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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동아시안컵에서 통할까

젊은 선수 위주로 대표팀 구성…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대비한 포석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7-31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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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틸리케, 동아시안컵에서 통할까
    2015 동아시안컵(8월 1~9일·중국 우한)은 한국을 비롯해 북한, 일본, 중국 등 4개국 A대표팀이 참가해 자웅을 겨루는 친선대회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대표선수 의무 차출 대회가 아닌 까닭에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스완지시티) 등 한국 대표팀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유럽파는 소집 명단에서 빠졌다.

    대표팀을 이끄는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은 한국 사령탑 부임 이후 가장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23명 중 28세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 최고참이고, 평균 연령은 24.3세다(7월 20일 최종 엔트리 발표 시점 기준·이후 김진현의 부상으로 이범영 대체 발탁). 눈앞의 성적보다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결과에 대한 강박관념보다 자신의 입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번 대표팀은 올림픽대표팀 소속 선수 3명이 포함되는 등 평균 연령이 대폭 낮아졌다. 1월 호주에서 펼쳐진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 출전한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6.4세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5.9세였다. 대표팀의 주축인 해외파 가운데 유럽과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빠지면서 대표팀 평균 연령이 크게 낮아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표팀 명단을 작성하면서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는 3명을 미드필더로 분류해 눈길을 끌었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에서 스트라이커로 뛴 이용재(V바렌 나가사키)를 비롯해 각각 전남과 포항에서 포워드로 뛰는 이종호와 김승대가 그렇다. 슈틸리케 감독은 “양쪽 풀백 중 공격력이 좋은 선수를 측면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하는 방법과 김승대, 이종호 등을 측면으로 돌려 수비적 부분을 해결하는 방법을 봤고, 후자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향해



    동아시안컵은 비록 A매치 기간에 열리는 대회는 아니지만, 우리 정서를 감안하면 어느 국제대회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북한과 자존심 대결이 있고,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도 맞붙는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축구굴기’ 정책에 따라 슈퍼리그(1부 리그)의 공격적 투자가 이어지며 한국과 일본의 아성을 위협하는 신흥 세력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리그 소속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면서 100% 전력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드문 중국과 북한은 사실상 최강 멤버로 나선다.

    종목을 불문하고 한일전은 늘 화제다. 더욱이 일본 현 사령탑은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에게 2-4 패배의 아픔을 안겼던 알제리의 지휘봉을 잡았던 인물이다. 만약 납득할 수 없는 성적표가 나온다면 슈틸리케 감독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축구계 일각에서 “유럽파를 뽑을 수 없더라도, K리그에 있는 최고 선수들로 팀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뚝심대로 ‘젊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K리그에서 최고 기량을 과시하는 염기훈(수원)을 제외한 것이 좋은 예다. 슈틸리케 감독은 6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염기훈을 발탁해 톡톡히 재미를 봤지만 이번에는 대표팀 자원 가운데 손흥민과 함께 최고 윙어로 꼽히는 염기훈을 제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회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위험요소를 감수하고 젊은 선수들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한 한일전에 대해서는 “대회에서 치르는 한 경기일 뿐이다. 일본 대표팀 사령탑인 할리호지치 감독이 지난해 월드컵에서 한국에 아픔을 안겼지만, 그 일은 과거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K리그와 대표팀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염기훈을 굳이 뽑지 않은 것도, 일본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담담한 의지를 피력한 것도 슈틸리케 감독의 시선이 당장 동아시안컵에 있지 않고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이 아니면 젊은 선수들을 직접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는 그의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계약 기간은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통과를 전제로 했을 때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사령탑으로서 자신의 성패가 러시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러시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 앞서 최종예선 등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도 산적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 깜짝 발탁된 이찬동(광주)의 선발 배경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찬동과 최보경(전북)을 놓고 가장 고심했다. 6월 최보경을 발탁했는데, 최근 경기를 지켜보니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찬동을 뽑았다. 그동안 대표팀 문이 항상 열려 있다고 자주 말해왔는데, 들어오는 문도 열려 있지만 나가는 문도 열려 있다.”

    최보경에게 보낸 ‘공개 경고 메시지’에 그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슈틸리케, 동아시안컵에서 통할까
    “나가는 문도 열려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취임한 뒤 단기간에 많은 긍정적 변화와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1월 2015 AFC 아시안컵에서 27년 만에 준우승을 이끌었고, 6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미얀마와 G조 1차전에서도 무난히 승리하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산뜻한 첫걸음도 뗐다. 더욱이 대표팀 소집 때마다 ‘새 얼굴’을 발탁해 새로운 동력으로 만들었다. 2015 AFC 아시안컵에서 이정협(상주)을 ‘군데렐라’로 탄생시켰고 3월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와 2연전에선 이재성(전북), 6월 아랍에미리트(UAE), 미얀마와 2연전에선 이용재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 “주관이 뚜렷한 감독”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 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월부터 ‘붙박이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이정협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믿음을 과시하며 또 한 번 호출했지만, K리그의 떠오르는 ‘젊은 공격 자원’으로 꼽히는 황의조(성남)와 주민규(서울이랜드)는 끝내 외면했다.

    이정협을 처음 발탁할 때 소속팀에서조차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그에 대해 대표팀 내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적잖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책임은 내가 진다”고 밀어붙였고, 결국 그를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성장시켰다. 한일전 등이 포함된 동아시안컵의 경우 여느 감독이라면 당연히 ‘최상의 전력’으로 나가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했을 터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과감히 실험의 무대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만의 뚝심 또는 고집, 바로 ‘슈틸리케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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