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14일 인천에서 벌어진 SK-현대전은 흥미로운 선발의 맞대결이었다. 현대 전준호와 SK 정수찬. 둘 다 팀 선발 로테이션으로 따지자면 제4, 5선발에 지나지 않지만 굳이 다르게 보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재미가 있는 싸움이었다. 병장과 공익근무요원의 한판 승부인 것.
현대의 전준호는 지난 94년 태평양 입단 후 현역으로 군에 입대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 96년 12월부터 육군 방공포 부대에서 복무하다 99년 1월 제대했다. 대한민국 남자 중 으뜸 현역 병장이지만 프로야구판에서는 희귀종. 삼성 노장진, LG 최향남 정도가 병장 계급장을 달았을 뿐이다.
한편 정수찬은 공익근무요원 출신. 지난 98년 12월 입대해 부산 사하구청 하천 감시요원으로 근무했다. 한 달 월급 10만원을 받으며 산업폐기물 투척 등을 주로 감시했다. 지난해 5월29일 소집 해제.
전준호와 정수찬 모두 팀 전지훈련서 기대주로 손꼽히던 터였다. 전준호는 정민태의 일본 진출(요미우리 자이언츠) 이후 한 자리 빈 선발 로테이션을 채울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정수찬 또한 플로리다 마무리 훈련서부터 기대를 모아왔다. 이 날이 바로 이들의 시험무대나 다름없었다.
결과는 정수찬의 승리. 7이닝 동안 현대 타선에 단 3개의 안타만 내주며 1실점,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정수찬의 승리 비결은 슬라이더. 최고 137km까지 나왔다. 직구 구속이 아니라 변화구 구속이 엄청났으니 현대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 수밖에. 5피안타로 호투했으나 4회 불의의 홈런 두 방(에레라, 브리토)을 맞은 전준호로서는 타선의 부진을 원망할 수밖에.
새벽 근무 뒤 아침 잠을 아끼며 모교 경남고에서 훈련한 정수찬. 방공포부대서 수건으로 섀도 피칭을 하며 내무반의 저녁을 보냈을 전준호. 둘 모두에게 이 경기는 유난히 뜻깊은 2001시즌 첫 등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