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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만보

헬조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헬조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비관이 만드는 공포 낙관이 만드는 희망  |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김종수 옮김/ 움직이는서재/ 504쪽/ 2만5000원

비관이 만드는 공포 낙관이 만드는 희망 |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김종수 옮김/ 움직이는서재/ 504쪽/ 2만5000원

‘헬조선’이란 표현은 선동적이다. 지금 시대가 최악이라는 이 표현은 구호로서는 몰라도 실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한 세대 전인 1988년과 비교할 때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2018년의 삶이 그때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나아진 건 분명하다. 다만 지금의 고통이 당장 피부로 와 닿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헬조선’이라는 구호가 먹히는 것이다. 

지난 미국 대선과 당 후보 경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경제는 활황으로 치닫고 있었는데도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미국 역사상 최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민주당 경선에 나온 버니 샌더스 후보도 미국이 파멸되고 있으며 기업의 탐욕으로 배출된 공해물질에 인류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보다 모든 게 악화되고 있다는 믿음. 정치인 혹은 선동꾼은 최악의 상황을 믿고 싶어 하는 대중의 속성을 부추겨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려 든다. 학계는 ‘세상이 말세’라는 태도를 취해야 더 똑똑해 보이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은 바로 이런 ‘비관과 공포의 과잉’을 실증적 자료와 지표로 반박한다. 저자가 2003년 쓴 ‘진보의 역설’ 후속편 격인 이 책은 대다수 나라에서 생활여건이 훨씬 좋아지고 있는 점을 보여주고,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불평등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21세기 과제에 그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의 차례는 의문문 형식을 띠고 있다. 이를 뒤바꿔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인류는 굶주리지 않고 있다, 수명은 늘고 있다, 자연과 경제는 잘 굴러가고 있다, 폭력은 줄어들고 기술은 안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 분야에서 기념비적 저작으로 꼽히는 ‘침묵의 봄’(1962)의 결론은 북미 지역의 조류 40종이 조만간 멸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40종 중 33종은 개체 수가 늘거나 안정화됐고, 7종은 개체 수가 줄었지만 멸종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결과는 물론 ‘침묵의 봄’의 경고 때문에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저자의 논지가 빛을 발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형편없는 길잡이일 뿐이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문제 해결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는 온실가스 배출이 줄고, 성층권의 오존 구멍이 닫히고 있다는 결과를 봐도 낙관주의에 기초한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은 믿어도 좋다고 주장한다. 또한 토마 피케티가 강조한 불평등의 심화 문제만 해도 세전 수입만 갖고 통계를 구함으로써 보통 사람의 실질 구매력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우리 사회의 좌파적 시각에서라면 이 책의 기조가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불평등에 대한 대책과 관련해 보면 매우 진보적이다. 저자는 불평등이 전 세계적으로 완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복지 지원과 연금 두 가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가장 강력한 복지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단편적 사실로 문제를 재단하지 않고 포괄적이면서 넓은 시야로 사안을 바라본다는 데 있다. 

만약 이 책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특히 폭력의 역사와 관련된 궁금증이 있다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 사이언스북스)를 추천한다.




주간동아 2018.07.11 1146호 (p69~69)

  •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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