남긴 했어도 처음부터 ‘핵심 요원’은 아니었다는 게 옛 동료들의 평가다.



    관운이 트인 결정적 계기는 1979년 10·26사건과 신군부의 등장이었다. 수장이 대통령을 시해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전두환이 이끄는 보안사령부가 정보부를 점령하다시피 한 시기, 육사 출신 요원들이 승진가도를 달린 것은 불문가지다. 신군부 실세들과 두세 기수 차이였던 이 후보자도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해외파트 핵심으로 손꼽히는 미주과 과장과 주미대사관 참사관, 국제국 국장을 거쳐 주미대사관 공사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줄줄이 밟았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의 공직 경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김영삼 정부 초기 안기부 2차장에 발탁된 것만 해도 개인적인 업무 능력이나 적을 만들지 않는 특유의 성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군은 물론 정부 곳곳에서 신군부 인맥을 제거하는 게 절대 과제였던 시기에도 살아남아 등용된 것은 조직 전체에 걸쳐 비토 세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실했던 캐릭터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눈여겨볼 것은 이 후보자의 경력을 관통하는 ‘미국’과 ‘보수’라는 단어다. 주미대사관에 파견 나가 있는 동안 맡았던 일은 주로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측 주요 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담당하는 연락관이었다. 이 시기는 레이건 행정부의 강력한 우파 안보정책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 그가 석사과정을 이수한 조지타운대 역시 가톨릭을 배경으로 한 보수적 기풍으로 유명하다. 당시 형성된 공화당 안보정책 엘리트 그룹이 훗날 부시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의 원류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후보자의 안보관 또한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했던 당대 미국 보수세력의 현실주의와 떼놓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관 역시 미국을 중심에 놓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한미동맹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이 후보자가 남긴 글 곳곳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부하직원을 이끌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미국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인간관계로 업무를 풀어가는 다른 ‘한국식 간부’와 달리, 활발한 토론과 의견 개진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는 것. 생각이 다르거나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을 굳이 내 편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한 충돌이나 잡음을 만드는 것도 아닌 ‘쿨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75세 고령에도 70점대를 자랑하는 골프 실력 또한 미국 근무 시절 만들어진 것이라는 후문. 최근까지 몸담았던 울산대 초빙교수직 역시 재단이사장이던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이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맺은 인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네오콘’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990년대 중반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서울 이문동 안기부 해외파트 청사.

    이병기 2기?

    ‘한국의 네오콘’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3월 9일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왼쪽)이 서울공항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정보기관의 기능에 대한 시선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안보가 임무일 뿐 정치나 경제 등 다른 분야는 고유 업무가 아니라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FBI(연방수사국)와 CIA가 나뉘어 있는 미국처럼 국정원도 국내담당 조직과 해외담당 조직을 분리해 별도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 역시 ‘미국식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것과 맥이 닿는다. 심지어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의 새로운 임무로 거론되곤 하던 산업정보 수집에도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 관련 정보 수집은 산업스파이나 다름없으므로 정보기관이 할 일이 아니라고 강하게 역설했다는 것이다. 한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이 후보자가 하드웨어 측면에서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나 모두 ‘21세기 변화한 국정원’이 필요로 하는 리더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러 기고문에서 그간 국정원이 남긴 다양한 한계와 실패는 안보 임무를 수행하다 불가피하게 야기된 부산물이므로 섣불리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내비친 것 또한 ‘국정원 개혁’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현재 시점에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해외 분야에서만 일해 정무적 감각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마찬가지다. 정치 정보 수집 등 섣부른 정치 개입을 경계하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지만, 용산참사를 ‘폭동’에 비유한 칼럼 등 정치적 파장을 가늠하는 능력에서의 한계가 향후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국가 전체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안보기구 고유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태도로는 난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재준과 이병기 두 전임 국정원장과 비교해보면 한층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완고한 보수적 시각이나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은 일견 남 전 원장을 연상케 하기 때문. 실제로 중국을 ‘배려’하는 박근혜 청와대의 행보에 대해 남 전 원장은 상당히 비판적이었고, 이는 적잖은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안보부처 안팎의 시각이다.

    반면 누구와도 척을 지지 않는 온화한 성격은 남 전 원장보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에 더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남재준식(式) 원칙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이 후보자와 오랜 근무 인연을 갖고 있는 한 전직 국정원 차장은 “야권과의 관계 역시 역대 어느 원장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를 넘나드는 막강한 인맥으로 국정원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방어해온 이병기 실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후보자는 이 실장의 전임자로 안기부 2차장을 지냈고, 이번에는 그의 뒤를 이어 국정원장을 맡게 되는 등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병기 원장 재임 기간 전직 간부들로 구성된 자문단의 단장을 맡아 주요 작업을 함께 논의하면서, 현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의견을 개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갑작스레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된 그를 대신해 후임자로 낙점된 배경에도 이 실장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는 게 안보당국 안팎의 정설. ‘이병호 국정원’이 ‘이병기 국정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배경이다.

    가장 근본적인 한계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문단장은 전직 간부 가운데 최선임자였기 때문에 맡은 것에 불과하고, 자문단 회의 역시 서너 차례뿐이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외견상 대통령과 뚜렷한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 후보자의 발탁이 이병기 실장의 천거 때문이라는 설명 역시 박근혜 정부의 그간 인사 패턴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정보기관 수장에 앉힐 청와대가 아니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인연’이 작동했을 개연성이 더 크다는 시각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새 원장의 임명과 함께 국정원에 거센 변화 바람이 불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병기 전 원장은 지난해 8월 이른바 ‘청와대의 국정원 인사 개입 파동’ 이후 개혁 대신 내부조직 안정화에 힘을 쏟았고, 얼마 전 이뤄진 간부 인사 역시 승진 발령만 냈을 뿐 보직과 부서 발령은 미완성 상태로 남겨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는 전임자가 만들어놓은 길을 밟아나가는 것으로 원장 직무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작 국정원 안팎에서 주목하는 이 후보자의 약한 고리는 따로 있다. 안기부 재직 시절 육사 출신을 편애했다는 풍문 아닌 풍문이다. ‘자신이 믿는 사람들’이 추천한 인물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는 것.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년 4~5명 수준의 육사 출신 장교가 안기부에 들어왔고 이후에도 부정기 특별채용 형식으로 채용한 경우가 적잖아서, 현재 국정원에 근무하는 육사 출신 직원의 숫자는 수십 명 규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연령으로는 40대 중·후반 이상, 직급으로는 실·국장 보직대상자에 해당한다. 정보기관과 군의 오랜 긴장관계에, 군 출신 외부 인사들이 요직에 등용됐던 남 전 원장 시기의 내부 분위기까지 고려하면 더욱 눈길이 가는 변수다. 또 다른 전직 간부의 말이다.

    “오늘날 국정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조직체계든 구성원이든 다양한 층위에서 개혁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대에도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다. 그러면 조직 내부에서는 ‘아, 이렇게 버티면 되는구나’ 하는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고, 혁신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 후보자 임명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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