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조대원의 수학여행 동행 프로그램이 확산되려면 인력 확층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해 충북 제천 119구조대원이 등산객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
이는 2014년 8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특수학교 등 안전 취약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갈 때 우선적으로 119구조·구급대원의 동행을 지원하는 등 ‘안전한 수학여행 지원 및 학생안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초중고 학교안전사고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는 3년간(2011~2013) 총 576건으로 2011년 129건, 2012년 231건, 2013년 216건이었다. 접수되지 않은 사고를 포함하면 건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19구조대원이 수학여행에 동행한다면 부모들은 든든할 수밖에 없다. 해당 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모 1696명에게 설문한 결과 92.5%가 프로그램이 안전관리에 효과가 있다고 응답했고, 90.6%는 프로그램을 유지해달라고 답했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도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로 했다. 권순경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은 “지난해 수학여행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분석해 반영하는 등 올해는 더욱 안전한 수학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상반기에는 서울 시내 29개교 35회의 수학여행에 119구조대원이 동행한다.
119 동행, 취지는 좋지만…
그러나 여기에 국민안전처가 서울시의 119구조대원 동행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전파하겠다고 나서자 소방당국은 고민에 빠졌다. 취지도 좋고 서비스 당사자의 만족도도 높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 가장 큰 문제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이다.
서울 시내 소방서 소속 한 119구조대원은 “지금도 구조대가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는데,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학여행에까지 차출되면 긴급 출동 시 다른 동료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수학여행에서 이뤄지는 안전조치는 소방공무원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도 많다”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 문제도 있어 대부분 차출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교사 최모(39) 씨도 “전문 인력이 여행에 동행하는 건 굉장히 든든하지만 부가적인 업무를 주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중고교 대다수에 경찰이 상주하면서 학급의 문제 학생을 디텐션룸(detention room) 등으로 호송하는 구실을 하는 것처럼 국내에도 소방관 같은 전문 인력이 학교 행사에 배치된다면 교육 차원에서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확대가 아닌 전파”라며 “서울시에서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기에 이 같은 사례가 있으니 참고해서 교육하고 활용하라는 목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수학여행에 119구조대원 모두가 가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도 사전에 교육받고 동행이 가능한 대원이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직 소방관을 학교 행사에 투입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지난해 8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119대원의 인력과 운영에 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수학여행을 위한 별도의 인력이 충원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퇴직 소방공무원을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퇴직 소방공무원 261명을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설문에 응한 46명은 시정운영의 취지에 공감(76.1%)하는 한편, 119구조대원을 대신해 수학여행에 동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73.9%가 참여 의사를 보였다. 반대로 불참 의사를 밝힌 이유로는 △직장생활 문제(41.5%) △사고책임 문제(23.5%) △현직 119구조대원이 적합(23.5%) 등이 꼽혔다.
퇴직 소방공무원들이 지적한 부분도 인력 부족과 책임 소재다. 퇴직 소방공무원들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수송, 이동, 숙소 등 안전 문제가 광범위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책임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 ‘예산이 수반되지 않은 프로그램은 반대’ ‘수학여행 시즌에 부족한 인원으로 동행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119구조대원의 수학여행 동행은 소방력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재고돼야 한다’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만 져야 된다면 심적 부담이 크다. 선생들의 통제에도 잘 안 따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안전 통제자의 말에 따를지 의문’이라고 답변했다.
3월 16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119구조대원들이 환자 이송 훈련을 하고 있다.
현직 소방관인 고진영(소방장)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지금도 인력이 부족한데 수학여행 시기에 인력이 빠져나가면 근무할 때 소방관들이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현장에서 위급상황 대응과 안전은 별개의 문제이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시 책임 문제, 그리고 학생 통솔력에 차이가 있다. ‘119구조대원이 같이 가면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과 소방관의 특화된 업무(화재진압, 구조 등)는 거리가 있다. 현장에서 학생을 통솔하는 건 안전 지식을 가진 전문 인력이 맡아야 한다. 소방관들이 현지 숙소에 가서 문제를 발견해도 확인만 할 뿐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데, 권한은 없고 의무만 있으면 부담은 더하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수학여행 119구조대원 동행 프로그램’을 진행한 3개월(9~11월)간 287건의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응급처치가 123건으로 가장 많았고 환자 이송 및 병원진료도 20건이었지만 약품 제공 81건, 약국 처방 5건, 기타 단순 안전조치 58건 등 소방관의 주업무가 아닌 영역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정책·안전기획관 관계자는 “119구조대원들이 현장 출동도 해야 하기에 인원이 충족되지 않으면 억지로 끌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행 일정 내내 동행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학교 측에서 수련활동 전 최소한의 안전점검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소방재난본부 측에서 각 소방서에 전달하는 형태로 4월 20일부터 사전 안전점검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일부 지역 소방본부에서는 119구조대원 동행이 아닌, 소방관이 학교보안관을 맡는 식으로 협약을 맺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학여행지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은 원칙적으로 인솔교사에게 있다”며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닌, 추가적인 안전요원으로서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 덕에 안전사고를 예방한 경우도 있다. 4월 20일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학교에서 학생들이 묵을 숙소의 안전점검을 요청했는데, 서류상으로는 이상이 없었지만 해당 지역 소방관이 사전 점검한 결과 소방시설이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서에서는 학교 측에 이를 알렸고, 예전 같으면 그냥 일정을 강행할 수도 있었겠으나 해당 학교는 숙고 끝에 수학여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