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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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육아법은 ‘무한정 사랑’ 꾹 참고 기다리면 아이는 내 품에

오냐오냐 다칠세라 전전긍긍, 알콩달콩 무럭무럭 커

  • 이창식 번역가 irakai@naver.com

    입력2013-07-22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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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육아법은 ‘무한정 사랑’ 꾹 참고 기다리면 아이는 내 품에

    필자인 번역가 이창식 씨와 손자 조재영 군.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 하면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도 결혼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해마다 물가가 다락같이 오르는 데다 소비성도 그만큼 높아져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저축은커녕 생활하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취직해 결혼까지 하고 나면 그다음엔 곧바로 육아문제가 대두한다. 행복하고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선 아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낳아도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 내가 키우자니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남의 손에 맡기자니 안심이 안 된다. 그렇다고 시댁이나 친정부모에게 부탁하자니 염치가 없다.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시키느라 지금까지 고생한 걸 빤히 알면서 어떻게 손자까지 키워달라고 부탁한단 말인가.

    우리 부부가 외손자 재영이를 돌보게 된 것은 아내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맞벌이 부부인 딸과 사위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쩔쩔매는 걸 보고 부모 된 처지에 모르는 척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아내가 딸아이한테 “내가 키워줄게” 했던 모양이고, 귀여운 외손자의 재롱을 보며 사는 걸 만년의 홍복(洪福)이라 믿는 나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진이 좀 빠져도 내리사랑 솔선수범

    그런데 아이는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고, 나온 뒤엔 커갈수록 힘들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손자 녀석과 끼니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고, 지칠 줄 모르고 날뛰는 녀석이 벽 모서리에 이마라도 찧을까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다 마침내 기진맥진하곤 한다. 그렇다고 백년지객인 사위를 푸대접할 수도 없고, 딸한테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안달하는 그 지긋지긋한 모성애도 버리기가 어렵다.

    외손자 녀석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흘러간다. 주말이 되면 다음 한 주 동안 녀석에게 먹일 것과 딸 내외에게 공급할 반찬거리를 장만하기 바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탈진한 기운을 되찾으려고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인생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느냐며 우리 부부를 비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와 아내는 딸이 안심하고 회사에 다니는 것이 보기 좋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 자신도 성장하고 회사에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딸이 아내한테 사근사근해진 것도 나로서는 보기 좋다. 제 새끼 낳아 키워보기 전까진 몰랐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깨달은 것 같고, 자기 대신 고생하는 점에 대해서도 미안해했다. 사실 부모 처지에서는 그게 더 고맙고 기특해, 손자 키우느라 진이 좀 빠지긴 해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식의 그런 깨달음은 부모 된 자의 솔선수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위는 한몫을 더 한다. 자기는 이런 멋진 아내와 훌륭한 장인 장모를 만나 큰 복을 받았다면서 “아무래도 제가 전생에 조국을 구했나 봐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따금 장모 어깨를 주무른다. ‘아부성’ 발언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귀여운 데가 있다 싶어 나는 이렇게 장단을 맞춰줬다. “자네가 전생에 조국을 구했다면 나는 우주를 구한 모양이군. 자네가 받은 큰 복 위에 나는 멋진 사위와 귀염둥이 외손자까지 덤으로 받았으니 말이야.” 아무튼 손자 녀석 덕에 우리 부부는 웃을 일이 많아졌고, 딸 내외와의 이해도도 더 깊어졌다.

