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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쿠스타그램

없던 ‘선택장애’도 생기는 요지경 쇼핑몰

서울 스타필드 코엑스몰 ‘삐에로쑈핑’ 1호점 가보니

없던 ‘선택장애’도 생기는 요지경 쇼핑몰

없던 ‘선택장애’도 생기는 요지경 쇼핑몰
“우와, 별걸 다 파네.” “아이고, 정신없어.” “물건이 너무 많아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거 이렇게 쌓아두고 팔면 관리는 제대로 되나.” “오빠, 이거 일본에서만 팔던 건데 여기도 판다.” “◯◯야, 길 잃어버리니까 멀리 가지 말고 여기 있어.” “MD들이 약 빨았나 봐.” “대박, 성인용품도 파네?” “여기 일본 ‘돈키호테’랑 완전 비슷하지?” “재밌는 거 많다.” “아, 누가 ◯◯◯ 다 털어갔나 봐. 없어!” “여기 위에 글씨 좀 봐, 웃겨.” “아르바이트생들 이거 다 정리하려면 힘들겠다.” 

두서없는 일련의 대화는 7월 5일 오후 총 2513㎡(약 760평) 규모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지하 1, 2층 ‘삐에로쑈핑’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손님들이 한 말을 조각조각 모은 것이다. ‘삐에로쑈핑’은 6월 28일 문을 열었다. 


삐에로쑈핑 매장 입구와  지하 2층의 성인인증 존, 익살스러운 캐릭터 제품들과 문구가 눈에 띄는 삐에로 쇼핑 내부 모습들.

삐에로쑈핑 매장 입구와 지하 2층의 성인인증 존, 익살스러운 캐릭터 제품들과 문구가 눈에 띄는 삐에로 쇼핑 내부 모습들.

이날 방문객은 부모와 구경 온 아이부터 대학생 커플, 중년 남성까지 이곳에서 파는 물건만큼이나 다양했다. ‘물건 반, 사람 반’의 혼돈 속에서 평소 없던 ‘선택장애’마저 생길 것 같았다. 시끄러운 배경음악과 현란한 홍보 패널의 늪에서 한참을 허우적댄 뒤에야 입구에서 번쩍대던 ‘선택장애 있는 사람 입장 주의’ 문구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형 돈키호테?!

다양한 상품들과 현란한 광고 카피가 눈에 띄는 삐에로쑈핑 내부.

다양한 상품들과 현란한 광고 카피가 눈에 띄는 삐에로쑈핑 내부.

‘삐에로쑈핑’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시도한 새로운 유통채널 브랜드다. 이곳은 아이디어·팬시·명품·의류·뷰티·성인 용품 등 4만여 가지 물건을 파는 ‘B급 감성’ 넘치는 공간. 일본 ‘돈키호테’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매장 곳곳에 ‘돈키호테’의 향기가 묻어 있다는 걸. 실제로 정 부회장은 ‘돈키호테’를 여러 차례 방문해 ‘삐에로쑈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본 유명 잡화점 브랜드인 ‘돈키호테’는 쇼핑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다. 기념품 사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없는 것 빼고는 다 파는 콘셉트로, 식품과 생필품은 기본이고 의류와 가전제품, 성인용품 등 별의별 제품을 갖췄다. 20년 이상 이어진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서도 28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한 ‘돈키호테’. 어떻게 온라인 쇼핑 시대에 오프라인 쇼핑몰이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 부회장의 답이 바로 ‘삐에로쑈핑’이다. 

“너무 그대로 ‘카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삐에로쑈핑’은 문 열자마자 ‘대박’을 쳤다. 이마트에 따르면 ‘삐에로쑈핑’ 누적 방문객 수는 오픈 11일(7월 9일) 만에 11만 명을 넘겼다. 개점 첫 주말인 6월 30일에는 매장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줄이 100m 넘게 이어져 안전을 위해 입장 제한 시간을 뒀다. 정 부회장의 ‘히든카드’가 제대로 먹힌 것. 

‘탕진잼 핫플레이스.’ ‘FUN&CRAZY’를 콘셉트로 한 ‘삐에로쑈핑’의 공식 보도자료에 나온 소개 글이다. 주 타깃층은 ‘시발비용’과 ‘탕진잼’ ‘소확행’ ‘YOLO’ 등의 단어가 친숙한 2030세대. 비교적 수입이 많지 않은 젊은 세대가 적은 금액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탕진잼’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겠다는 게 이마트의 큰 그림이다. 


