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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막걸리는 와인과 맥주를 능가하는 최고 발효주”

‘막걸리를 탐하다’ 펴낸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막걸리는 와인과 맥주를 능가하는 최고 발효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한국 국민주 하면 어떤 술이 떠오르는가. 당신이 술꾼이라면 소주라고 답할 것이다. 1년간 세계 각국의 52가지 술에 도전한 뒤 ‘애주가의 대모험’을 펴낸 음주모험가 제프 시올레티가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꼽은 것도 초록색 병에 든 소주였다. 하지만 소주는 몽골에서 수입된 증류주다. 그나마 한국인이 주로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쌀을 발효한 게 아니라 옥수수 주정의 알코올에 물을 타서 희석한 것이라 딱히 자랑하기도 민망하다. 

당신이 냉철한 분석가라면 1988년 이후 한국 주류 소비량 1위를 지키고 있는 맥주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영국 요리사 고든 램지가 한국 맥주 예찬론을 펼친다 해도 맥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종이 될 수 없다. 한국 보리로는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웬만한 일반인도 다 안다. 게다가 최근 급증한 맥주 소비량이 편의점에서 1만 원에 4캔 씩 판매하는 수입맥주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막걸리는 막 마시는 싸구려 술?

‘막걸리를 탐하다’를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았다. ‘중국은 알코올 40%의 마오타이의 나라, 일본은 알코올 16~18%의 사케의 나라다. 반면에 한국은 알코올 6%의 막걸리의 나라다. 맥주는 보리로 만들고, 포도주는 포도로 만들고, 막걸리는 쌀로 만드는데, 재료만 보면 쌀 음료는 보리 음료보다 부드럽고, 포도 음료보다 엷으므로 세상에서 가장 엷고 부드러운 술이 막걸리라는 뜻이다.’ 

사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까지 한국 주류 소비량 1위는 막걸리의 몫이었다. 66년 막걸리 출고량은 한국 전체 술 출고량의 73.7%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쌀막걸리 주조를 잠깐 허용한 1977~79년 예외 기간 3년을 제외하고 90년까지 한국인이 마시던 막걸리는 쌀이 아니라 수입밀로 빚은 밀막걸리였다. 또 공업용 발열제 카바이드를 쓰는 바람에 악취와 숙취를 유발해 ‘싸구려 술’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74년 168만㎘에 이르던 출고량이 2002년 12만9000㎘까지 급락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에 한국 막걸리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도 덩달아 상승했지만, 이 역시 국세청 자료 기준 2011년 47만7000㎘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15년 42만7000㎘까지 줄곧 감소세를 보여왔다.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알코올 도수 또한 낮아지고 있다. 막걸리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 변화에 맞춰 맥주는 새롭게 약진 중인데 막걸리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막걸리는 ‘막 마시는 싸구려 술’이란 이미지가 아직도 공고하기 때문은 아닐까. ‘막걸리를 탐하다’를 쓴 이종호(70)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만나 막걸리가 넘어야 할 그 편견의 고개를 짚어봤다. 

이 회장은 4월 27일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가 수여한 한국과학기술도서상에서 출판상(‘4차 산업혁명과 미래 신성장동력’)과 저술상(‘조선시대 과학의 순교자’)을 수상한 과학 전문 저술가로, 과학 관련 책만 100권 이상을 썼다. 

“1970년대 미국에서 최첨단 신기술 양조법이 개발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어요. 이를 동시당화발효법이라고 명명했죠. 이게 막걸리 양조법과 동일한 원리였습니다. 그만큼 막걸리 양조법이 힘들고 복잡하다는 거죠. 발효주는 크게 와인, 맥주, 막걸리로 나눌 수 있는데 정확히 이 순서대로 양조가 어렵습니다.” 

와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유는 자연 상태에서도 쉽게 발효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포도 같은 과일은 그냥 놔두면 그 안의 포도당 성분이 절로 알코올로 발효된다. 이를 단발효라고 한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처럼 자체에 당분이 포함된 곡물도 단발효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 곡물은 발효를 위해 두 단계의 화학 과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곡물의 녹말을 엿당이나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과정, 두 번째로 그렇게 생성된 당화액에서 알코올을 추출하는 발효 과정이다. 그래서 복발효라고 부른다.


청주는 고급주, 막걸리는 하급주?

