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협회 소속 기자와 앵커들이 5월 21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일수 KBS 기자협회장, 이영현 앵커, 박유한 앵커, 최문종 앵커.
뒤이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그가 4월 말 한 회식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하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유족들이 KBS와 청와대를 항의 방문했다. 결국 김 전 보도국장은 5월 9일 오전 이 발언을 해명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이 자리에서 또 하나의 큰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김 전 보도국장은 문제가 된 ‘교통사고’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세월호 참사는 안전 불감증에 의한 사고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뉴스 시리즈물을 기획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교통사고 사망자가 여전히 한 달에 500명 이상 발생하는 만큼 이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야 한다고 발언했을 뿐이다. 이 내용이 일방적으로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권력 눈치를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KBS 사장이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자신 역시 보도국장 자리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 치 양보 없는 노사 대치
5월 21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노동조합원들이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김 전 국장의 발언에 KBS 기자 200여 명이 비상총회를 연 것은 5월 12일. 이들은 길 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제작을 거부하기로 결의했고, 일주일 뒤인 19일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길 사장은 기자회견과 사내방송 등을 통해 사퇴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
길환영 KBS 사장이 5월 21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사내방송을 통해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길 사장은 특별담화를 통해 사퇴 거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기자가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고, PD가 연출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KBS 내부에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뜻이다. KBS의 이번 사태가 세월호 참사의 한가운데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막내기자들의 반성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KBS 노조 관계자는 “세월호 사태 이전부터 (권력에 의한) 부당한 통제를 느끼고 있었고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에 대한 보도조차 간섭과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전 보도국장의 발언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늘 의심해왔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그가 확인해준 셈이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으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
KBS 보도국의 한 기자는 “우리는 KBS 회사원이기 이전에 언론인이다. 우리 뉴스에서 정권에 부담이 되는 기사들이 나가지 않고 정권의 안위 보존을 위한 기사 위주로 편집되는 행태를 목격하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KBS라는 조직이 완전히 망가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이번만큼은 길 사장의 보도 개입이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혼자만의 충성에 의한 것이었는지 분명히 확인하고자 한다.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진 다음, 그의 사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KBS 내홍은 간부진 사이에도 번지고 있다. 보도국 기자들뿐 아니라 경영직군 간부들까지도 사퇴 의사를 표명하며 길 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2012년 총파업을 겪었던 MBC 역시 세월호 사고 보도와 관련해 기자 200여 명이 반성문을 발표하는 등 사측과 노조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 모양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한 달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 과정에서 지상파의 휘청거림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래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은 어쩌면 치유의 시작일 수 있다. 그 싸움의 끝에서 지상파 보도국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