삐에로쑈핑은 지하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방문객들.

삐에로쑈핑은 지하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방문객들.

7월 5일 오후 사진기자와 함께 ‘삐에로쑈핑’ 곳곳을 둘러봤다. 출입문 바닥에는 ‘입구이자 출구이며 현생탈출구입니다’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익살스럽게 생긴 피에로 인형도 바람에 흔들흔들했다. 사진기자와 함께 돌아다니려 했으나, 공간이 좁고 물건이 너무 많아 각자 흩어져 1시간가량 지난 뒤 밖에서 다시 만났다. 

만물상 잡화점답게 1000원짜리 물건부터 고가 명품까지 4만여 가지 상품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메인 동선의 폭은 1.8m, 곤돌라 간 폭은 0.9m로 진열 매대가 촘촘했다. 통로를 지나갈 때 “실례합니다”를 연발하게 되는 구조였다. 쇼핑 편의성보다 보물찾기 하듯 매장 구석구석을 경험하며 ‘득템’할 수 있는 재미를 지향한 결과다. 이마트 관계자는 “소비자가 매장 곳곳을 탐험하다 의외의 새로운 물건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삐에로쑈핑’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안 가고 기념품 득템

없던 ‘선택장애’도 생기는 요지경 쇼핑몰
과거 한 TV 프로그램에서 남성과 여성이 쇼핑할 때 걸리는 시간이 다른 이유를 비교해 보여준 적이 있다. 여성은 어떤 제품을 사러 가서 다른 물건도 살펴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남성은 사기로 한 특정 제품에만 집중해 쇼핑 시간이 비교적 짧게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기자의 쇼핑 스타일은 후자다. 백화점에서건, 재래시장에서건 관심 없는 매장은 들어가 보지도 않는다. “어떤 물건을 어디서 사야지”라고 결정하면 10분 만에도 쇼핑을 끝낼 수 있다. 그랬기에 혼란스러웠다. 여기서는 뭘 사려고 해도 도통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까 본 물건은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누가 이 거대한 쇼핑의 미로에서 나 좀 탈출시켜줘! 

눈길을 끄는 건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 관광을 즐기는 한국인을 위한 코너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매장으로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그들을 위한 한국 기념품 코너에는 김, 과자, 홍삼, 지역별 전통주는 물론이고 케이뷰티(K-beauty) 제품과 아이돌 굿즈도 팔고 있었다. 매장 내 고객센터와 키오스크에서 택스 리펀도 받을 수 있었다. 

일본에 가지 않고도 기념품을 원스톱으로 쇼핑 가능한 코너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한 누리꾼이 ‘일본 당일치기 꿀잼’이라며 일본산 먹을거리 사진을 올렸다. 사진만 보면 영락없이 일본에서 사온 기념품이다. 그러나 ‘#현실은삐에로쑈핑’이라고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일본 아사히공장에서만 팔던 미니 아사히맥주캔이나 인기 있는 간식인 코로로 젤리, 우마이봉, 와사비 스낵 등 다양한 일본 간식을 살 수 있었다. 둘러보는 내내 ‘일렉트로마트’와 ‘다이소’를 합쳐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던 ‘선택장애’도 생기는 요지경 쇼핑몰
‘돈키호테’ 하면 ‘펭귄’ 캐릭터가 떠오르듯 여기도 자체 캐릭터가 있다. 취업준비생 마이클, 래퍼 지망생 젝손, 반려 고슴도치 빅토리아, 신원 미상의 애로호. 이 유쾌한 캐릭터들을 매장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이 그려진 유상 판매 쇼핑백에는 ‘약속 있을 시 방문 주의, 구경하다 늦을 수 있음’ ‘목적 없이 방문 주의, 예쁘고 귀여운 애정템 많이 살 수 있음’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명품도 판다. 프라다, 발렌티노, 펜디, 보테가베네타 등 다양한 명품 피혁잡화를 병행수입으로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한참 제품을 들여다보는데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뒤로 지나갔다. ‘급소 가격’이라며 특가 상품을 안내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이런 문구들은 본사에서 배포한 것도 있지만, 매장 담당 직원들이 ‘알아서’ 만든 것이다. “MD들이 약 빨았나 봐”라던 방문객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 상품 선정부터 매입, 진열 권한까지 모두 고객을 직접 대하는 매장 관리자에게 부여한 점도 ‘돈키호테’의 성공 방정식에서 따왔다. 이런 자유 덕에 유쾌하고 재치 있는 문구가 매장에 넘쳐났다.


