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3

2011.09.05

‘곽노현의 배신’ 충격 일파만파

야권, 서울시장 보궐선거 초대형 악재… ‘후보단일화=정의’ 어떻게 설득할지 걱정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09-05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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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현의 배신’ 충격 일파만파

    8월 28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후보직 매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얘기가 100% 사실이라 해도, 국민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사퇴한 후보에게 당선한 후보가 돈을 건넸으니, ‘선의’로 해석하겠나?”

    8월 29일 ‘주간동아’와 만난 민주당 중진의원은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고약한 악재”로 평가했다. 그는 당장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인 오세훈 시장이 주민의 투표 거부에 가로막혀 시장직에서 물러나 치르는 선거다. 그런데 보궐선거 의미가 ‘곽노현 사건’으로 퇴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좋은 분위기에서 (보궐선거를) 치를 수 있었는데, 악재가 터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2억 원 제공, 여론 추이에 촉각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곽 교육감이 주변 인물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사퇴한 서울교대 박명기 교수 측에 2억 원을 건넨 일이 알려진 이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곽 교육감은 오세훈 전 시장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 교육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가 후보단일화 대가로 금품 제공 의혹에 휩싸이자, 야권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특히 당적과 무관하게 당선한 곽 교육감을 민주당 등 야권에서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도 없는 상태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장기화하면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면서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도 ‘후보단일화’를 통해 승리 가능성을 높여야 하는데, 국민이 색안경을 끼고 지켜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곽 교육감) 본인이 거취를 결정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사건이 불거진 이후의 태도로 봐서는 법 논리로 해결하려 하는 것 같다”며 “지루한 법리 공방 과정에 국민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불거지자, 물 만난 고기처럼 곽 교육감에 대해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인다. 8월 30일 열린 원내대책회의는 ‘곽노현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곽 교육감은 투표에는 나쁜 투표가 있고, 뇌물에는 착한 뇌물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며 “정(情)이 있는 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자신의 부패행위를 옹호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곽 교육감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교육청에는 ‘나에게도 선의로 2억 원쯤 줄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쇄도한다”며 비꼬았다.

    김정권 사무총장도 “곽 교육감은 2억 원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한마디 사과도 않는다”면서 “곽 교육감에게서는 기본적인 양심도, 최소한의 법상식도 찾아볼 수 없다. 참 나쁜 교육감”이라고 맹비난했다. 김기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곽 교육감의 ‘야권 후보단일화 뒷거래’및 돈 출처와 관련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라며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국민에 신뢰받는 새 인물이 관건

    ‘곽노현의 배신’ 충격 일파만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서 2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된 서울교대 박명기 교수가 8월 29일 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 차량을 타고 서울구치소로 가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으로 역대 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에 대한 ‘뒷거래’ 의혹도 새삼 일고 있다. 지금까지는 겉으로 드러난 ‘정치적 거래’가 알려졌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공동정부’ 합의가 깨지기 이전까지 개각 때마다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 몫 장관을 임명했다.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단일화를 이룬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 사이에도 후보단일화 이후 ‘대선에서 승리하면 4명의 장관 추천권을 보장한다’는 구두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약속은 대선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파기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한 후보자에게 금품을 제공해 ‘후보 매수’로 처벌받은 일도 있었다. 1989년 4월에 치른 강원 동해 보궐선거에서 당시 통일민주당 서석재 사무총장은 후보 사퇴 조건으로 공화당 후보에게 5000만 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때 주임검사로 수사를 지휘했던 강지원 변호사는 당시를“후보단일화 이후 선거비용 보전 차원에서 정치인들이 관행처럼 금품을 제공해왔던 것을 동해 보궐선거 때 처음으로 ‘후보 매수’로 처벌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후보단일화를 통해 여권과 일대일 구도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야권의 후보단일화 움직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후보단일화=정의’라며 국민을 설득했던 야권의 단일화 논의가 빛이 바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으로 야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후보단일화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권과 달리 분열한 야권이 단일화 말고는 여권에 맞설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야권 내에서 민주당 외 진보세력이 민주당 측에 양보를 요구했던 배경이 ‘도덕적 우월성’이었는데, 이번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국민 눈에 진보세력의 정체성이 무너진 것으로 보일 것”이라며 “지금까지 야권은 ‘후보단일화=정의’라는 등식으로 국민을 설득했는데, 야권의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야권, 특히 진보세력이 이번 일로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진보세력과 민주당이 더 끈끈하게 연대한 뒤 ‘역할 분담’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야권은 과연 곽노현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김민전 교수는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쟁쟁한 후보들이 경쟁하면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쉽게 잊힐 수 있지만, 변변치 않은 후보가 난립해 지루한 단일화 논의 과정을 보이면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으로 상처 입은 야권에게 치료제는 결국 국민 신뢰를 받는 새 인물이라는 얘기다.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앞다퉈 출마 의사를 밝혀 후보자가 난립하는 야권이 과연 국민이 인정할 만한 새 인물로 후보단일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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