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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심마니와 동행 하늘이 내려준 산삼 채취기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직접 발견해 캔 산삼을 들어 보이는 성재경 한국심마니협회 아산시지부장.

심마니는 길을 찾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만 찾아다녔다. 심마니는 길을 만들며 수풀을 헤쳤다. 심마니들이 찾는 것은 산삼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그 어떤 곳 같았다.

사람이 오고 가는 길에선 심(산삼·山蔘)이 나지 않는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게 버티고 살아가는 산삼과 인간은 이질적이다. 인간사와 동떨어질수록,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산삼일수록 그 가치를 더 인정받는다.

산삼의 씨앗은 새, 짐승, 바람이 나른다. 산삼 또는 인삼의 씨앗을 먹은 새나 산짐승이 산속 어딘가에 씨앗을 배설하면 야생산삼의 일생이 시작된다. 이렇게 자란 산삼을 조복삼(鳥腹蔘)이라고 부른다. 조복삼은 곧 자연산삼이다. 산삼의 길은 새나 짐승의 길과 같다. 산짐승의 입과 내장을 거치면서 온기를 품은 산삼의 씨앗은 적당한 토양과 바람을 만나면 비로소 싹을 틔운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선물

확인된 바는 없지만 산삼은 만병통치약이다. 과학적으로 결론이 나온 바는 없지만 이에 토를 다는 사람도 없다. 학자들은 산삼이 인삼보다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정력에 좋으며, 원기를 북돋워 면역력을 높이고, 당뇨나 혈압 관련 질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죽어가던 사람이 산삼을 먹고 살았다거나, 산삼을 먹고 말기암을 고쳤다는 사람의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에게 귀하기로 치면 산삼만한 것이 없다.



흔히 산삼을 캔다고 표현하지만, 심마니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았다. 산삼은 사람의 의지 너머에 있는 존재라고 그들은 굳게 믿는다. 그래서 심마니는 심을 본다거나 봤다고 표현한다. 산삼을 만나는 일은 인간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산삼은 산신령이나 조상이 내려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기자가 자연산삼을 보려고 찾은 곳은 충남 아산시 일대다. 석가탄신일인 5월 28일, 기자는 한국심마니협회 아산시지부(성재경 지부장) 회원 5명과 함께 산행에 나섰다. 예부터 산삼이 많이 나온다 해서 삼밭재라고도 부른다는 골 깊은 야산이었다.

동행한 심마니들의 경력은 화려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15년 이상 심마니 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전설 같은, 혹은 거짓말 같은 추억을 간직했다. 산삼 감정위원인 성재경(58) 지부장은 10여 년 전 덕유산 일대에서 가족삼(한곳에 군락을 지어 자생하는 산삼) 47뿌리를 발견해 지역신문에 기사가 실렸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가족삼을 만나기 전날 호랑이를 정성껏 치료해준 꿈을 꿨다고 했다. 15년 경력의 심마니이자 산삼 감정위원인 한성환(60) 씨도 수년 전 계룡산 일대에서 80년가량 된 산삼을 만났던 일을 어제 일처럼 들려줬다. 한씨는 “다시는 그런 삼을 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삼을 찾아나선 심마니는 제일 먼저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산신령이 앉았다 갔을 것 같은 널찍한 바위 밑에 흰 종이를 깔고 막걸리와 북어포, 사탕 같은 것을 올려놓고 예를 올렸다. 술 한 잔에 세 번씩 모두 아홉 번 절했다. 안전한 산행과 산삼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빌었다.

“산신령님, 오늘도 좋은 삼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보통 제사가 끝나면 음복(飮福)이라 해서 술과 제사 음식을 나눠 먹지만, 심마니들은 술과 음식에 입을 대지 않았다. 삼을 보기 전에는 술을 먹지 않는 게 심마니의 오랜 습관이라고 했다. 산을 타면서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를 걱정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산삼 나는 곳 정해지지 않아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경사진 비탈이나 볕과 습기가 모이는 골짜기에서 종종 가족삼을 발견할 수 있다.

산삼이 나는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흔히 폭신한 낙엽토, 볕이 적당히 들고 머리 위에 그늘막이 있는 곳에서 산삼이 난다고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다. 산삼은 돌같이 굳은 소나무밭에서도 나오고, 찬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절벽 돌 틈에서도 자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박물학서 ‘임원십육지’(1835년경)는 산삼이 나는 곳을 이렇게 설명해놓았다.