삐~! 에로한 물건도 가득

이곳에서는 다른 매장에서 보기 힘든 성인용품과 코스프레용품을 판매한다.

이곳에서는 다른 매장에서 보기 힘든 성인용품과 코스프레용품을 판매한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조금 적응하니 ‘짜릿해! 늘 새로워! B급 감성이 최고야!’라는 느낌이 ‘뿜뿜’한 공간들이 보였다. 흡연실은 서울지하철 2호선 객차를 형상화해 만들었다. 금연 장소에서 흡연할 수 있다는 로망을 콘셉트로 삼은 것. 다양한 음료와 간식을 파는 카페도 있는데, 각각 3000원인 얼박(얼음박카스)과 소떡소떡(소시지떡꼬치)은 이미 매진이었다. 기존 대형유통업체에서는 잘 팔지 않는 성인용품과 코스프레용품, 흡연용품 등도 자유롭게 만져보고 살 수 있었다. 

‘굳이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코끼리 팬티’ 같은 속옷도 ‘초섹시’라는 단어와 함께 당당히 진열돼 있다.’ 오픈 당시 나온 기사들에 한결같이 저렇게 쓰여 있어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이 정도로 강조했는지 궁금했다. 지하 2층 성인용품 존에 걸린 색색의 코끼리 팬티(8980원), 그 정체를 확인하고서야 취재 전 “저렴하면 기념으로 하나 사 올까”라고 말한 기자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던 후배의 시선이 이해됐다. 그 옆에는 구멍이 나 있으면 안 되는 부분만 골라가며 구멍을 낸 여성용 란제리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성인인증 존에서는 리얼돌부터 SM용품, 자위용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었다. ‘니가 본 영상의 그 제품 맞다’ 같은 노골적인 문구도 적혀 있었다. ‘매장에 LV.99 19금 마스터가 있어서 궁금하면 언제든지 제품에 대해 문의하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피차 성희롱 요소가 없도록 물어볼 때 주의해야 할 것 같았다. 신분증 검사를 한다지만 이날 방문객 전원의 신분증을 검사하지는 않아서 ‘노안’ 청소년이라면 매장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우려됐다. 이날 매장에는 남자끼리 온 손님도 많았지만 적극적인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함께 구경하는 남자도 꽤 있었다.


불편함이 주는 재미

가격대는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처럼 ‘미친 가격’까지는 아니었다. 마침 얼마 전 구매한 발열 안대가 있어 살펴봤는데 ‘올리브영’이나 ‘롭스’에서 파는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향수나 음료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한 누리꾼은 ‘위트 없는 배민(배달의민족), 편의성이 빠진 돈키호테’라며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유통기한이 다 된 제품들을 저렴하게 파는 점은 ‘임박몰’과, 1000~2000원짜리 제품을 모아둔 매대가 따로 있는 점은 ‘다이소’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마트가 ‘삐에로쑈핑’처럼 기존 유통업계의 상식을 뒤엎는 장소를 선보인 이유는 온라인 쇼핑 시대에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재미’와 ‘즐거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불편하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일부러 찾아와 소비하고 싶은 매장으로 꾸려가는 것이 목표다. 이마트 관계자는 “ ‘삐에로쑈핑’이 벤치마킹한 일본 ‘돈키호테’는 지난해 기준 370여 개 매장에서 연간 8조 원가량 매출을 올렸다”며 “올해 ‘삐에로쑈핑’은 총 3개 매장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마트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매장을 점차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반기에는 서울 동대문 두타 건물에서 2호점을 만날 수 있다. 3호점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사 건물에 들어설 것으로 점쳐진다. 클릭이나 터치 몇 번이면 끝나는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에 무뎌진 소비자, 그들의 ‘지름욕’을 요망한 ‘삐에로’들이 다시 자극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일본여행온느낌 #없는게없구만 #정신줄꽉잡아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핫플레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와글와글한 명소가 궁금한가요? 검증되지 않았는데 생돈 주고 ‘도전’하는 건 조심스럽다고요? 걱정 마세요. 구희언 기자의 ‘#쿠스타그램’이 대신 찾아가 속속들이 살펴보고 알려드립니다. 가볼까 말까 고민되면 쿠스타그램을 보고 결정하세요. 인스타그램에서도 #매거진동아 #쿠스타그램 등으로 검색하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76~80)

  •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사진  =  홍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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