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데서 어떻게 사니?” 35년째 서울 북촌에서 살고 있는 정근희씨(예맥화랑 대표)는 강남에서 온 친구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화조 시설 미비로 여름이면 골목에서 악취가 나고 조금 넓은 공간은 쓰레기 적치장이 차지하고 있어 터진 봉지 사이로 흘러나온 오수들로 거리가 어지럽다. 그나마 지난 몇 년 사이 도시가스가 들어오면서 골목에 수북이 쌓인 연탄재와 머리를 아프게 하던 가스냄새가 사라진 게 다행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북촌 땅 1평 팔면 강남에 3평 산다고 했어요. 그래도 팔고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죠. 특히 부근에 명문학교가 많아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일부러 이곳에 집을 마련했어요.”
그러나 70년대 말 강남 개발과 함께 콧대 높던 북촌 사람들의 자부심은 꺾이고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 갔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강 건너 이사를 했고, 미련이 남은 사람들은 불편한 한옥을 세놓고 좀더 편안한 주거지를 찾았다. 이처럼 조선시대 명문가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북촌이 사람 살기 어려운 곳으로 낙인찍힌 데는, 지난 20여년 동안 정부가 규제 일변도로 한옥 보존 정책을 강행한 데도 원인이 있다.
“보존도 좋지만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줘야죠. 집수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막상 손을 대자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가난한 세입자들은 그냥 눌러 살았어요. 어느 해인가 장마에 지붕이 내려앉아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니까 부랴부랴 규제를 풀었는데 그때부터 다세대주택이 대책 없이 들어서면서 이제 수십년간 어렵게 지켜온 한옥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거죠.”(정근희)
90년대는 10년 동안 북촌의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정부와 주민, 주민과 주민 사이에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1977년 최고고도지구 지정을 시작으로 1983년 집단미관지구 지정 등 정부가 북촌의 한옥보존을 위해 모든 건축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자, 재산권을 침해당한 데 불만을 품은 주민들은 1988년 ‘한옥보존지구지정해제추진위’를 결성하는 등 집단적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주민들의 규제 반대운동이 격화되자 서울시는 한옥보존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지역환경 보호와 개선에 중점을 두고 몇 차례에 걸쳐 건축 기준을 완화하고, 92년과 95년 창덕궁에 인접한 두 개의 동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했다. 그러자 하루라도 빨리 누옥을 팔고 북촌을 떠나고 싶어하던 일부 주민들과, 값싼 한옥 여러 채를 매입해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만들어 이익을 남기려는 건설업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북촌은 우후죽순으로 개발됐다. 게다가 종로구가 97년 이 지역을 고급빌라 단지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보존을 앞세운 서울시와 개발을 요구하는 종로구 사이의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2000년 들어 서울시는 서둘러 ‘북촌가꾸기종합대책’을 마련하며 난개발 방지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옥보존 자체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보존과 개발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북촌의 한옥 밀집지역 한 군데가 완전히 사라졌고(한옥 80여채가 한꺼번에 철거된 이 일을 두고 이화여대 김홍남 교수는 “북촌의 머리통이 날아간 사건”이라며 비통해한다), 원서동은 다가구주택의 숲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창경궁을 잇는 길은 식당가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제 모습을 잃어가는 북촌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경은 착잡했다. 규제완화 이후 기대했던 재산권 행사나 건물의 경제적 가치 상승 등의 효과는 미비했고, 오히려 한옥촌에 갑자기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생활 침해 등 생활환경이 나빠지고 한옥마을의 전통이 사라지는 등 역효과가 나타났던 것.
주민들의 대응방식도 달라졌다. 원래 북촌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한옥보존지구 해제’를 요구하며 결성되었던 ‘종로북촌가꾸기회’는 서울시의 ‘북촌 가꾸기’에 참여했고, 2000년 한옥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한옥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도 만들어졌다. 올해 1월27일에는 북촌 일대에 거주하거나 직장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 60여명이 모여 ‘북촌문화포럼’(대표 김홍남 교수)을 발족했다.
