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문화정책을 설계하는 리마 압둘 말락 장관. 뉴시스
문화의 사회적 기능 이해하는 정책 전문가
유럽의 소위 문화 선진국 사례를 보면 문화부 장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리마 압둘 말락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보자. 그는 레바논 출신 이민자로 비정부기구(NGO)와 문화재단 등에서 활동하다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문화보좌관으로도 일한 정책 전문가다. 공연예술, 박물관, 미디어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프랑스 문화산업 회복과 예술인 사회안전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문화부 장관이 예술계 대표가 아니라 국가 문화정책의 설계자이자 집행자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기억·정체성·다문화’ 등 정책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클라우디아 로트 독일 장관. 뉴시스

법률 전문가인 루시 프레이저 영국 장관. 뉴시스
서로 달라 보이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문화를 예술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고 사회·경제·외교정책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 예술 장르 전문가가 아니라, 문화의 사회적 기능을 이해하는 정책 전문가다.
문화부, 사회경제 부처로 거듭나야
한국도 이제 달라질 때가 됐다. 우리가 K-콘텐츠 성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 정체성과 소프트 파워(문화 같은 매력적 요소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문화가 계속 ‘지원 대상’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이제 문화부는 예술을 넘어 교육, 복지, 지역 균형, 디지털산업, 외교정책까지 다루는 거대 융합 사회경제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이에 발맞춰 장관 인선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예술과 경제를 다 아는 ‘슈퍼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다. K-드라마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악하고, 지역 전통문화의 가치를 이해하면서 이를 관광산업과 연결해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문화부 장관이 돼야 한다. 문화부 장관은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기획자’로서 문화를 통해 산업을 혁신하고, 사회를 통합하며,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총체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할 것이 있다. 현재 한국은 중앙 집중적 문화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거버넌스 강화가 시급하다. 각 지역이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문화강국 토대가 마련된다. 지역문화 CCO(Chief Culture Officer·최고문화경영자)를 제도화하고, 기초자치단체의 문화 기획 자율권을 강화해야 할 때다.
문화는 국가 정책의 장식품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뼈대다. 이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즉 스타가 아닌 전략가가 문화부에 필요한 시점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