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오후 4시 17분쯤 부산 사하구 다대1동 몰운대종합사회복지관(복지관). 안모(38·여)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모(19) 군에게 애원했다. 이군은 안씨의 둘째아들 정상윤(당시 2세) 군을 안고 난간에 붙어 있었다. 안씨는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이군은 180cm 정도의 키에 100kg이 넘어 보이는 큰 체격. 자세한 건 몰라도 장애인임에는 분명했다. 안씨는 침착하려 애썼다.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3층이었기에 자칫 자극했다간 아이가 위험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이군이 안씨의 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쿵!’
“안 돼!” 아래를 내려다봤다. 방금까지 재잘대며 웃던 아이는 차가운 시멘트 위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누워 있는 상윤이의 머리 주위로 피가 흘렀다. 안씨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손발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안 돼….”
“데리고 놀 줄 알았지, 던질 줄이야…”
그날 안씨는 첫째아들(7)이 수업을 받는 동안 둘째를 데리고 복도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씨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첫째가 따로 장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또래에 비해 언어가 늦고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아 주위에서 치료 수업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2013년 5월부터 두 아들을 데리고 매주 수요일 이 복지관을 찾았다. 수업은 미술치료(오후 2시), 인지·통합치료(오후 4시)로 나뉘어 진행됐다.
두 번째 수업에 들어간 첫째아들을 기다리던 안씨 모자 앞에 어디선가 이군이 나타났다. 복지관을 오가며 낯이 익었던 때문인지 상윤이는 이군의 손을 거리낌 없이 잡았다. 안씨는 “단지 복도에서 놀 줄 알고 놔뒀는데, 그놈이 아이를 데리고 비상구로 통하는 복도 끝 철문을 열려고 했다. 말리러 가던 순간 일이 벌어졌다”고 기억했다.
사고가 발생한 부산 사하구 몰운대종합사회복지관. 오른쪽 건물의 3층 외부 계단(빨간색 점선)은 안전장치 없이 뻥 뚫려 있어 1급 발달장애인 이모 군의 돌발행동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구급차가 도착했다. 안씨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구급차에 탔다. 상윤이는 우는 엄마를 쳐다보며 겨우 숨을 쉬었다. 왼쪽 머리가 함몰됐고 이마와 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렀다. “윤아, 엄마 여기 있어, 조금만 참아, 조금만 견뎌줘, 윤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아이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뇌사상태에 빠진 상윤이는 5시간 뒤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엄마 아빠와의 헤어짐이 슬펐는지 한쪽 눈에는 피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흘 뒤 부검이 실시됐다. 명백한 살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군은 사고 당일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상윤이의 사망 원인은 뇌출혈과 머리·갈비뼈 골절상으로 확인됐다. 엄마는 아들이 평소 좋아하던 옷을 입혀 관에 누인 뒤 화장했다.
그날 이후 안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었고 눈을 뜨고 있을 땐 눈물이 멈추지 않아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그는 “첫째아이를 봐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뒤 안씨는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나서부터 사고와 관련된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이군은 경찰에 체포된 뒤 구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씨는 “관리를 소홀히 한 복지관과 이군의 보호자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군이 ‘1급 발달장애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발달장애란 자기 나이에 이뤄져야 할 발달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발달선별검사에서 해당 연령의 정상 기대치보다 통상 25%가 뒤처진 경우다.
안씨가 복지관 측에 문의한 결과 이군은 두 달 전까지 이곳에서 치료 수업을 받았다. 사고 당일에는 단순히 놀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다. 1급 발달장애인은 보건복지부에 신청하면 외출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인을 무료로 둘 수 있다. 이군의 경우 호산나복지재단에 등록된 김모(25) 씨를 활동보조인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이날 김씨는 복지관에 없었다. 사고 직후 병원 응급실로 달려온 것은 김씨의 어머니 백모(53) 씨였다. 백씨가 보호하는 20대 장애 남성도 당시 복지관에 있었다. 호산나복지재단 관계자는 “백씨 모자는 2013년 10월부터 바우처(사회복지서비스 이용권) 사업을 통해 활동보조인으로 일했는데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 보호 대상을 바꾼 것”이라며 “아들(이군의 활동보조인 김씨)이 다른 일 때문에 잠시 늦어 어머니 백씨가 2명을 동시에 돌보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백씨 모자와 호산나복지재단을 상대로 활동보조인력 운영상 과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김종건 동서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활동보조인 지원 사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 공급기관을 상대로 한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연금공단의 지도 및 점검, 평가,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복지관의 허술한 안전관리
갑작스러운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상윤 군(사망 당시 2세).
안씨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구청에선 전화 한 통 없었다. 안씨는 기다리다 지쳐 부산 사하구청 복지과를 직접 찾았다. 그는 “복지관은 구청에서 관리감독하는 만큼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주리라 기대했지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공무원이 나에게 ‘이성을 찾은 후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할 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이번 사고에서 뒤로 빠지려고 하는 태도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안씨는 사고가 일어난 복지관도 원망했다. 그는 “복지관에서는 처음에 ‘개인적인 일’로 치부했던 것 같다. 사고 직후 수수방관하며 ‘과실이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다 여론이 점점 나빠지자 ‘책임질 일이 있으면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안씨는 조만간 활동보조인 김씨와 복지관, 호산나복지재단 등을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복지관의 경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데도 안전 관리에 허술했다는 게 안씨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무척 가슴 아픈 사건이다. 사건이 명백한 만큼 고소 여부에 상관없이 복지관이나 가해자의 활동보조인 등이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안씨는 “누군가를 꼭 처벌하기 위해서 이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있는데도 가해자가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대충 넘어가려 하니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고치지 않으면 불쌍한 우리 상윤이 같은 희생자가 또 나오지 않겠느냐”며 울먹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