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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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민심은 부처님 손안에?

정치인들 불교계 공략 치열…법회마다 참석 눈도장 찍기 ‘열띤 구애작전’

  • 입력2005-05-18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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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민심은 부처님 손안에?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10월20일 개산대재(사찰창건 행사). 3000여명의 불교신도(불자)가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민주당 한화갑 김중권 최고위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부인 한인옥씨,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부인 권양숙씨 등 정계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왜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대구의 이 사찰로 모여든 것일까.

    10월22일 일요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청년회 전국대의원 대회에는 최근 불교계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던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노장관의 한 측근은 “전부터 안면이 있었기에 요청이 와 참석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두 가지 풍경은 최근 불교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각축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 열리는 불교 행사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노리는 대선주자들도 불교계와 선이 닿는 참모를 속속 보강하며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불교계를 통해 영남권을 공략하는 우회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선주자들 친 불교계 인사 속속 영입

    영남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불교 신자가 월등히 많은 곳이다(‘표’ 참조).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펴낸 ‘한국의 종교현황’자료에 따르면 불교 인구는 1032만여명. 이 가운데 영남인구가 440여만명으로 42%를 넘는다. 종교 인구 가운데 불교 신자 비중을 따져보면 더 높다. 부산은 종교 인구 55.2% 중 불교 인구가 38.2%, 경남의 경우 종교 인구 50.4% 중 불교 인구가 36.3%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 (52.6% 중 33.2%), 경북 (48.8% 중 31.0%)도 사정이 비슷하다. 때문에 영남 불교계를 가까이 두기 위한 정치권의 구애(求愛)는 대선을 앞두고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치권의 불교계 접근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조계종 총무원 등 중앙을 상대로 발걸음이 잦았다면 최근에는 지역 사찰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요즘 불교계가 과거처럼 총무원의 지시가 일방적으로 먹혀드는 구조가 아니라는 데서 연유한다. 94년 이른바 ‘종단개혁’에 의해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퇴진한 뒤부터 생긴 변화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얼마 전 민주당 일각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정부 요로에 전달했다. “10월 들어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형 사찰에서 열리는 20여회의 법회는 국민의 정부 활동상황을 홍보하고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개산대재 및 호국안민 남북통일 기원법회’(10월1일, 경북 의성 고운사) ‘민족통일을 위한 통영-도서지역 무차화합 대법회’(10월2일, 경남 통영시민문화회관) ‘제1355주년 개산대재 대법회’(10월6일, 경남 양산 통도사) ‘제28회 신라불교문화 영상대재 및 보살계 수계산립 대법회’(10월10일, 경북 경주 불국사) ‘하동 청소년 수련원 개원 및 평화통일기원 수륙대재’(10월11일, 경남 하동 청소년 수련원) 등 10월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천명씩 참석하는 불교계 행사들이 잇따라 열렸다. 줄잡아 20여 곳이 넘는다.

    여권의 영남권 공들이기를 보여주듯 거의 대부분의 이들 행사에는 연등회(민주당 소속 불자 의원들의 모임·회장 김기재 의원) 소속 국회의원 한두 명이 꼭 참석했다. 연등회 고문으로 있는 한화갑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김기재 조성준 추미애 장정언 의원 등이 열심이다.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연등회 이상곤 사무국장.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연등회와는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 동국대를 나와 통일민주당 당진지구당 위원장과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특보를 지낸 박준호씨가 이위원의 불교계 창구다. 이위원도 모습을 보이지만 부인인 김은숙씨가 더 열심. 두 사람은 모두 불교신자다. 박특보는 “이위원은 전국 교구본사 주지는 물론 불교계의 주요 스님들은 다 만났다. 요즘에는 너무 오라는 데가 많아 고민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위원측에서는 영남권의 ‘반 이인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불교계가 한몫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과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도 최근 불교계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연등회에 가입한 김위원은 10월8일 서울 양재동 관문사에서 열린 ‘민족화합과 남북평화통일 축원 관문사 창건 2주년 법회’에 참석한 데 이어 10월22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직장-직능불자연합 대법회’에 참석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위원은 “지난 총선 때 불교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내가 도울 차례“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캠프를 확대 개편한 노장관은 서석재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조승우씨를 영입, 불교 창구를 맡겼다. 불교신자인 노장관 또한 영남 민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불교 행사를 챙긴다는 계획이다. 부인인 권양숙씨는 스님들을 만나는 등 밑바닥 훑기에 들어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거처를 대구로 옮기는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중권 최고위원도 불교계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김위원 캠프에 들어간 황태순 정책보좌역은 “담당자는 없지만 회의 시간에 불교계와 관련해 논의를 하는 등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위원은 10월 열린 대구 동화사 개산대재에 김대중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를 갖고 참석하는 등 청와대와 핫라인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측에서는 한인옥씨가 전국 사찰을 돌고 있다. 10월10일 경주 불국사 영상대재 참석, 11일 전국 비구니회관 상량식 참석, 20일 대구 동화사 개산대재 참석 등 10월에 참석한 불교 행사만도 10여 곳이 넘는다. 불국사를 방문했을 때는 지구당위원장 부인 수십 명이 동행하기도 했다. 이총재측에서는 함종한 전 의원이 불교특보를 맡아 한씨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을 지낸 김영국씨(고흥길 의원 보좌관)도 거들고 있다. 국회의원 중에서는 하순봉 의원이 이총재측 인사로 불교계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각종 불교 행사에 경쟁적으로 참여하다보니 마주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이총재 부인 한인옥씨와 이위원 부인 김은숙씨는 묘한 신경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교계의 한 인사는 “두 사람이 만날 때면 아무래도 서먹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10월20일 동화사 개산대재 때 김씨가 불참한 것은 한씨가 참석한 것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이위원측에서는 “한인옥씨가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불교계 대세를 잡았다”고 자신하고 있다.

    불교계를 둘러싼 신경전은 국회 정각회장 문제와도 얽혀 있다. 불교를 믿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정각회 회장을 놓고 여야간 치열한 신경전이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 것(주간동아 246호 참조). 정각회장은 국회의원을 대표해 불교계를 상대할 수 있어 영남권 공략과 관련해 여야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자리다. 이총재는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에게 특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고 민주당 또한 “여당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0월 들어 경북 안동 홍은사에서 열린 전국 산악인 불자대회(10월3일)와 대구 동화사 개산대재(10월20일)에 참석했고 10월24일에는 경기도 안양 삼막사에서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불교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이러한 움직임에 불교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누구는 쭛쭛쭛편, 누구는 쭛쭛쭛편’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등 정치권 줄서기와 관련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불교계의 한 인사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여러 후유증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종단 차원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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