“막걸리는 와인과 맥주를 능가하는 최고 발효주”
“맥주의 경우 보리를 발아시킨 맥아를 쓰는데, 맥아에 들어 있는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탄수화물을 당분으로 전환하기에 2가지 과정이 한꺼번에 진행됩니다. 이를 단행(單行)복발효법이라고 합니다. 반면 막걸리는 쌀을 고들고들하게 찐 고두밥에 역시 쌀이나 밀을 분쇄한 다음 물에 개어 곰팡이와 효모가 번식하도록 누룩을 넣어 골고루 섞어줍니다. 그럼 누룩 속 누룩곰팡이가 녹말을 분해해 엿당이나 포도당을 만들면 다시 효모가 이를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합니다. 이를 병행(竝行)복발효라고 합니다. 막걸리를 제조하려면 맥주보다 손이 더 가는 거죠. 미국이 신기술이라고 발표한 동시당화발효법이 곧 막걸리 양조법입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는 강원도 막국수가 평양냉면과 같은 방식으로 메밀국수 면을 뽑는데, 1960년대 ‘막 내려 먹는 국수’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바람에 푸대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막’에는 거칠게라는 뜻과 방금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막걸리 역시 ‘막 걸러낸 술’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선 방금이라는 뜻보다 거칠게라는 뜻이 더 강하다. 또 막국수는 1960년대 처음 등장했지만, 막걸리라는 한글 표현은 19세기 말 판각된 춘향전 완판본에 암행어사 이몽룡이 거지꼴로 남원 관아 변 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술상을 청했다 ‘목걸리 한 사발’ 나온 것에 분개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막국수와 냉면처럼 막걸리와 청주 역시 같은 방식의 양조법을 쓴다. 다만 그렇게 제조된 술의 맑은 윗부분을 따로 걸러낸 것이 청주, 아래 가라앉은 불투명한 부분이 탁주(막걸리)가 된다. 양반은 맑은 술을 더 좋아해 청주는 고급주가 되고 막걸리는 서민주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선 아예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청주만 마셨는데 그게 바로 사케다. 

“다들 몰랐던 거죠. 막걸리가 우리 몸에 좋은 유산균 덩어리라는 것을. 막걸리 발효에 꼭 필요한 누룩에는 효모뿐 아니라 유산균도 많습니다. 막걸리는 청주와 달리 원료의 고형물을 상당 부분 담아내기 때문에 그 유산균도 살아 있습니다. 생막걸리 한 통이 700~800㎖인데, 여기에 유산균이 700억~800억 마리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일반 요구르트 65㎖짜리 100~120병과 맞먹는 양입니다. 유산균뿐 아니라 필수아미노산과 단백질, 비타민B, 유기산, 식이성섬유도 풍부합니다. 그래서 영양가가 풍부하고, 허기도 달랠 수 있으며,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변비 해소에도 좋은 겁니다. 그러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대적으로 열량이 적기에 다이어트에도 좋습니다. 이런 점은 소주 같은 증류주는 물론, 같은 발효주이지만 살균 유통되는 청주와 포도주도 넘볼 수 없는 장점입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역시 편견의 산물이다.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뉜다. 앞서 말했듯 와인, 맥주, 청주, 막걸리는 모두 발효주인데 이들 발효주는 알코올 도수가 18도를 넘을 수 없다. 발효 작용을 하는 효모가 알코올 도수가 18%를 넘으면 자신이 만든 알코올에 중독돼 활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모든 발효주에는 아세트알데히드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이 숙취를 가져오는 원인물질이다. 증류주는 이런 발효주를 증류해 알코올 농도를 높이는 대신 아세트알데히드를 제거한다. 와인을 증류한 게 코냑과 아르마냐크이고 맥주를 증류한 것이 위스키라면 막걸리 및 청주를 증류한 것이 소주다. 

“막걸리를 소주나 위스키와 비교하면서 숙취 얘기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와인이나 맥주와 비교하면서 숙취가 더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과거 속성으로 발효시키려고 공업용 화학물질 카바이드를 썼을 때는 악취가 나고 숙취도 더 심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요즘은 카바이드 사용이 아예 금지됐기 때문에 막걸리의 숙취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 주세법으로는 알코올 도수가 3% 이상이면 탁주(막걸리)로 분류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평균 알코올 도수가 6%이다. 평균 4%인 맥주보다 높고 평균 12%인 와인보다 낮다. 일제강점기 때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이보다 높았다. 1916~39년 탁주 분석표를 보면 알코올 도수가 6~12%로 다양했다. 그러던 막걸리 도수가 6%가 된 데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일본 누룩이 전통누룩을 대신하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1949년부터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자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를 6~8%로 엄격히 제한했어요. 누룩으로 술을 빚을 경우 15%가량 나오는 맑은 청주를 떠낸 뒤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가며 거르면 알코올 도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거든요. 곡물 10kg으로 술을 빚으면 막걸리 60ℓ가 나옵니다. 그러다 주류시장에서 알코올 도수 25%짜리 소주의 도전이 거세지자 82년 막걸리 도수를 일괄적으로 8%로 올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판매량은 늘지 않고, 오히려 건설공사 현장에서 막걸리에 취한 인부들의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다시 6%로 돌려놓게 된 겁니다.” 