“너무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으며, 응달도 아니고 양달도 아닌 곳에서만 자란다.”

일조량이 적당하고 수분도 적당한 곳에서만 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다시 말하면 아무 곳에서나 자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특별히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산삼이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산삼은, 특히 좋은 산삼은 생각보다 귀하고 만나기도 힘들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심마니는 산삼이 산의 북동쪽 방면에서 많이 난다고 알고 있다. 이쪽이 상대적으로 햇볕에 많이 노출되는 남쪽과 서쪽보다 그늘지고 습해 토양이 포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척박한 곳, 햇볕을 많이 받는 곳, 토양 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 나는 산삼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중 최고는 소나무밭에서 나는 산삼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척박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산삼이 작지만 야무지다.

심마니들은 그늘진 산속, 특히 경사진 비탈이나 볕과 습기가 모이는 크고 작은 골을 유심히 살피며 걸었다. 생을 다하고 쓰러진 나무가 만든 그늘 밑, 바람이 오가는 길목에서 좋은 삼이 난다고 했다. 심마니들이 로또로 부르는 가족삼도 이런 곳에서 많이 나온다. 가족삼은 하나의 어미삼이 여러 해에 걸쳐 주변에 씨를 뿌려 산삼 군락을 이룬 경우를 가리킨다. 한곳에서 산삼 50~100뿌리를 무더기로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5시간을 넘게 산속을 헤맸지만 산삼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벌레에 물리고 나무에 살이 쓸리며 심마니들도 기자도 서서히 지쳐갔다. 길도 없는 산길을 낙엽을 헤치며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마니의 머릿속에는 길이 없었고 정상도 없었다. 산삼을 보면 막대기로 나무를 세 번 두드리기로 약속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성 지부장은 “열 번 산행을 나오면 여덟 번 정도는 삼을 만나지 못한다”며 기자를 위로했다. 오늘의 산행이 나머지 두 번이길 바랐다. 한국심마니협회 아산시지부 회원이자 15년 경력을 가진 채규홍(60) 씨는 “서너달 동안 한 번도 삼을 못 본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삼을 보지 못한 이유가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채씨는 “돼지머리를 사다가 큰 제사를 지내고 나서야 삼을 만났다”고 했다.

기자를 포함한 일행이 처음 산삼을 만난 건 어느 작은 계곡 산비탈의 나무 그늘이었다. 쓰러진 나무가 작은 그늘을 만든 폭신폭신한 낙엽토였다. 그곳에서 3구 산삼 한 뿌리를 발견했다. 잎이 넓고 초록색 열매가 맺힌 아담한 놈이었다. 흩어져 있던 심마니 일행은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일제히 모여 산삼을 보여준 산신령에게 절을 올렸다.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산행에 앞서 제사를 지내는 한국심마니협회 아산시지부 회원들.

임자 만나야 제대로 거래

산삼은 보통 땅속에 깊이 박혀 살지 않는다. 잔뿌리를 다 해도 깊어야 15cm 정도다. 3구대가 올라오는 정도의 연수, 10년 안팎이 되면 산삼은 옆으로 누워 자라고 땅 밑으로는 작은 뿌리만 내린다. 이날 만난 산삼도 옆으로 길게 누운 모습이었다. 1cm 넘는 노두(蘆頭·머리)를 가졌고 노두에는 연수를 알 수 있는 나사 모양의 나이테가 10여 개 보였다. 족히 10~15년은 된 산삼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산삼을 처음 발견한 성 지부장은 “품질이 좋은 산삼이다. 인종 2대 정도로 보인다”며 좋아했다.

이날 일행은 총 2뿌리의 산삼을 만났다. 채규홍 회원이 만난 산삼도 연수가 10년 정도 된 산삼이었다. 회원들은 이번에도 모두 모여 절하고 조심스레 산삼을 채취했다.

산삼은 정해진 가격이 없다. 어떤 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산삼을 캐는 임자도 정해졌지만, 산삼을 먹는 임자도 따로 있다고 심마니들은 믿는다. 예전보다 산삼 가격이 많이 내린 상태다. 일단 예전처럼 많은 사람이 산삼을 찾지 않는다. 심마니에서 소비자로 이어지는 판로가 정해진 것이 없다 보니 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통 10년 안팎의 천연산삼은 뿌리당 3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성인 한 사람이 효과를 보려면 이런 산삼을 3~5뿌리 먹어야 한다고 심마니들은 입을 모은다. 불임부부가 산삼을 먹고 아이를 가졌다거나 말기암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산삼을 먹고 10년 이상 생존했다는 얘기는 심마니들 사이에선 더는 뉴스가 아니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분