    할아버지 육아법은 ‘무한정 사랑’ 꾹 참고 기다리면 아이는 내 품에
    아침 8시 무렵 사위는 출근길에 재영이를 차에 태우고 우리 집으로 온다. 내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가 녀석을 받아 안고 올라오면, 아내는 아침밥을 먹인 뒤 10시쯤 어린이집에 데려간다. 오후 4시쯤 내가 어린이집으로 가 녀석을 데려온 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쯤 같이 논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논다. 공놀이도 하고, 미끄럼틀과 그네도 같이 타고, 회전기구도 타면서 놀다 보면 아내가 우리 둘이 수준이 비슷해 보인다고 말하곤 한다. 근처 화단으로 나비가 날아오면 재영이와 함께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라고 노래하며 쫓아가기도 하고, 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들을 보면서 “개미가 개미가 엄마 심부름 간다”라고 노래 부르며 쫓아다닌다. 어지간히 놀았다 싶으면 집으로 데려온다. 녀석을 목욕시키고 저녁을 먹이는 일은 아내 몫이다. 7시쯤 사위가 퇴근길에 들러 재영이를 차에 태우고 자기 집으로 간다.

    외손자를 우리 집에서 재워야 할 때도 자주 있다. 딸아이가 야근하거나 손자 녀석이 아플 때다. 손자가 아프면 젊은 부부한테 맡겨둘 수가 없다. 낮에 근무하느라 피곤해서 그렇겠지만, 일단 잠에 빠지면 옆에서 아이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도 세상모르고 잔다. 그럴 땐 ‘할매’ 손길이 필요하다. 아내가 밤새 잠을 못 자도 나는 도움이 안 된다. 그다음 날도 나는 마음만 안타깝지 아내를 도울 방법이 없다. 손자 녀석이 아플 때는 계속 칭얼대며 할매 등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와 율동도 소용없고 공놀이도, 동화책 읽기도 소용없다. 기껏해야 아내와 함께 먹을 누룽지죽이나 쑤고, 아내가 시키는 잔심부름이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썰매 끄는 루돌프 사슴코로 변신

    손자 녀석이 안 아플 때는 너무 설쳐서 걱정이지만, 아플 때보다는 수백 배 행복하다. 거실 저쪽 끝에서 소파까지 총알처럼 달려와 내 가슴에 팍 안긴다. 동요를 틀어주면 팔다리를 팔랑개비처럼 돌리며 춤을 춘다. 내가 가르쳐준 노래나 말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내가 하는 말투와 행동도 그대로 흉내 내는 걸 보면 폭소가 터진다. 젊은 시절 딸을 키울 때도 귀엽고 예뻤지만, 사랑을 무한정 쏟기엔 시간이 많이 모자랐던 것 같다. 은퇴한 지금은 시간밖에 가진 게 없으니 손자나 듬뿍 사랑해야지 뭐.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가 나중에 사랑을 베풀 줄도 안다고 들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아무리 춥고 바람이 불어도 한 손엔 눈썰매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손자 녀석의 손을 잡은 채 밖으로 나간다. 안 나갔다간 하루 종일 거실에서 방방 뛸 테니 잠깐이라도 데리고 나가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줘야 후환이 없기 때문이다. 솜바지와 점퍼를 입히고 털모자와 부츠, 벙어리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한 다음 아파트를 나선다. 눈썰매 바닥에 두툼한 담요를 깔고 녀석을 앉힌 뒤 담요 앞자락을 가랑이 사이로 빼내 두 다리를 덮어준다. 그런 다음 눈썰매를 끌고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면 내 코에 빨간색 칠만 안 했다 뿐이지 오갈 데 없는 루돌프 사슴이고, 빨간색 털모자를 쓴 손자 녀석은 영락없는 꼬마 산타다.

