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스타일난다 핑크풀카페 2호점은 한쪽을 풀장처럼 꾸며놓았다. 풀장 근처 자리는 인증샷을 찍기에 좋아 인기가 많다(왼쪽). 이곳 시그니처 메뉴인 ‘스프링클 핑크 마운틴’. 물을 부으면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솟아난다.
지난해 주변의 ‘프로셀카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벽과 천장, 의자까지 파스텔톤의 분홍색으로 가득한 카페인데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 필터만 잘 입혀 올리면 봄처럼 화사한 ‘인생 사진’ ‘인생 셀피’를 건질 수 있다는 것. 스타일난다 ‘핑크풀카페(PINK POOL CAFE)’ 이야기였다.
인스타그램에서 핑크풀카페를 검색했다. 온통 분홍색인 공간과 독특한 디저트 사진이 잔뜩 떴다. ‘핑크핑크’한 아이템을 선호하거나 화사한 컬러를 좋아한다면 결코 지나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살이 찔 것 같은 달달한 디저트 사진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취향 저격 카페’ ‘분위기 갑’ ‘핑크핑크해’ ‘진짜 너무 예쁨’ ‘핑크 천국’ ‘핑크 덕후라면 꼭 가세요, 두 번 가세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추린 방문객 후기만 봐도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말 그대로 핑크 ‘덕후’를 위한 공간이다.
노는 물이 다른 카페
사방이 분홍색으로 가득한 핑크풀카페 2호점 전경.
스타일난다는 김소희 ㈜난다 대표가 2005년 오픈한 쇼핑몰이다. ‘나는 노는 물이 달라’라는 슬로건으로 젊은 여성들의 주목을 받으며 계속 승승장구했다. 2007년 김 대표는 운영사인 난다를 설립했다. 스타일난다 하면 온라인에서 옷을 잘 사지 않는 기자와 주변 남자들까지도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2009년에는 코스맥스와 생산 계약을 맺고 화장품 브랜드 ‘3CE(쓰리컨셉아이즈)’를 론칭했다. 창업 10년 만인 2015년에는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으며 이제는 호주, 일본, 중국, 홍콩,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백화점과 면세점에서도 김 대표의 특별한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다.
4월 10일에는 ‘랑콤’ ‘더바디샵’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 프랑스 로레알그룹이 3CE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 더 화제가 됐다. 3CE는 중국 내 색조화장품 인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매각 대상은 김 대표가 보유한 지분 100% 가운데 70%로, 평가액은 4000억 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스타일난다는 당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핑크풀카페도 덩달아 화제 선상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핑크풀카페는 1호점과 2호점 콘셉트가 확연히 다르다. 스타일난다 플래그십 스토어 5층에 있는 1호점 건물은 일명 핑크호텔로 불린다. 실제로 숙박할 수는 없지만 ‘호텔’과 ‘핑크’를 콘셉트로 했기 때문. 관광객은 ‘핑크빛 서울 인증샷’을 남기고자 이곳을 꾸준히 찾는다. 2호점은 ‘풀장’을 콘셉트로 잡은 것이 특징이다. 1호점과 달리 베이커리 메뉴를 특화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가보기로 했다.
4월 20일 오후 핑크풀카페 2호점을 찾았다. 평일 오후 이곳을 방문한 손님은 대부분 중국과 동남아 여행객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는 매장, 4층은 카페였다. 1층에서는 3CE 화장품과 스타일난다 의류를 팔고 있었다. 중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브랜드라 그런지, 화장대 앞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화장품을 발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매장 관계자는 “원래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과 세탁소 콘셉트의 3층을 지나자 핑크풀카페의 연분홍색 간판이 나타났다. 3층에서 계단을 올라 4층에 이르자 동행한 사진기자도 “우와, 이게 뭐야”라고 외칠 정도로 분홍 일색의 환한 공간이 나타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카페였다.
핑크 덕후의 성지
서울 홍대 앞에 있는 스타일난다 매장. 이곳 4층이 핑크풀카페 2호점이다.