일본의 막걸리 억제정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직접 술을 빚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가양주(家釀酒)라 했는데, 대부분 막걸리였다. 일제는 세수를 늘리는 데 이를 이용하고자 자가용 술, 판매용 술 가리지 않고 면허제를 시행했고 1916년에는 양조장 판매용 술보다 자가용 술에 더 높은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조선에서 자가 술 제조 면허를 받은 사람이 1910년 36만6700명에서 26년 13만1700명으로 줄었고, 32년엔 단 1명만 허가를 받더니 34년에는 아예 자가 술 제조 면허제가 폐지됐다. 그 결과 집집마다 만들던 다양한 술이 사라졌고, 허가받은 주조업체들이 그것도 일본 수입산 개량누룩(고지)으로만 막걸리를 주조하게 됐다. 

일본 주조법은 백제시대 때 전수된 것이다. 이때 한국 누룩도 함께 전해졌다. 한국 누룩에는 누룩곰팡이와 효모가 함께 들어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날씨가 습해 이 누룩을 그대로 사용하면 주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미생물의 번식을 막고자 털곰팡이와 황국균(누룩공팜이의 일종)만 인위적으로 접종한 개량누룩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고지’다. 고지는 전통누룩보다 녹말을 당화시키는 당화력이 좋아 안정적으로 술을 빚을 수 있다. 당화가 이뤄진 다음 별도의 효모(종균)를 다시 투입하기 때문에 술맛이 들쑥날쑥한 것을 차단하면서 발효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일본 누룩을 사용하는 데 비판적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지의 개발은 발효 알코올 주조에 혁신을 가져왔다고 봐야 합니다. 막걸리의 산업화가 가능해진 것도 고지 때문이니까요. 고지를 사용해 막걸리 맛이 획일화됐다는 비판도 있는데, 막걸리 맛은 물이 좌우합니다. 같은 일본 누룩을 사용하는 일본 막걸리가 한국 막걸리 맛을 못 따라오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또 일본 고지는 쌀누룩에 황국균을 쓰는데, 한국에선 밀누룩에 신맛이 강한 백국균을 쓴다는 점에서 한국적으로 개량했다고 봐야 하죠. 현 막걸리 맛은 지난 100년에 걸쳐 한국인이 선택한 맛으로, 이를 일시에 부정해선 안 됩니다.” 

이 회장에 따르면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 수는 850여 개. 1916년 조선 양조장 수가 15만6000여 개로 조사된 것에 비하면 여전히 적다. 그나마 95년 자가양조가 허용되면서 늘어난 것이다. 그중에서 서울 장수, 부산 생탁, 대구 불로, 인천 소성주 같은 대형 양조장은 물론, 양조장 90%가 고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 회장은 밝혔다. 

“전통누룩을 사용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곳으로는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충북 진천 덕산막걸리, 전북 정읍 송명섭막걸리 정도였습니다. 밀주 단속을 피해가며 가양주 전통을 꿋꿋이 지켜온 결과죠. 전통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3분의 1은 버려야 한다는데 그 나름의 노하우로 이 실패 비율을 대거 줄였다고 합니다. 이런 노하우 없이 전통누룩으로 술 담그기에 도전하기보다 한국형 개량누룩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누룩곰팡이만 자랄 수 있는 누룩을 한국에서 개발한다면 떼돈을 벌 겁니다.” 

막걸리 맛이 술을 담는 항아리에서 온다는 믿음도 현대화를 위해 포기됐다고 한다. 경기 포천 이동막걸리는 한때 술 항아리가 200개를 웃돌아 전국 최대 술 항아리 보유 양조장으로 불렸으나 지난해 모든 항아리를 스테인리스 용기로 바꿨다. 위생 문제 때문이다. 

“술을 빚은 다음 항아리 청소를 하려면 사람이 직접 들어가 일일이 세척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아무래도 스테인리스 용기보다 위생 상태를 깨끗이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주간동아 2018.05.09 1137호 (p34~37)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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