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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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질서 부활 선포하는 中華의 세리머니

9·3 전승절 열병식에서 읽는 아시아의 미래, 한국의 미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09-07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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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먼 얘기부터 해보자. 서구학계에서 동아시아의 조공체제(Tribute System) 역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이다. 중국이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권력의 정통성을 보장해주는 전통적인 국제질서. 주(周)부터 청(淸)까지 2000년 가까운 세월, 왕조와 왕조를 거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던 이 위계질서는 ‘모든 권력은 중국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징이자 율법이었다. 세상의 중심에 중국을 놓고, 다른 모든 주변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서열이 매겨지는 유교식 국제정치였다.

    제도적 틀은 이미 완성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국제정치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에 게재되는 등 상당한 주목을 받은 서구학계의 관련 연구 상당수가 “조공질서는 주변국에 그리 가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국에서 천자(天子)에게 바친 공물보다 천자가 주변국에 내준 하사품이 금액으로나 규모로나 훨씬 더 컸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조공질서를 통해 주변국을 착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주변국을 ‘관리’하느라 경제적 출혈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뜻. 실제로 그랬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최소한 이러한 주장이 서구학계에서조차 상당한 힘을 얻고 있음은 사실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특히 조공질서에 관한 서구의 연구 상당수가 중국 정부나 대학의 자금지원을 받아 진행된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옹호하기 위한 이념적 정지작업에 가까웠다는 것. 이렇게 시작된 흐름은 이후 1980년대 학번의 젊은 중국 학자들이 내놓은 도발적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름하여 ‘천하세계론’, 옛 중국의 ‘천하’ 관념을 오늘에 접목해 자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나갈 것이라는 팽팽한 야심.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 세상은 당신들에게도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 작업을 거쳐 중국의 지식 엘리트들이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대국굴기’의 이념적 근거다.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 각국 정상이 모여 촬영한 한 장의 기념사진(12쪽)은 어쩌면 다음 세기 역사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를 만한 함의를 담고 있다. 가운데 선 중국과 파트너인 러시아, 주변국인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자리배치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동심원 구조는 고스란히 이전 시기 중국 황제들이 구가했던 ‘중화(中華)-소중화(小中華)-주변국’ 조공체계의 변용으로 읽을 만하다. 동아시아에서 앞으로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지에 대한 노골적인 예언이다. 사진 한 장이 무수한 해석과 갑론을박을 낳으며 국내외 주요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만방래조’(萬邦來朝·온 주변국가가 조공을 바치러 왔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가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최한 환영연회를 설명하며 사용했던 표현이다. 수년 전만 해도 중국 정부는 자국의 외교 행태가 주변국에 군림하는 것처럼 비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사진 한 장까지 꼼꼼히 모니터링하며 내보내는 공산당 특유의 통제 메커니즘이 어김없이 브레이크를 걸곤 했다.

    이제는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것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첨단 무기체계가 1시간 30분 동안 행진하는 열병식에서 그와 같은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망루에 오른 주변국 지도자들을 서열화하고 자신들이 판단하는 중요도에 따라 자리를 배치한 방식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 더없이 명확해진 ‘대국’으로서의 위압감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저명한 중국 정치 전문가의 말이다.

    “(이번 열병식에서) 중국 정부가 ‘조공질서 부활’을 의도적으로 과시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책결정자들의 잠재된 무의식이 드러난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역사적으로 중국의 정치문화에 그러한 인식틀이 내재해 있는 건 사실이고, 국력이 강해질수록 이런 태도는 한층 직접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현대 중국이 옛 중국과 다르다 해도, 무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수년 사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결정적 계기는 제도의 완성, 바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 2014년 10월 창설된 이 국제금융기구가 아시아 전역에 대한 중국의 경제 지배를 확고히 하는 도구가 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열병식 기념사진의 첫 번째 줄 못지않게 두 번째, 세 번째 줄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예외 없이 참석한 것은 AIIB가 중국의 서부대개발 계획과 연계해 이 지역에 쏟아부을 대규모 인프라 건설자금 때문. 그 과정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 자국 경제발전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다.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속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말한 조공시대 관련 연구는 대부분 그 경제적 특성에 주목한다. 21세기 중국에게 AIIB는 새로운 조공질서를 만들어낼 제도적 장치다. 조공을 받되 더 많은 하사품을 내주며 ‘오랑캐’를 관리했듯, AIIB에 막대한 자금을 출자해 주변국의 경제부흥을 돕겠다는 취지다. 그렇게 맺어진 ‘먹고사니즘’의 그물은 웬만한 정치적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2014년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1453억 달러(약 172조6000억 원). 수교 이후 22년간 연평균 20%씩 성장했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중국의 비중은 25% 내외. 이 기간 중국은 한국과 교역에서 한 차례도 흑자를 낸 적이 없고, 2010년 이후 한국의 대중 흑자 규모는 매년 400억~5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적 성장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뜻이다. 이른바 ‘수입 공세(Import Offensive)’, 주변국으로부터 엄청난 물량을 수입해 경제적 의존을 심화시킴으로써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발을 뺄 수 없게 만드는 중국 특유의 전략이다. 고스란히 옛 조공무역의 정치적 쓰임새와 겹친다.