김홍남 교수는 이 모임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예방 차원에서 일을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윤보선가(家) 담장과 잇대어 4층짜리 건물이 올라갈 때 발을 동동 굴렀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이 터지면 그제서야 민원 넣으러 뛰어다녀도 수확이 없었어요. 이제 전문가들이 모여 삶의 터전으로 북촌을 지키고 가꾸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정부에 제안하자는 겁니다.”
북촌문화포럼은 창립대회와 함께 ‘북촌의 길’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포럼 실무를 맡은 ‘공간’지 이주연 주간은 “길은 집과 집을 잇는 연결고리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라면서 “북촌을 단순히 관광자원으로 보지 말고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길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북촌 주민들이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98년 개장한 남산골 한옥마을과 2000년 역사문화탐방로로 단장한 인사동이다. 김홍남 교수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대해 “생명이 없는, 박제화된, 인공적인 마을”이라고 못박았다. 전통한옥 다섯 채만 덜렁 옮겨놓았을 뿐 그곳에서 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인사동은 이미 주거공간의 기능을 상실해 외국인들에게 전통 생활양식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곳으로 전락했다.
서울시정개발원 정석 연구위원(도시설계연구팀)은 “서울시의 북촌 가꾸기 기본방향은 ‘살고 싶은 북촌’(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주거지)을 최우선으로 삼고, 다음에 ‘찾고 싶은 북촌(전통 주거형태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명소)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서울시와 주민들은 주차장 부지 확보와 공동 정화조 설치, 전신주 매설 등 가장 현실적인 생활상의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댄 상태.
다행히 재산권 침해라며 지지부진하던 한옥 등록(등록하면 한옥 신·개축시 일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이 지난해 말 12%를 넘어섰다(북촌의 924채 가운데 109채가 등록). 또 2000년 서울시정개발원이 북촌 한옥거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매각 의사를 물은 결과 집주인 151명 가운데 58%가 ‘팔지 않겠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한옥이 좋아서’ ‘마을이 좋아서’가 각각 46.9%, 38.3%를 차지해 북촌에 대한 자부심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이곳에 살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오는 유입 인구가 늘고 있어 자연스럽게 한옥의 가치도 상승하고 있다. 시정개발원 정석 연구위원은 “서울시 도심정책이 재개발 중심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을 보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북촌 가꾸기는 역사지역 보존의 모델사업”이라고 설명했다. 600년 도읍지 서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장소 북촌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북촌 땅 1평 팔면 강남에 3평 산다고 했어요. 그래도 팔고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죠. 특히 부근에 명문학교가 많아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일부러 이곳에 집을 마련했어요.”
그러나 70년대 말 강남 개발과 함께 콧대 높던 북촌 사람들의 자부심은 꺾이고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 갔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강 건너 이사를 했고, 미련이 남은 사람들은 불편한 한옥을 세놓고 좀더 편안한 주거지를 찾았다. 이처럼 조선시대 명문가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북촌이 사람 살기 어려운 곳으로 낙인찍힌 데는, 지난 20여년 동안 정부가 규제 일변도로 한옥 보존 정책을 강행한 데도 원인이 있다.
