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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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문화 확대 재생산 계급 이동 통로 꽉 막혔다”

‘가난’ 연구하는 조은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2-06-18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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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문화 확대 재생산 계급 이동 통로 꽉 막혔다”
    가난을 연구하는 학자는 어떤 사람일까. 올 2월 은퇴한 조은(66)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6월 6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으며 자신을 가꿀 줄 알았다. 차를 마시고 점심을 먹을 때도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했다. 이로써 가난 연구자는 가난한 사람처럼 행색이 남루하고 무력할 것이라는 기자의 편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최근 조 교수는 재개발 지역인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살았던 한 가족의 삶을 25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정리해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를 출간했다. 이 책은 금선 할머니의 8, 11, 14세 손주들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추적하며 그들이 빈곤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는지를 살핀 것이다. 조 교수는 가난을 관찰자 시점에서 통계 자료가 아닌 구술, 녹취, 영상 자료를 근거로 담담하게 성찰했다.

    잘사는 그가 가난에 대해 말하는 건 지적 허영심 때문일까. 많은 이가 외면하는 가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 이유는 뭘까. 그에게 연구 후일담을 물었다. 조 교수는 구술연구로 사회를 조명하는 전문가답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재주를 지녔다.

    ▼ 미국 사회학자가 10년 동안 빈민가의 삶을 경험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책 ‘괴짜사회학’을 읽고 우리나라에는 왜 그런 사회학자가 없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신 같은 학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과찬이다. 나는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가 멕시코 빈민가족을 추적해 정리한 ‘산체스네 아이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친구가 권한 영국 다큐멘터리 ‘세븐업’도 도움이 됐다. 영국의 중산층 아이들과 하층 아이들이라는 두 그룹을 7년마다 찾아가 그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아이들이 속한 계층이 높을수록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개발 지역인 사당동을 연구하고 영상세대인 학생들을 위해 사당동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후 영상으로 풀어낼 수 없는 내용을 정리하려고 책을 썼다.”



    빈곤층, 그나름의 타당한 방안 선택

    ▼ 별책부록처럼 책 안에 담긴 ‘사당동 더하기 22’ CD가 그 다큐멘터리인가.

    “그렇다. 1986년 금선 할머니 가족을 만나고 나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12년이 지난 시점부터 동영상 촬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이 가족을 만난 지 22년이 됐을 때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여기저기서 다큐멘터리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이번 기회에 다큐멘터리도 함께 실었다.”

    ▼ 다큐멘터리에는 금선 할머니 가족들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됐다. 초상권 침해 아닌가.

    “그들은 자신의 삶을 내밀한 뭔가로 인식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이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은 자신에게 관심 갖는 것을 기뻐한다. 중산층 시각으로 가난한 사람을 비판하면 안 된다. 빈곤층은 그들 나름대로 타당한 방안을 택한다. 한 예로 가난한 남성은 결혼하기 어려워 기혼 여성과 연애를 하거나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금선 할머니 가계부에는 혼자 사는 아들이 여자를 ‘사는’ 기록이 일상의 한 단면처럼 덤덤하게 기록돼 있다. 이 사람이라고 그렇게 살고 싶겠나.”

    ▼ 이 연구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뭔가. 빈곤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유니세프에서 ‘재개발 사업이 지역 주민에 미친 영향’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철거 예정지인 사당동에 들어가 22가구를 조사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당시 사회학에서 계급이나 계층 문제는 큰 이슈였다. 이후 철거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에 주목했다.”

    ▼ 한 가족의 변화상을 집중해서 살펴본 이유는 뭔가. 유니세프 연구 당시 금선 할머니를 D씨라 칭하면서 ‘D씨(66·여)는 파출부이며 생활보호대상자다. 아들은 건설노동을 하며 이혼했다. 큰손자는 중학교 2학년으로 씨름 선수이고, 큰손녀는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손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22년 전 양동이 철거되어 사당동으로 오게 되었으며 방 한 칸짜리 월세에 살고 고향은 함경도다”라고 정리했던데.

    “금선 할머니는 판자촌이라는 불량 주거지의 산증인이다. 그분이 임대아파트로 이주하면 가난의 대물림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할머니에게는 손주 3명이 있어서 그 추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할머니의 아들과 손주가 각각 옌볜 여성,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세계화되지 않은 가정의 가장 친밀한 영역에 세계화가 침투하는 면면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금선 할머니는 이야기를 잘해서 구술연구 대상으로 적임자였다.”

    구술연구하면서 자세한 정황 파악

    ▼ 그러고 보면 연구 방법으로 통계가 아닌 구술을 택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회과학에서는 연구할 때 통계 조사를 많이 하지만, 그럴 경우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어렵다. 실태와 통계 결과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빈민층 여성에게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일하는 여자는 복 없는 여자’라고 생각해 일하고 있어도 거짓으로 답한다. 이런 이유로 소수자에 대한 연구를 할 때 연구자가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질적 연구를 많이 한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평생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루는 당신의 삶을 이야기해줘서 그런지 구술이란 연구 방법을 친숙하게 느꼈다.”

    ▼ 이런 방법으로 오랫동안 한 가족을 연구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대학에서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경제적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다. 동국대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2년 동안 피곤하게 살았던 때를 제외하곤 금선 할머니 댁을 꾸준히 찾아갔다. 그 집에 갈 때 아기 선물 같은 약소한 것을 사간 게 내가 들인 비용이라면 비용이다.”