    호주는 실속, 한국은 과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좋은 관계는 해당 국가들과 미국의 이익에 모두 부합하며, 평화와 안정을 촉진한다고 믿는다.”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 직후 캐티나 애덤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남긴 이 말은 말 그대로 ‘외교적 수사’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의 반응은 한층 노골적이다. “한국은 종전부터 중국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제3국 일에 대해서는 발언을 삼가고 싶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합의한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는 미국과 일본의 심기를 달래기 위한 카드였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에 가깝다. 반면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떠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시 주석 부부의 양옆에 선 사진이 당장 서구 국가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청와대와 외교부가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연계성을 장황히 강조한 것 또한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질시를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털어놓는다.

    그러나 시 주석과 회담에 이은 단독오찬, 권력서열 1, 2위와 연쇄회동 등 전승절 기간 중국 정부가 보여준 엄청난 환대와 파격에 가까운 의전 세례야말로 오히려 관찰자들을 자극할 공산이 더 커 보인다. 중국 측의 융숭한 대접을 고스란히 중계하며 외교 성과로 강조한 청와대와 외교부의 홍보 방식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이러한 과시가 국민에게 대통령의 치적을 자랑하려는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면 더욱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 학계 전문가의 말이다.

    “우리와 가장 비슷한 처지로 호주가 있다. 구조적으로는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량이 압도적 1위다. 호주 정부 역시 호주국립대(ANU)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전문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중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돈독한 관계를 애써 과시하지는 않는다. 그런 ‘스킨십 외교’가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유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간 긴밀한 접근이 혹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선호 때문은 아닌지 염려되는 이유다. 의전이 곧 국격을 뜻한다고 믿는 국민도 더는 없지 않은가.”

    한 안보당국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박근혜 정부의 기본적인 전략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중국과의 마찰음은 대통령의 ‘개인기’로 돌파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 등 그간 불거진 전략적 이슈에서 중국의 몽니가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된 것 역시 한중 정상 간 긴밀한 관계가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 이후, 개인기와 스킨십이 없는 사람이 한국의 지도자가 된다면? 먼 미래 대신 눈앞의 성과만을 주목하는 외교가 품고 있는 함정이다.

    다시 열병식으로 돌아가보자. 공교롭게도 참석한 인접국 정상 가운데 동쪽에서 온 사람은 박 대통령뿐, 모두 남쪽과 서쪽에서 날아온 이들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보면 이 원은 아직 찌그러진 형태라는 뜻이다. 시진핑 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동쪽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육상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해상은 서남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로, 모두 서쪽을 향해 내달릴 뿐이다.

    베이징이 동쪽에 관심이 없는 탓일까, 혹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중국 정부가 ‘손자병법’의 ‘적이 들어오면 내가 물러나고, 적이 물러난 곳에 내가 들어가는(敵進我退 敵退我追)’ 전략을 택했다고 해석한다. 미국이 압도적 영향력을 투사하며 ‘귀환’을 선언한 태평양을 피해 서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성장 유지와 국내 문제 해결 등 산적한 현안에 바쁜 시진핑 정부로서는 당장 미국과 ‘맞짱’을 뜰 여력이 없다는 취지다.

    찌그러진 동심원이 펴지는 순간

    이 찌그러진 동심원에서, 한국은 중국이 가진 유일한 교두보다. 동심원이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닌 덕분에 우리에게 ‘숨 쉴 구멍’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전승절 행사 기간 박 대통령이 받은 전례 없는 환대의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언젠가 중국이 새로운 아시아 질서의 동심원을 완전한 형태로 만들기로 마음먹는다면, 이후 한국이 감당해야 할 압력과 고뇌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풀어 오르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언제까지 양쪽 모두의 구애와 환대만을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중국이 동쪽을 피하게 된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 불량배로 남아 있는 북한의 좌충우돌 행보야말로 태평양 서쪽에서 미국의 군사적·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주일미군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군사동맹, 사드와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전단으로 구성된 압도적 전력 배치의 근거는 모두 북한의 위협이다. 워싱턴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선언한 이래 6자회담을 비롯한 북핵 문제 해결 노력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는 배경 중 하나다.

    거꾸로 말하면 이는 한국이 중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채근할 논리적 지렛대이기도 하다. 찌그러진 동심원을 펴자면 어떻게든 북한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미국의 절대적 존재감도 근거를 잃게 되리라는 점이다. 물론 이 경우 남북한 모두 중국이 구축하는 새로운 질서의 동심원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 역시 명확하다. 미·중 사이 노려보기가 계속되는 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다. 한국이 맞닥뜨린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다.

    “강대국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패배의식에 젖을 이유가 없다.” 사드 논쟁이 한창이던 3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남겼던 이 말은 한중 정상회담 직전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다시 한 번 반복됐다. 눈앞만 보면 사실일 수 있지만, 불과 수년 뒤만 생각해도 축복이 재앙으로 바뀔 개연성은 차고 넘친다. 한국은 과연 중국이 만들어내는 21세기 판 조공질서 속에서 ‘소중화’로서의 삶을 다시 감내해야 할까. 혹은 인접 강대국에 연연하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열병식에 모인 각국 정상의 사진은, 질문에 답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은유와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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