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확 바뀌었다.”
요즘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관련 공기업 사이에선 한국농어촌공사(농어촌공사)의 거침없는 변화가 화제다. 2013년 9월 이상무(66·사진) 사장이 부임한 이후 생긴 일이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벗고 모든 부분에 ‘스마트워크’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며 사업 영역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 40여 년간 정부와 학계, 국제기관에서 쌓은 이 사장의 노하우가 녹아 있다.
1971년 농림부(현 농식품부) 사무관으로 정부 부처에 발을 들인 이 사장은 98년 기획관리실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27년간 농수산 분야에서 관료생활을 했다. 그 후 한국과 중국에서 대학 강단에 섰고,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동북아농업개발원장,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주재대표를 역임했다. 농어촌공사 제7대 사장으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FAO 한국협회장을 비롯해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아시아·태평양농업정책포럼 의장, 아프리카·아시아농촌개발기구(AARDO) 극동지역사무소 대표를 맡았다.
스마트워크 최우수 기관
2008~2009년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농특위) 위원장을 지냈고, 2010년 12월 새누리당 국가미래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분과 간사를 맡아 박근혜표 농정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다. 서울대 농대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에서 농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관료시절 이미 농업경영학과 관련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쓰는 한편, 일본 교토대 농경제학과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지금도 농식품부 전·현직 관료를 통틀어 ‘3대 천재’로 회자되며 ‘한국의 주요 농업정책은 다 그의 손을 거쳤다’는 말이 나올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퇴임 후 10여 년간 세계 농촌을 기행하고 쓴 ‘파워 농촌으로 디자인하라’와 우리 농어업, 농산어촌의 역사를 만든 32인의 인생을 엮은 ‘내 일생 조국의 산 들 바다를 위하여’는 농어업 관련 종사자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그를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에서 만나 변화해가는 농어촌공사의 실체에 대해 들었다.
▼ 농어촌공사에 변화의 태풍이 불어온다는 말을 들었다.
“농어촌공사가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체질부터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동안 쌓여온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관습과 비리, 적폐를 청산해 투명하고 청렴한, 그러면서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공사를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농어촌공사의 미래 성장동력을 세계무대에서 찾고 있다는데.
“농어촌공사 비전 콘셉트를 ‘행복한 농어촌을 만드는 글로벌 공기업’으로 잡았다. 그만큼 세계화와 해외사업 확대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해외사업 규모가 10개 사업 273억 원으로, 이전 5개년 연평균(76억 원)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관개농업 개선은 물론 캄보디아 메콩 강 재해관리 등 물 관리 시스템과 재해예방, 환경 개선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수주가 활발하다. 현재 14개 국가에서 농업용 댐, 관개시설 등 농업 인프라 구축과 수자원개발, 새마을운동을 접목한 농촌개발 등 24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RC(한국농어촌공사)가 WRC(세계농어촌공사)로 도약하는 날이 꼭 올 거다.”
▼ 나주로 이전한 후 스마트워크 시스템이 도입됐다고 한다. 무엇인가.
“본사 이전을 기점으로 신사옥에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불필요한 일과 비합리적인 과정 및 절차를 버리고 필요한 일,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거다. 불필요한 회의, 결재, 문서 등을 줄이고 화상회의, 변동좌석제, 클라우드 시스템 등 효율과 소통 중심의 근무 환경을 도입했다. 집중근무시간제, 유연근무제, 스마트워크센터 등을 활용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근무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자부한다. 직원들의 의지와 열정이 넘친다. 공기업 최초로 스마트워크 성공모델을 만들고, 조직문화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
농어촌공사의 스마트워크 시스템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2014 스마트워크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공공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4대강 사업으로 많은 용수를 확보했다는데 농어촌지역은 가뭄으로 고생과 피해가 여전하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각 보에서 확보한 용수를 각 지역으로 옮길 관개수로만 제대로 만들어놓았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조 원 공사를 하면서 수백억 원이면 되는 공사를 하지 않아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유관기관과 협력해 댐, 저수지, 관로, 농업용수로 등 수자원시설을 적극 연계하고 4대강 사업을 통해 확보한 용수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 공사 차원의 가뭄 해결책은.
“스마트 물 관리 체계를 통해 가뭄 등 재해대응 능력을 향상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용수 공급 기반을 확충하는 중이다. 당장은 농업용수 저수량 확대를 위한 저수지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 강원, 충북, 경북지역 등 28개 지구에서 준설 작업을 실시해 52만t 용수량을 추가 확보했고, 추경예산을 편성해 다른 60개 지구에서도 준설 작업에 착수했다.”
▼ 관사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라는 논란이 있다.
“국가가 정한 농촌주택표준 설계를 그대로 적용한 일반 사택이다. 농어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 누구나 활용하라고 국가가 만든 설계도다. 농어촌공사 최고경영자(CEO)로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차원에서 표준주택에 들어왔고, 실제 농민들에게 홍보도 됐다. 공사 이전 시기에 맞춰 화순군 능주면으로 아내와 함께 이사했는데 1년 가까이 지내보니 지역사회와 농촌 실정을 알고, 지역민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좋다. 혁신도시가 발전하려면 임직원이 이주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출퇴근길은 물론, 집에서도 농촌현장을 직접 느끼고 볼 수 있어 좋다.”
▼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선거(대선) 캠프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 정치에 뜻이 있나.
“2006년 FAO 한국협회장을 할 때 박 대통령이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대담하는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2시간가량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항상 메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과 농정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한다는 점이었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고 농정 핵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정치적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농정 전문가로서 자문역을 했다. 이후 2012년 대선 때 박 후보 측 요청으로 자문역을 하게 됐고 대선 캠프에서 농업공약을 총괄하는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았다. 그뿐이다.”