    딸이 어릴 때도 나는 그랬다. 그땐 회사 일로 바빠 많이 놀아주진 못했지만, 시간 날 때마다 자전거에 딸을 태우고 동네방네 돌아다녔고, 내 손으로 만든 엉성한 나무썰매에 태워 눈밭 위를 끌고 다니거나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함께 타기도 했다. 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까지 시골에서 자라, 시골 논밭과 풀밭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이들한테는 그게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나는 확신하는데, 손자 녀석은 매일 아파트에만 갇혀 살다가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이 고작이다. 가엽지만 방법이 없다. 엄마 아빠의 직장을 시골로 옮길 수도 없고, ‘하찌’와 ‘함매’가 녀석만 데리고 시골에서 살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좀 더 자라면 시골로 자주 놀러 다니고, 야구와 축구도 함께 하려고 벼르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좀 하려고 하면 손자 녀석이 들어와 무릎 위로 기어오르며 “숫자 공부하려고…” 한다. 녀석은 자판기로 숫자 치기를 좋아한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혀두면 해로울 것 같아 1부터 20 정도까지 치고 나면 거실로 안고 나와 블록 쌓기 또는 플라스틱 자동차 태우기를 하거나, 동요를 틀어놓고 같이 율동을 한다.

    잠자리에 뽀로로, 코코몽 등 인형은 필수

    할아버지 육아법은 ‘무한정 사랑’ 꾹 참고 기다리면 아이는 내 품에

    이창식 씨는 손자를 키운 경험담을 묶어 최근 ‘하찌의 육아일기’를 펴냈다.

    녀석이 조는 기색을 보이면 가슴에 안아 소파에 기대앉은 뒤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우는데, 노래를 부르면 녀석은 가슴에 착 달라붙은 채 가만히 듣고 있다. 한 곡이 끝났다고 뚝 끊어선 안 된다. 그랬다간 녀석이 고개를 반짝 들고 씩 웃으며 놀자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불렀던 노래들이 모두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자장가 세 곡을 연달아 부른 다음에도 잠이 들지 않으면 ‘섬집 아기’ ‘엄마야 누나야’ ‘달맞이꽃’ ‘노을’ ‘그 집 앞’ ‘망향’ 등 다른 노래를 계속 이어 불러야 한다. 노래가 얼른 생각나지 않을 경우엔 앞에 불렀던 노래를 허밍으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녀석이 잠에 빠져들고, 계속 허밍하면서 자리에 누이면 일단 성공이다. 나중에 깨어났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려고 녀석 옆자리에 코코몽과 뽀로로, 구름빵 인형 등을 놓아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원래 잠에서 깨어나도 칭얼거리는 법이 없는 녀석이지만, 좋아하는 인형들을 보면 얼른 끌어안고 거실로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동물 인형들이 옆에 있는 한 녀석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손자 녀석과 놀다 보면 가끔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결혼해 아내와 함께 딸을 키우던 일도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옛날에 불렀던 동요와 유행가를 흥얼거리게 된다. 또 내가 동요를 부르며 율동까지 하면 손자 녀석은 울다가도 뚝 그치고 깔깔대며 따라하곤 한다. 노래와 율동은 아이와 가장 빨리 친구가 되는 방법이다. 그 동요들 중에는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맣게 지워져 요즘은 들어볼 수조차 없는 ‘사탕과자’ ‘술래잡기’ 같은 주옥같은 곡도 있다. “사탕과자 사주세요, 엄마”와 “눈 감기고 발발발”로 시작하는 동요들이다. 만일 이런 동요를 조용필이나 송창식이 발굴해 불러준다면 대히트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Song’창식이 아니라 이창식이다.

    아이에겐 사랑이 무한정 필요하다. 손자 손녀에게 사랑을 무한정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남들이 주는 사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젊은 부모는 살기 바빠 못다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할 수 있다. 자기 아이를 키울 때보다 시간도 남고 사랑하는 마음도 더 넉넉하니까.

    또 아이가 싫어하는 건 가급적 시키지 말아야 한다. 밥 먹이는 일도 포함해서. 아이가 싫다는데 어른이 안타까운 마음에 억지로 하게 만들면 반항심을 키워 성격이 비뚤어질 수도 있다. 불가피하게 꼭 시켜야 할 일이 있다면,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면 그땐 기다려야 한다. 꾹 참고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어른의 의무다. 젊은 부부는 마음이 조급하고 경험도 부족해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가장 무리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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