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나 국군포로 등 북한과 관련한 인사를 만날 때마다 박선영(57·사진)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동국대 법학과 교수, 전 자유선진당 의원)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탈북자 대모로 좋은 일을 한다”며 칭찬하는 이도 있지만 비난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만큼 그는 북한 문제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사할린 한인 등 역사 조난자들을 위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자 지난해 7월 사단법인 물망초를 만들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6·25전쟁 추념공원 만들기 운동에 나선 그를 서울 중구 동국대 법학과 교수실에서 만났다. 그의 휴대전화가 10여 분마다 울리는 통에 대화가 자주 끊겼지만 그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그러하듯 기자의 질문에도 충실히 답했다. 방금 전 국군포로들과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다녀왔다는 그가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국정원이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탈북 국군포로들을 초청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한민국이 그동안 국군포로를 나 몰라라 한 것은 너무 비겁했다’면서 국군포로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을 기억하는 나라는 선진국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후진국인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듯하다.”
6·25 관련 복합문화공간 추진
사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탈북 국군포로에 대해 무관심했다. 남북 협상테이블에서도 국군포로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정부 도움 없이 탈북한 국군포로들에게 정착금을 주는 정도의 미온적인 구실만 해왔다. 국방부 군비통제과에선 이들의 존재를 군사기밀로 통제하면서 대외 접촉을 막았다. 국군포로 81명 가운데 31명이 사망했지만 제1호 생환 국군포로인 조창호 중위의 사망만 알려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6·25전쟁 추념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을 방문해 헌화했다. 하지만 정작 6·25전쟁이 발발한 우리나라에는 6·25전쟁을 기념할 만한 공원이 없다. 이게 말이 되나. 만약 우리나라에 그런 공원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부가 많은 사람의 헌신 덕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6·25전쟁 참전자 추모비 건립이 아니다. 그는 6·25전쟁의 사회적 파급력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추념공원, 즉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더욱이 5개 지원국과 16개 참전국의 개별 전시관을 만들어 그 나라들의 공로를 알릴 생각이다. 전쟁박물관을 만들어 전쟁 실태와 이후 생활상을 전시하고, 6·25전쟁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를 조명해 6·25전쟁 영화관, 6·25전쟁 음악관, 6·25전쟁 문학관 등을 세우려고 한다. 또한 전 세계에서 매년 150여 편씩 만들어지는 전쟁 영화를 소개하는 전쟁영화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방문객을 고려해 호텔 등 편의시설 확충도 고려하고 있다.
“너무 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게 만들면 만들지 않는 것만 못하다. 사람들이 6·25전쟁 기념공원의 존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규모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몇백억 원, 몇천억 원이 들 수도 있지만 역사를 후세에 알리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6·25전쟁 추념공원을 만들면 후손들이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기대했다. 6·25전쟁에서 국군 13만7800명이 전사하고, 3만2800여 명이 실종됐다. 연합군은 4만670명이 죽었으며, 민간인은 37만여 명이 사망하고 8만5000여 명이 납북됐다. 이처럼 큰 피해가 있었지만 “6·25전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승리한 전쟁”이라고 박 이사장은 힘주어 말했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 지도자들이 칭송하는 나라가 됐다. 원조를 받았지만 이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 6·25전쟁이 자리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잊고 지낸다. 그런 배경을 잘 기억하면 외교문제도 수월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을 기념하면서 21개 참전국과 지원국 정상들을 모아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도 좋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익? 사회활동 넓힐 것”
6·25전쟁 추념공원 대상지는 강원 양구의 펀치볼과 춘천의 옛 미군기지로 압축된 상태다. 춘천은 우리가 처음 승리한 곳이고, 펀치볼은 6·25전쟁 중 60여 차례나 적에게 뺏기고 또 빼앗는 격전을 치른 곳이다. 미군부대가 철수하는 서울 용산도 대상지로 거론된다. 대상지는 공청회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추념공원 설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관련자들의 중지를 모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박 이사장은 풀죽지 않고 도리어 의지를 다졌다.
“힘든 일이 많겠지만 기다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관련 일을 할 때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 체제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인데, 그들과 편하게 지낸다는 것이 쉽겠나. 요즘도 그들과 부닥칠 때면 북한 체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며 이해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과의 관계가 점점 나아진다.”