    ▼ 기자로서 철거민을 취재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속사정을 듣지 못한 경험이 있다. 연구자가 한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였는지 궁금하다.

    “초기에는 ‘저 여자 여기 왜 왔대’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교들이 사당동에 살면서 지역민과 친분을 쌓았고, 이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 연구하면서 ‘빈곤이 재생산된다’는 걸 실감했나.

    “그렇다. 상상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계급체계가 강고하다는 느낌이 든다. 빈곤이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이 궁금했는데 주거 문제가 해결돼도 가난한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금선 할머니 가족은 끊임없이 일하지만 고용이 불안하다 보니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간다.”

    ▼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상황이 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주거가 안정됐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사는 것이다. 가난하니까 식을 올리지 않고 그냥 사는 거고, 결혼할 수 없으니 연애하는 거고, 공부할 책상이 없으니 공부를 못하는 거다. 이런 빈곤문화는 확대 재생산되면서 가난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 연구자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를 ‘우연히’ ‘잘못’ 고른 건 아닌가.

    “한 대상이 사회적, 역사적 지점에 놓인 부분을 보면 사회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빈곤층 중에서는 일용직 종사자가 많은데 사실상 절반은 일거리가 부족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놀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정규직 화이트칼라로 진출한 것이 성공한 사례다.”

    ▼ 그럼에도 빈곤층에서 벗어나 ‘개천에서 용 난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들이 언론으로부터 조명받는 것은 그만큼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는 교육과 소기업가 정신이라는 계급 이동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대학 수준에 따라 정해지는 학생들의 계급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계급이 공고화되고 있다. 소상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없어지고 체인점으로 바뀌는 구조에서 일반인이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빈곤문화 확대 재생산 계급 이동 통로 꽉 막혔다”

    1, 2. 당시 사당동 어느 집이나 대문을 열면 부엌이 나타나고 장지문을 열면 온 식구가 모여 지내는 방이 보였다. 3. 1988년 사당동. 중산층 아이에게는 무서운 재개발 현장이 그곳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다. 4. 1988년 철거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연구 조교. 조은 교수는 1986년 여름 인류학자, 남녀 대학원생 등 3명과 함께 연구 현장을 찾았다. 5. 1988년 사당동에 마지막으로 남은 구멍가게 앞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6. 아파트가 들어설 때까지 한 집이 철거를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유일한 문화자원

    ▼ 그런데도 성공신화를 쓴 주인공이 여럿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문화적으로 풍족했다. 선대에 서울에서 공부한 분이 많아 롤모델을 찾을 수 있었고, 가정 안에도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텔레비전 시청 외에 다른 문화자원이 없다. 그만큼 꿈을 크게 꾸지 못하고, 그런 꿈을 이루도록 돕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

    ▼ 25년 동안 한 대상을 꾸준히 연구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나.

    “공직자뿐 아니라 학자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나는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한다. 동시대 사람으로서 이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연구자의 몫 아닌가.”

    ▼ 25년 동안 빈곤층을 연구하면서 거둔 성과도 있을 것 같다.

    “연구 덕분에 세입자 이주비 지원이 이뤄지고 이들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이 나왔다. 재개발할 때 세입자들이 옮겨갈 장소를 정한 뒤 재개발을 추진하는 ‘순환재개발’ 정책도 현재 시행 중이다. 이 연구를 도와준 제자들이 국회, 시민단체, 언론사 등에서 일하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소득 가운데 하나다.”

    ▼ 사회의 주변부, 변방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개인적 배경이 있나.

    “마이너리티 처지에 서보지 않으면 비판적인 지식인이 되기 어렵다. 나는 전남 영광의 몰락한 소지주 가문의 딸이었기 때문에 풍족한 친구들과 달리 아웃사이더로서 사안을 바라보며 살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알제리 독립운동 기간에 그곳에서 군복무한 경험이 있어 마이너리티의 삶을 관찰할 수 있지 않았나. 나는 연구할 때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상자가 우리 가족과 비슷한 세대라는 것도 연구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아픈 사회 진단할 사람 키울 것

    ▼ 그런 벽을 쌓고 빈곤층을 연구한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위선 아닌가.

    “그런 시각은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기죽이는 말이다. 혹자는 ‘당신은 잘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위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비판이다. 지식인의 소임은 비판적 분석과 안목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연구를 하는 학자들도 잘산다는 걸 알려야 학자들이 두려움을 갖지 않고 빈곤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빈곤층을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내면에 갈등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켜보는 구실을 해야 해 개입은 최소한으로 했다. 내가 이 가족에게 제공한 것은 할머니 셋째 손주가 문신을 지울 때 지원 병원을 알아봐주고, 할머니 첫째 손주가 필리핀에 결혼하러 갈 때 모자란 차비를 축의금으로 채워준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연구자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상당한 힘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 우리 사회는 빈곤에 대한 관심이 적다. 연구자로서 바라는 점은 뭔가.

    “마지막 강의에서 ‘한 사회가 아파할 수 있다면 그것도 그 사회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아프다는 것을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가 이 연구를 지켜본 뒤 짜장면 배달부를 경계할 대상이 아닌, 금선 할머니네 셋째 손주처럼 여기게 됐다고 하는데 내가 노린 부분이 바로 그거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빈민층을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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