요즘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관련 공기업 사이에선 한국농어촌공사(농어촌공사)의 거침없는 변화가 화제다. 2013년 9월 이상무(66·사진) 사장이 부임한 이후 생긴 일이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벗고 모든 부분에 ‘스마트워크’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며 사업 영역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 40여 년간 정부와 학계, 국제기관에서 쌓은 이 사장의 노하우가 녹아 있다.
1971년 농림부(현 농식품부) 사무관으로 정부 부처에 발을 들인 이 사장은 98년 기획관리실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27년간 농수산 분야에서 관료생활을 했다. 그 후 한국과 중국에서 대학 강단에 섰고,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동북아농업개발원장,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주재대표를 역임했다. 농어촌공사 제7대 사장으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FAO 한국협회장을 비롯해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아시아·태평양농업정책포럼 의장, 아프리카·아시아농촌개발기구(AARDO) 극동지역사무소 대표를 맡았다.
스마트워크 최우수 기관
2008~2009년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농특위) 위원장을 지냈고, 2010년 12월 새누리당 국가미래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분과 간사를 맡아 박근혜표 농정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다. 서울대 농대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에서 농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관료시절 이미 농업경영학과 관련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쓰는 한편, 일본 교토대 농경제학과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지금도 농식품부 전·현직 관료를 통틀어 ‘3대 천재’로 회자되며 ‘한국의 주요 농업정책은 다 그의 손을 거쳤다’는 말이 나올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퇴임 후 10여 년간 세계 농촌을 기행하고 쓴 ‘파워 농촌으로 디자인하라’와 우리 농어업, 농산어촌의 역사를 만든 32인의 인생을 엮은 ‘내 일생 조국의 산 들 바다를 위하여’는 농어업 관련 종사자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그를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에서 만나 변화해가는 농어촌공사의 실체에 대해 들었다.
▼ 농어촌공사에 변화의 태풍이 불어온다는 말을 들었다.
“농어촌공사가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체질부터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동안 쌓여온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관습과 비리, 적폐를 청산해 투명하고 청렴한, 그러면서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공사를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농어촌공사의 미래 성장동력을 세계무대에서 찾고 있다는데.
“농어촌공사 비전 콘셉트를 ‘행복한 농어촌을 만드는 글로벌 공기업’으로 잡았다. 그만큼 세계화와 해외사업 확대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해외사업 규모가 10개 사업 273억 원으로, 이전 5개년 연평균(76억 원)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관개농업 개선은 물론 캄보디아 메콩 강 재해관리 등 물 관리 시스템과 재해예방, 환경 개선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수주가 활발하다. 현재 14개 국가에서 농업용 댐, 관개시설 등 농업 인프라 구축과 수자원개발, 새마을운동을 접목한 농촌개발 등 24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RC(한국농어촌공사)가 WRC(세계농어촌공사)로 도약하는 날이 꼭 올 거다.”
▼ 나주로 이전한 후 스마트워크 시스템이 도입됐다고 한다. 무엇인가.
“본사 이전을 기점으로 신사옥에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불필요한 일과 비합리적인 과정 및 절차를 버리고 필요한 일,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거다. 불필요한 회의, 결재, 문서 등을 줄이고 화상회의, 변동좌석제, 클라우드 시스템 등 효율과 소통 중심의 근무 환경을 도입했다. 집중근무시간제, 유연근무제, 스마트워크센터 등을 활용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근무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자부한다. 직원들의 의지와 열정이 넘친다. 공기업 최초로 스마트워크 성공모델을 만들고, 조직문화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
농어촌공사의 스마트워크 시스템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2014 스마트워크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공공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4대강 사업으로 많은 용수를 확보했다는데 농어촌지역은 가뭄으로 고생과 피해가 여전하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각 보에서 확보한 용수를 각 지역으로 옮길 관개수로만 제대로 만들어놓았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조 원 공사를 하면서 수백억 원이면 되는 공사를 하지 않아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유관기관과 협력해 댐, 저수지, 관로, 농업용수로 등 수자원시설을 적극 연계하고 4대강 사업을 통해 확보한 용수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 공사 차원의 가뭄 해결책은.
“스마트 물 관리 체계를 통해 가뭄 등 재해대응 능력을 향상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용수 공급 기반을 확충하는 중이다. 당장은 농업용수 저수량 확대를 위한 저수지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 강원, 충북, 경북지역 등 28개 지구에서 준설 작업을 실시해 52만t 용수량을 추가 확보했고, 추경예산을 편성해 다른 60개 지구에서도 준설 작업에 착수했다.”
▼ 관사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라는 논란이 있다.
“국가가 정한 농촌주택표준 설계를 그대로 적용한 일반 사택이다. 농어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 누구나 활용하라고 국가가 만든 설계도다. 농어촌공사 최고경영자(CEO)로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차원에서 표준주택에 들어왔고, 실제 농민들에게 홍보도 됐다. 공사 이전 시기에 맞춰 화순군 능주면으로 아내와 함께 이사했는데 1년 가까이 지내보니 지역사회와 농촌 실정을 알고, 지역민과도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좋다. 혁신도시가 발전하려면 임직원이 이주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출퇴근길은 물론, 집에서도 농촌현장을 직접 느끼고 볼 수 있어 좋다.”
▼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선거(대선) 캠프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 정치에 뜻이 있나.
“2006년 FAO 한국협회장을 할 때 박 대통령이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대담하는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2시간가량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항상 메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과 농정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한다는 점이었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고 농정 핵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정치적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농정 전문가로서 자문역을 했다. 이후 2012년 대선 때 박 후보 측 요청으로 자문역을 하게 됐고 대선 캠프에서 농업공약을 총괄하는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았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