첫 미팅 상대와 결혼한 박 이사장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다. 그만큼 한 번 사랑하면 우직하게 한길만 가는 성격이다. 인민군으로 변한 제자에게 월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외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어릴 적부터 전쟁, 국군포로, 탈북자에 눈길이 갔다는 그는 “앞으로도 역사적 조난자들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두고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쇼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려고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정치인이 되지 않을 거다. 의원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정치인은 법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로 정쟁 대상만 될 뿐 뭔가를 이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회활동을 차근차근 넓혀 가겠다. 물망초에서 탈북자 대안학교를 만든 것도 종교를 배제한 탈북자 대안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의 진심을 알게 될 것이다.”
박 이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6·25전쟁 추념공원 만들기 운동에 나선 그를 서울 중구 동국대 법학과 교수실에서 만났다. 그의 휴대전화가 10여 분마다 울리는 통에 대화가 자주 끊겼지만 그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에게 그러하듯 기자의 질문에도 충실히 답했다. 방금 전 국군포로들과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다녀왔다는 그가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국정원이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탈북 국군포로들을 초청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한민국이 그동안 국군포로를 나 몰라라 한 것은 너무 비겁했다’면서 국군포로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을 기억하는 나라는 선진국이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후진국인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듯하다.”
6·25 관련 복합문화공간 추진
사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탈북 국군포로에 대해 무관심했다. 남북 협상테이블에서도 국군포로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정부 도움 없이 탈북한 국군포로들에게 정착금을 주는 정도의 미온적인 구실만 해왔다. 국방부 군비통제과에선 이들의 존재를 군사기밀로 통제하면서 대외 접촉을 막았다. 국군포로 81명 가운데 31명이 사망했지만 제1호 생환 국군포로인 조창호 중위의 사망만 알려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6·25전쟁 추념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을 방문해 헌화했다. 하지만 정작 6·25전쟁이 발발한 우리나라에는 6·25전쟁을 기념할 만한 공원이 없다. 이게 말이 되나. 만약 우리나라에 그런 공원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부가 많은 사람의 헌신 덕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6·25전쟁 참전자 추모비 건립이 아니다. 그는 6·25전쟁의 사회적 파급력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추념공원, 즉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더욱이 5개 지원국과 16개 참전국의 개별 전시관을 만들어 그 나라들의 공로를 알릴 생각이다. 전쟁박물관을 만들어 전쟁 실태와 이후 생활상을 전시하고, 6·25전쟁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를 조명해 6·25전쟁 영화관, 6·25전쟁 음악관, 6·25전쟁 문학관 등을 세우려고 한다. 또한 전 세계에서 매년 150여 편씩 만들어지는 전쟁 영화를 소개하는 전쟁영화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방문객을 고려해 호텔 등 편의시설 확충도 고려하고 있다.
“너무 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게 만들면 만들지 않는 것만 못하다. 사람들이 6·25전쟁 기념공원의 존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규모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몇백억 원, 몇천억 원이 들 수도 있지만 역사를 후세에 알리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9월 9일 국가정보원이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탈북 국군포로들을 초청해 행사를 열었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 지도자들이 칭송하는 나라가 됐다. 원조를 받았지만 이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 6·25전쟁이 자리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잊고 지낸다. 그런 배경을 잘 기억하면 외교문제도 수월하게 풀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을 기념하면서 21개 참전국과 지원국 정상들을 모아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도 좋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익? 사회활동 넓힐 것”
6·25전쟁 추념공원 대상지는 강원 양구의 펀치볼과 춘천의 옛 미군기지로 압축된 상태다. 춘천은 우리가 처음 승리한 곳이고, 펀치볼은 6·25전쟁 중 60여 차례나 적에게 뺏기고 또 빼앗는 격전을 치른 곳이다. 미군부대가 철수하는 서울 용산도 대상지로 거론된다. 대상지는 공청회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추념공원 설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관련자들의 중지를 모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박 이사장은 풀죽지 않고 도리어 의지를 다졌다.
“힘든 일이 많겠지만 기다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탈북자, 국군포로, 납북자 관련 일을 할 때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 체제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인데, 그들과 편하게 지낸다는 것이 쉽겠나. 요즘도 그들과 부닥칠 때면 북한 체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며 이해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과의 관계가 점점 나아진다.”
첫 미팅 상대와 결혼한 박 이사장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불렀다. 그만큼 한 번 사랑하면 우직하게 한길만 가는 성격이다. 인민군으로 변한 제자에게 월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외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어릴 적부터 전쟁, 국군포로, 탈북자에 눈길이 갔다는 그는 “앞으로도 역사적 조난자들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두고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쇼를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려고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정치인이 되지 않을 거다. 의원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정치인은 법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로 정쟁 대상만 될 뿐 뭔가를 이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회활동을 차근차근 넓혀 가겠다. 물망초에서 탈북자 대안학교를 만든 것도 종교를 배제한 탈북자 대안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의 진심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