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골목산책을 즐기는 전민진 씨.
출판사를 그만두고 또래 친구 2명과 함께 콘텐츠제작사를 차린 전민진(32) 씨는 요리, 자전거 타기, 산책, 영화 보기를 즐긴다. 틈날 때마다 마실 나가듯 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홍대 주변 골목을 혼자 탐색한다는 그는 “마냥 걷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거리의 변화를 읽으면 트렌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전날에는 중국마트와 맥주마켓 등 독특한 식료품 상점들을 천천히 구경했다고 했다.
‘멍 때리기’ 하며 충만감 느껴
6년 차 ‘기러기 아빠’이자 방송프로그램 제작사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는 안동수(49) 씨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몇 가지 안주를 뚝딱 만든 뒤 동료나 후배들을 불러서 먹이고 수다도 떨지만 자신만을 위해 요리할 때도 많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가는 것도 일과 중 하나다. 안씨는 “보스턴테리어 종을 입양한 지 1년 8개월 됐다. 힘이 세고,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게 딱 내 스타일이라 친구처럼 지낸다. 밖에서 함께 놀다 보면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평일 심야나 주말에 영화를 보러갈 때도 당연히 혼자다. 안씨는 “영화는 혼자 봐야 몰입이 더 잘된다. 스토리에 빠져들어 인물과 에피소드, 장면들을 분석하면서 보는 맛이 있다”고 했다.
‘돌싱’(돌아온 싱글)으로 혼자 사는 김영준(54) 씨는 1년에 10여 차례씩 서울과 제주를 오간다. 울창한 숲 속 산책과 ‘멍 때리기’를 즐긴다.
“제주에 가면 수령이 각각 600~900년씩 된 비자나무 숲에 가요. 거기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하다 벤치에 잠깐 누워 한숨 자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내가 비자나무가 되는 꿈을 꿀 때도 있죠. 혼자 놀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어 충만감을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혼자 놀기’를 검색하면 ‘혼자 놀기 달인’ ‘혼자 놀기 좋은 곳’ ‘휴일에 혼자 놀기’ ‘혼자 놀기 프로젝트’ ‘혼자 가볼 만한 곳’ 등 관련 정보가 끝없이 쏟아진다. 개인 블로그에 ‘혼자 놀기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다. 서점가에는 최근 2~3년 사이 관련 책 수십 종이 쏟아져 나왔다. ‘혼자 사는 즐거움 :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 찾기’ ‘혼자여서 더 좋은 여행 : 일생의 버킷리스트 No.1 혼자 훌쩍 여행 떠나기’ ‘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혼자라서 좋은 날 :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위한 일상 레시피’ ‘나 홀로 즐기는 삶’ ‘혼자의 발견’ 등이 눈에 띈다.
‘혼자 놀기’가 자기계발의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하는 강미영 씨.
최근 서울 곳곳에서는 거리 구경, 사람 구경을 하며 유유자적 홀로 거니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3월 23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주변도 산책을 나온 ‘혼자’들로 붐볐다. 호수를 향해 나란히 놓인 벤치 4개에 각각 자리 잡은 사람들이 혼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방해받기 싫다는 듯 보던 책을 덮고 자리를 떴다. 이어폰을 꽂은 채 홀로 앉아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30대 초반 싱글인 그는 “사무실이 근처에 있다. 일하다 햇볕이 좋아 잠시 ‘해바라기’를 하러 나왔다”며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가끔 짬이 나면 혼자 산책을 나온다. 여기는 조용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했다.
‘혼자’와 ‘같이’ 사이에 균형 잡기
애견과 함께 산책하는 ‘혼자 놀기’의 달인 안동수 씨.
1인 가구가 506만1000가구(27.1%)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이면 588만 가구(29.6%)로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싱글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혼자 놀기’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간은 사람과 자연, 문화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 중 가장 행복감을 주는 건 사람과 더불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도 혼자 노는 데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 현대인이 늘어나는 건 사람들에게 지친 이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며 “사람과 어울리고 함께 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타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사람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혼자 놀면서 그 모습을 촬영하거나 글로 적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하면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도 손쉽게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윤 교수는 이것이 최근 ‘혼자 놀기’가 유행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그는 “혼자 놀더라도 자연과 문화를 즐긴다면 뇌가 충전되고 에너지도 얻을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면서도 “그러나 지나치게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면 사람을 만나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니 균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