핑크풀카페 2호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단연 풀장 옆 햇살이 잘 들어오는, 분홍색 의자가 있는 곳이다. 테이블이 낮아 음식을 먹기에는 불편했지만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니 해볼 만한 자리싸움이었다. 마침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라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이 가장 많이 올라온 바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단 가방을 의자에 던져 찜해놓고 디저트 코너로 향했다.
핑크풀카페는 그날 만든 빵을 그날 소진하기 때문에 너무 늦게 가면 인기 있는 메뉴는 동이 난다. 밀푀유(8000원), 하트 멜팅 무스(8000원), 쇼콜라 에그타르트(7000원) 등은 다소 가격대가 있었지만 초코 스틱파이(4500원)나 슈크림 크루아상(4500원) 등은 다른 카페와 가격이 비슷했다. 카페 관계자는 “지금은 방문객 수를 예측할 수 있어 그에 맞게 디저트를 만든다. 하지만 오픈 초기에는 방문객이 몰려 준비한 디저트 수량이 부족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이곳에서 인스타그램 인생 사진을 찍는 데 필요한 ‘배경용’ 디저트는 딱 두 가지. 시그니처 메뉴인 ‘스프링클 핑크 마운틴’과 고객이 많이 찾는 ‘팡도르’(5000원)다. 팡도르는 위에 산처럼 쌓인 슈거파우더가 매력적인 백색 디저트로, 한입 먹을 때마다 입가에 슈거파우더가 잔뜩 묻어났다. 예쁘게 먹기란 불가능했다. 한입 삼킬 때마다 옆구리에 살이 붙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은 좋아져 당 충전이 확실히 되는 것 같았다. 단것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최소 2개는 가뿐하게 먹을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살도 가뿐하게 찌겠지만.
살찔 것 같은 단맛
핑크풀카페 1호점과 달리 2호점은 베이커리에 특화돼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슈거파우더가 산처럼 쌓인 ‘팡도르’는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맛이다(왼쪽). 핑크풀카페 2호점을 찾은 사람들.
음료는 평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6000원)로 주문했다. 달콤한 디저트에 달콤한 음료까지 시켰다가는 디저트와 음료 모두 제맛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풀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면 아무래도 따뜻한 음료보다 얼음이 들어간 음료 아니겠는가. 이곳에서는 다이어터들을 위한 ‘리얼 토마토 주스’(7000원)나 ‘레몬 디톡스’(6500원)도 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여기 오니 음식보다 사진을 찍는 데 더 집중하게 됐다. 풀장 근처에서 접시를 이리 놓고 찍고, 저리 놓고 찍었다. 옆자리에 있던 중국인 커플이 질세라 사진을 찍으며 우리 테이블과 한판 경쟁을 벌였다. 아마 그들도 디저트 사진만 족히 100장은 넘게 찍었을 것이다. 연예인 화보 찍듯 분주히 촬영을 끝난 뒤에야 디저트에 포크를 찌를 수 있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잔잔한 풀장을 보고 있자니 워터파크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기대 이상의 베이커리
취재를 마치고 팡도르와 크루아상, 초코스틱파이 등을 포장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침 당 충전이 필요한 오후 5시 즈음이라 모두가 남김없이 베이커리를 ‘석션’했다. 남자 기자들의 평은 “살찌는 맛”, 여자 기자들의 평은 “달콤하니 기분 좋은 맛”이었다. 그러나 기자도 알고 독자도 알고 (아마도) 매장 직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설령 핑크풀카페의 베이커리 메뉴가 맛이 없더라도 ‘핑크색 인생샷’을 남기고 싶다면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타일난다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난다 측에 유선전화와 e메일 등으로 김소희 대표와 인터뷰를 세 차례 요청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음식을 ‘침범’하기 전 사진부터 찍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화이트나 민트 컬러의 블라우스 또는 원피스를 입고 가면 카페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분홍색 옷은 금물. 말로만 듣던 매장 벽지 컬러 옷을 입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만약 김 대표를 인터뷰했다면 “스타일난다의 옷이라면 어떤 옷이라도 이 카페와 잘 어울릴 것”이라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