성재경 한국심마니협회 아산시지부장(041-532-8976),

한성환 산삼 감정위원(041-545-3833)

산삼 판별법

노두 크기·모양 따라 질은 천차만별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산삼 감정위원인 한성환 씨가 자신이 직접 캔 산삼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산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산에서 난다고 해서 다 같은 산삼이 아니다. 비슷해 보여도 제각각 가치가 다르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마니들은 흔히 산삼을 천종(진종)삼, 지종삼, 인종삼으로 분류한다. 인종삼은 인삼 씨를 짐승이나 새가 먹고 산에 배설해 자란 산삼을 말한다. 사람이 직접 씨를 뿌려 길러낸 장뇌삼과는 다르다. 처음 산에 터를 잡은 1대 인종삼은 수명이 15년 안팎이다. 2~3대 야생산삼으로 이어지면 수명은 20~30년으로 늘어난다. 3대 이상 된 인종삼은 보통 30년을 넘게 산다.

이 단계를 넘어간 산삼은 지종삼이라고 부른다. 지종삼의 생명력은 보통 30~50년을 넘어선다. 지종삼쯤 되면 산삼으로서의 자태를 완벽하게 갖춘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산삼 가운데 품질이 좋은 것은 대부분 지종삼에 속한다. 인종삼이 최소 5~6대 이상 이어져야 하는 천종삼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고 심마니들은 입을 모은다. 천종삼은 주로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산삼은 잎이 5장이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갈피나무와 잎 모양이 아주 흡사하다. 그러나 줄기 곳곳에서 잎이 나는 목본식물인 오갈피나무와 달리 산삼은 깃대(줄기) 끝에서 1~5개 줄기(구)가 뻗어 나와 여기에 5장의 잎을 맺는다. 그러나 산삼이 처음부터 5장의 잎을 갖추고 나는 것은 아니다. 1~3년 된 애기산삼은 잎 5장을 만들지 못한다. 2장 혹은 3장을 겨우 만든다. 4~5년 이상이 돼야 비로소 4~5장의 잎을 갖춘다. 잎 5장을 가진 줄기를 ‘구’라고 부른다. 5년 이상 되면 구가 2개로 늘어나고 보통 10년을 전후해 3구 산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산삼은 대부분 3구 산삼, 즉 잎이 15장인 산삼이다. 10년 전후인 것이 많다.

“삼은 캐는 게 아니여 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지”
그렇지만 구의 수만으로 산삼의 연령을 알 수는 없다. 연수가 적어도 생육조건이 좋은 산삼은 대가 굵고 길며 구를 여러 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심마니들은 잎이 아닌 뿌리로 산삼 품질을 판단한다. 노두 모양, 약통(몸통) 크기와 모양, 잔뿌리(미) 생김새 등이 판단 근거가 된다.

산삼은 4~5월이 되면 열매를 맺는다. 5장의 잎을 가진 구 사이로 열매를 매단 줄기가 삐져 나온다. 줄기 끝에는 열매 30~50개가 맺히는데, 8월 한여름이 되면 이 열매가 붉게 물든다. 그리고 10월이 넘어가면 대가 쓰러지면서 열매가 주변에 흩어진다. 그중 일부가 다시 싹을 틔워 산삼 족보를 잇는다.

산삼 노두를 보면 연령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사 모양의 나이테가 매년 하나씩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세어보면 된다는 것이다. 약통(몸통) 크기와 모양, 잎과 대 모양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확하진 않다. 50년 이상 된 지종삼, 천종삼 중에도 잎이 작은 1구 산삼이 있고, 인삼을 막 벗어난 인종삼 중에도 3~5년 만에 3구대를 갖추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땅속에서 잠을 자다 나온 산삼의 경우 노두만으로는 연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20여 년 동안 땅속에서 잠을 자다 나오는 산삼도 많다. 산삼 감정위원 한성환 씨는 좋은 산삼을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된 산삼은 스스로 뿌리를 정리한다. 잔뿌리가 별로 없다. 흔히 잔뿌리가 많은 산삼이 좋은 산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노두의 경우에도 길이만 길다고 좋은 산삼은 아니다. 노두에 각인된 나이테를 봐야 한다. 산삼이 오래되면 잎이 각이 지면서 작아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좋은 산삼은 모양이 야무지다.”





주간동아 2012.06.18 842호 (p28~31)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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