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0

2012.08.13

살살 녹는 민어회? 진짜 못 말린다

민어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8-13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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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살 녹는 민어회? 진짜 못 말린다

    수족관에서 억지로 활어 상태를 유지하다 죽은 민어다. 살아 있을 때 피를 빼지 않아 이 민어의 살은 붉고 잡내가 날 수 있다.

    여름, 민어 철이다. 최근 민어에 대해 묘한 말이 퍼져 있다. 복날에 상것들은 개고기를, 양반들은 민어를 먹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민어가 서울 양반들의 복달임 음식이라는 소문이 났는데, 그 말이 확장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근거 없는 말이다.

    민어, 옛날에는 흔했다. 서해에서 무지 잡혔다. 지금은 주로 전남 해안에 어장이 형성되지만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에서도 많이 잡혔다. 민어 파시가 전남의 특정 앞바다에서만 형성되는 듯이 말하는데 인천 앞바다의 민어 파시도 아주 컸다. 민어는 흔해서 가격이 쌌고, 그러니 예부터 서울 사람들은 양반, 상것 가리지 않고 여름이면 민어를 먹었다.

    근래 들어 민어가 서울 양반들이 먹던 것이라는 말이 번진 데는 비싼 가격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민어, 서민이 먹기에는 분명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복날 비싼 민어 한 점 먹으면서 양반이고 싶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생각 자체가 상것들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민어 먹는 ‘양반’이 많아져서인지 근래에는 민어를 두고 별스러운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어를 수족관에서 살려뒀다가 이를 잡는 즉시 회로 먹는 것이다. 이른바 활민어회다. 이게 과연 맛있을까.

    1800년대 말에 나온 책 ‘시의전서’에 민어회 조리법이 나와 있다.



    “민어 껍질을 벗겨 살을 얇게 저며서 살결대로 가늘게 썰어 기름을 발라 접시에 담고 겨자와 고추장을 식성대로 쓴다.”

    ‘시의전서’는 발견 지역이 경북 내륙이며 책 내용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나온다. 그러니까 영남 내륙 지방 사대부가의 요리책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민어는 남부 해안에서도 잡히니 남해, 아니면 민어가 많이 나는 서해에서 영남 내륙까지 운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냉장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민어를 산 채로 유지하는 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자동차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민어를 회로 쳐서 먹을 만한 상태로 어찌 운송했을까.

    모든 생선이 그렇듯 민어는 죽으면 금방 썩는다. 요즘 같은 여름 날씨면 두 시간도 안 돼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를 썩지 않게 하려면, 피를 빼고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바닷물로 씻어 말리거나 살짝 소금을 뿌려 그늘지고 바람 좋은 곳에서 말려야 한다. 필자 짐작에 ‘시의전서’ 속 민어는 이렇게 말린 상태의 민어였을 것이다. 그래야만 영남 내륙으로 운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린다 해도 한 보름 정도는 민어 속살이 약간 촉촉한 상태로 유지된다. 이를 회로 쳐서 먹었던 것이다. ‘시의전서’에 “살을 얇게 저며서 살결대로 가늘게 썰어” 하는 구절이 있다. 민어는 살이 무른 편인데 얇게 저미고 이를 다시 가늘게 썬다는 것이 특이해 보이지 않는가. 촉촉한 상태를 넘어 꾸덕꾸덕한 살을 발라 먹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말리는 과정에서 민어는 숙성됐을 것인데, 그러니까 조상들은 ‘자연 숙성 민어회’를 먹었다고 할 수 있겠다.

    생선은 잡은 후 일정 시간 숙성해야 감칠맛이 살고 조직감도 좋아진다. 덩치가 큰 민어는 어민들의 말에 따르면, 사흘 정도는 숙성해야 진미가 난다고 한다. 일주일 숙성한 것이 가장 맛있다는 말도 있다. 요즘 서울의 일부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은 이 민어를 활어로 회를 쳐서 먹는다니, 1800년대 말 조선시대 사람들보다 못한 민어회를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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