“보존도 좋지만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줘야죠. 집수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막상 손을 대자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가난한 세입자들은 그냥 눌러 살았어요. 어느 해인가 장마에 지붕이 내려앉아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니까 부랴부랴 규제를 풀었는데 그때부터 다세대주택이 대책 없이 들어서면서 이제 수십년간 어렵게 지켜온 한옥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거죠.”(정근희)
90년대는 10년 동안 북촌의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정부와 주민, 주민과 주민 사이에 갈등과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1977년 최고고도지구 지정을 시작으로 1983년 집단미관지구 지정 등 정부가 북촌의 한옥보존을 위해 모든 건축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자, 재산권을 침해당한 데 불만을 품은 주민들은 1988년 ‘한옥보존지구지정해제추진위’를 결성하는 등 집단적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주민들의 규제 반대운동이 격화되자 서울시는 한옥보존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지역환경 보호와 개선에 중점을 두고 몇 차례에 걸쳐 건축 기준을 완화하고, 92년과 95년 창덕궁에 인접한 두 개의 동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했다. 그러자 하루라도 빨리 누옥을 팔고 북촌을 떠나고 싶어하던 일부 주민들과, 값싼 한옥 여러 채를 매입해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만들어 이익을 남기려는 건설업자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북촌은 우후죽순으로 개발됐다. 게다가 종로구가 97년 이 지역을 고급빌라 단지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보존을 앞세운 서울시와 개발을 요구하는 종로구 사이의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다. 2000년 들어 서울시는 서둘러 ‘북촌가꾸기종합대책’을 마련하며 난개발 방지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옥보존 자체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보존과 개발을 오락가락하는 사이 북촌의 한옥 밀집지역 한 군데가 완전히 사라졌고(한옥 80여채가 한꺼번에 철거된 이 일을 두고 이화여대 김홍남 교수는 “북촌의 머리통이 날아간 사건”이라며 비통해한다), 원서동은 다가구주택의 숲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창경궁을 잇는 길은 식당가로 바뀌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제 모습을 잃어가는 북촌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심경은 착잡했다. 규제완화 이후 기대했던 재산권 행사나 건물의 경제적 가치 상승 등의 효과는 미비했고, 오히려 한옥촌에 갑자기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생활 침해 등 생활환경이 나빠지고 한옥마을의 전통이 사라지는 등 역효과가 나타났던 것.
주민들의 대응방식도 달라졌다. 원래 북촌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한옥보존지구 해제’를 요구하며 결성되었던 ‘종로북촌가꾸기회’는 서울시의 ‘북촌 가꾸기’에 참여했고, 2000년 한옥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한옥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도 만들어졌다. 올해 1월27일에는 북촌 일대에 거주하거나 직장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 60여명이 모여 ‘북촌문화포럼’(대표 김홍남 교수)을 발족했다.
김홍남 교수는 이 모임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예방 차원에서 일을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윤보선가(家) 담장과 잇대어 4층짜리 건물이 올라갈 때 발을 동동 굴렀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이 터지면 그제서야 민원 넣으러 뛰어다녀도 수확이 없었어요. 이제 전문가들이 모여 삶의 터전으로 북촌을 지키고 가꾸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정부에 제안하자는 겁니다.”
북촌문화포럼은 창립대회와 함께 ‘북촌의 길’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포럼 실무를 맡은 ‘공간’지 이주연 주간은 “길은 집과 집을 잇는 연결고리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라면서 “북촌을 단순히 관광자원으로 보지 말고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길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북촌 주민들이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98년 개장한 남산골 한옥마을과 2000년 역사문화탐방로로 단장한 인사동이다. 김홍남 교수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대해 “생명이 없는, 박제화된, 인공적인 마을”이라고 못박았다. 전통한옥 다섯 채만 덜렁 옮겨놓았을 뿐 그곳에서 사람의 체취를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인사동은 이미 주거공간의 기능을 상실해 외국인들에게 전통 생활양식을 보여주기에는 미흡한 곳으로 전락했다.
서울시정개발원 정석 연구위원(도시설계연구팀)은 “서울시의 북촌 가꾸기 기본방향은 ‘살고 싶은 북촌’(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주거지)을 최우선으로 삼고, 다음에 ‘찾고 싶은 북촌(전통 주거형태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명소)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서울시와 주민들은 주차장 부지 확보와 공동 정화조 설치, 전신주 매설 등 가장 현실적인 생활상의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댄 상태.
다행히 재산권 침해라며 지지부진하던 한옥 등록(등록하면 한옥 신·개축시 일부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이 지난해 말 12%를 넘어섰다(북촌의 924채 가운데 109채가 등록). 또 2000년 서울시정개발원이 북촌 한옥거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매각 의사를 물은 결과 집주인 151명 가운데 58%가 ‘팔지 않겠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한옥이 좋아서’ ‘마을이 좋아서’가 각각 46.9%, 38.3%를 차지해 북촌에 대한 자부심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이곳에 살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오는 유입 인구가 늘고 있어 자연스럽게 한옥의 가치도 상승하고 있다. 시정개발원 정석 연구위원은 “서울시 도심정책이 재개발 중심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을 보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북촌 가꾸기는 역사지역 보존의 모델사업”이라고 설명했다. 600년 도읍지 서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장소 북촌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