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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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거짓말’ 주연은 정일순

옷로비사건 1심 재판부, 정씨 오락가락 진술 토대로 ‘거짓말쟁이’ 지목

  • 입력2005-05-30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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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작 ‘거짓말’ 주연은 정일순
    1999. 11. 9(화) 특검팀은 배정숙씨 관계자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경찰청 조사과 최초보고서로 추정되는 ‘조사과 첩보’라는 제목의 문건을 압수했다.’

    지난해 옷 로비 의혹사건을 수사한 최병모 특별검사팀이 수사를 끝낸 뒤 청와대에 제출한 326쪽짜리 보고서의 89쪽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압수수색은 특검팀이 ‘포기한 로비’라는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정확히 1년 후인 지난 11월9일(목). 대검 중수부에 의해 ‘이형자 자작극’으로 탈바꿈해 재판에 넘겨진 뒤 망각의 늪으로 사라졌던 이 사건은 법원의 판결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이날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대휘 부장판사)는 국회 위증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형자-영기 자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한편 정일순 라스포사 사장에게 징역 1년6월을, 배정숙씨에게 1년을, 연정희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씨만 거짓말 탐지기 조사 불응



    과연 사건을 이토록 키워놓은 거짓말쟁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특검은 정씨를 지목했고 대검은 이씨를 지목했다. 이날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낱낱이 배척, 특검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가 이씨 자매에 대해 작성한 28쪽짜리 판결문에 굳이 제목을 달자면 ‘정씨가 왜 거짓말쟁이인지에 대한 여섯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상반된 주장만 있고 결정적인 물증이 없는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흔들리는 정씨 진술을 낱낱이 꼬집음으로써 이씨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부장판사는 10일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리기 위해 세 판사가 특검과 대검, 재판기록을 여러 차례 정독했고 재판과정에서의 당사자들 태도도 유심히 관찰했다”고 말했다.

    여섯 가지 이유 중 재판부의 관찰력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사건 발생 이후 정씨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보인 태도.

    “이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이 모두 거짓말 탐지기의 검사에 동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씨만이 유일하게 수사에 참여했던 변호인의 설명을 듣고서도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불응하였으며….”

    “99년 11월15일 특별검사에 의하여 긴급체포되어 조사받을 당시 거동도 못하고 의자에 누워 화장실에 갈 때도 휠체어에 실려 수사관의 도움을 받고 갔었으나, 제1차 구속영장 실질심사 중에는 교도관의 부축 없이 혼자서 거동하였다가 영장기각으로 석방지휘서가 전달된 같은 달 16일 19시5분 경에는 혼자 걸어나왔고….”

    “이 법정에서 진술할 때에도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때에는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다가도 유리한 부분에 있어서는 큰소리로 진술하는 등 작위적이고 계산된 행동을 하였다.”

    나머지 다섯 부분은 사건과 관련된 쟁점에 대해 일관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정씨의 진술을 지적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 첫번째로 연씨에게 배달된 호피무늬 반코트의 배달 및 반환시기에 대한 정씨의 진술이 아래와 같이 수시로 변한다고 판단했다.

    “98년 12월26일 연씨에게 반코트를 싸서 넣어 드리라고 종업원에게 지시했는데 연초에 반품하여 거래하지 못했다.”(99년 1월25일자 진술조서)

    “98년 12월28일(중략) 연씨 몰래 차 트렁크에 실어주었는데, 99년 신정 연휴가 끝난 직후에 반품했다.”(99년 5월30일자 진술조서)

    “연씨가 반코트를 가져간 날짜는 98년 12월19일이고 반환한 일자는 99년 1월8일이다.”(99년 11월15일 특별검사에게 긴급체포돼 피의자 신문을 받을 당시)

    두번째 쟁점은 정씨가 99년 1월21일과 22일 이형자씨의 동생 영기씨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어 대화한 내용. 이 부분은 과연 연씨 옷값의 대납요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가리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이에 대해 영기씨는 “정씨가 전화를 걸어 언니에게 옷값 한 장을 내도록 해달라”고 주장했고, 정씨는 “영기씨가 재혼을 한다고 해 우리집 웨딩드레스를 입어 달라고 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재판부가 지적한 수사기록 내용.

    “본인이 그런 전화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나.”(99년 1월25일자 진술조서)

    “우리 집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고객확보 차원에서 전화한 것이지 의류대금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의류를 총장 부인에게 판매하고 외상을 단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99년 5월30일자 진술조서)

    “우리 집에서 웨딩드레스를 맞추면 예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줄 테니 63빌딩 예식장에 납품하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99년 12월23일자 피의자 신문조서)

    재판부는 “정씨는 이미 연씨에게 호피무늬 반코트를 판매하고도 5월30일자 진술에서 ‘총장부인에게 외상을 단 경우가 없다’고 한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밖에도 △정씨가 연씨에게 배달한 반코트에는 수천만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는 진술에 비해 정씨는 400만원에 판매하려 했다며 가격을 낮추려 했던 점 △국회 청문회에서 ‘직원들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가 특검에서 직원들과의 통화 명세를 조사하자 ‘직원들이 도중에 다시 찾아와 함께 일했다’고 주장하는 점 △이형자씨에게 판매한 밍크코트 가격 등에 대한 진술이 도매업자인 박모씨와 다른 점 등을 지적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정씨의 진술은 믿을 수 없는 반면 이씨측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어 이씨측이 주장하는 ‘옷값 대납 요구’는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

    정씨는 판결 선고 직후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며 항소방침을 밝혔다.

    이번 판결로 검찰의 위상은 또 한번 추락했다. 그동안 검찰은 특검이나 1심 재판부와는 달리 ‘정씨의 진술이 더 믿을 만하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정씨 진술의 허점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검찰 최정예임을 자랑하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가 나섰던 ‘옷로비 의혹사건’ 수사의 1심 재판 결과만을 놓고 보면 검찰이 특검팀에 ‘완패’한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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