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만 몰랐던 건 아니다. 북한은 이를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자 최대한 노력했고, 이 때문에 미국 역시 감지하지 못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또한 핵실험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확신에 찬 발언. 1월 6일 밤 긴급히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당국자들의 설명은 그랬다. 그러나 유효기간은 몇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미국 NBC 방송이 미군 측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은 2주 전부터 북한의 핵실험 준비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한 것.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기준치가 될 공기시료 채취를 위해 무인기까지 띄웠다는 상세한 보도였다.
한국 국방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1월 8일 국방부 측은 “미군 무인기가 핵실험 관련 포집활동을 위해 북한 상공에 들어갔다는 보도는 추측성 보도일 뿐”이라며 “미군 무인기는 북한 영공에 들어갈 수 없고 포집활동을 하는 비행기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유사한 미국발(發) 보도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미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주간동아’는 미 국방부 대변인실 측에 미국 언론의 ‘사전인지’ 보도가 사실인지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1월 14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었다.
‘한 줄기 빛 샐 틈도 없다.’ 한미공조에 대해 그간 안보당국 관계자들이 반복해 사용해온 표현이다. 북한 핵실험은 상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특이동향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측이 그 징후를 포착해 밀착 감시에 들어간 후에도 한국 정부와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면 두 나라 사이에 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 측이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논란이 꼬리를 무는 이유다.
연이어 터진 ‘보안사고’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최근 수개월 사이 한미 군사정보 공유가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단서를 확인했다. 2015년 가을 불거진 ‘보안유출’ 사고와 관련해 미국 측이 반복적으로 항의해왔고, 이후 양국 군사당국이 정보 분석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를 비롯한 주요 안보당국이 이에 우려의 뜻을 전달했으며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강도 높은 보안강화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문제의 시발점은 지난해 8월 하순 나온 국내 언론의 ‘작전계획 5015’ 관련 보도. 한미군 당국이 같은 해 6월 한반도 유사시를 가정한 새로운 작전계획에 서명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새 작전계획에 유사시 북한 최고수뇌부를 직접 겨냥하는 ‘참수(Decapitation) 작전’ 개념이 포함됐다는 소식도 뒤를 이었다. 양측이 새 작전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지만, 그 정확한 서명 시점과 일부 내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보도 직후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유출 과정에 대한 한미 공동조사를 요구했다. 마침 진행 중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종합평가 자리에서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후 국군기무사령부는 수개월에 걸쳐 보도 경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국방부와 합참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조사 작업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름을 부은 것은 11월 28일 진행된 북한의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시험발사 뉴스. 이날 오후 함남 신포 인근 동해상에서 발사가 진행됐지만, 미사일 궤적은 식별되지 않고 보호막 덮개 파편만 포착된 것으로 미루어 불발로 보인다는 소식이었다. 역시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진 이 보도는 북한이 전혀 공개하지 않았던 사안으로, 영상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내용의 특성상 미국 측 정보자산을 통해 수집된 게 분명했다.
안보 당국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작전계획 유출 조사와 관련해 뚜렷한 진척이 없었던 상황에서 재차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 측의 불만은 비등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측은 남측 언론의 SLBM 발사 보도 이후 북한군 내부 통신 신호체계를 전면 개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정찰기 등을 통해 북한군의 교신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부와 합참을 비롯한 주요 부서에 대대적인 보안강화 지시를 내린 상태. 관련 근무자 전원으로부터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안 서약서를 제출받은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최고 수위의 보안강화에 해당하는 이 같은 조치 역시 미국 측 항의를 의식한 결과라는 게 안보당국 주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 무렵 한미 정보 공유 과정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한미 군당국 사이에 정보 분석 결과를 교환하는 한미연합정보관리체계(CENTRIX-K)와 미군 태평양사령부에서 운용하는 연합군사정보체계(PASS-K)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원래 이들 시스템에는 여러 출처에서 수집된 북한 관련 정보가 올라오지만, 근래 들어 상당수 항목에서 판단 부분이 빈칸으로 비워진 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주간동아가 접촉한 복수의 한미 양측 관계자를 통해서도 교차 확인되는 상황. 쉽게 말해 미국 측이 수집한 정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한국 측에서는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전환됐다는 뜻이다.
통로가 닫혔다?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 관련 특이동향을 확인하는 수단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미국 키홀(Keyhole) 군사위성 등이 촬영하는 영상정보와 정찰기를 통해 수집되는 통신감청 등 신호정보가 그것이다. 개마고원 자락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경우 한국 측 자산으로는 영상정보를 확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모든 사진은 미국 측 위성이나 정찰기에서 촬영한다. 이들 영상정보에 대한 미국 측의 보안강도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 이를 담당하는 한미 정보부서는 합동근무 형식으로 인접해 있지만, 한국 측이 미국 측 근무자로부터 위성사진 한 장을 받아보려면 수차례 협조공문을 보내야 가능한 수준이다.신호정보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국군 정찰자산은 주로 평양~원산선 이남만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같은 경우 미국 측 정찰기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수집한 신호정보 대부분의 분석작업을 주한미군이 아니라 미 본토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 공식적인 명분은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된 RC-7, RC-12 정찰기뿐 아니라 주일미군과 일본 측이 운용하는 RC-135, EP-3 정찰기로 수집한 정보를 통합해 분석하기 위해서지만, 한국 측의 반복된 보안사고도 고려사항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고 미국 측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설명이다. 주한미군 근무자들이 담당하는 분야는 전술적 차원의 현용 정보가 대부분이고, 핵과 미사일 같은 핵심 정보는 대부분 미 본토에서 취합, 분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등장한 CENTRIX-K와 PASS-K는 이렇게 미 본토에서 취합, 분석한 정보를 한국 측이 열어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경로다. CENTRIX-K의 경우 주한미군을 경유해 전 세계 미군의 주요 정보 분석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급된 아이디와 패스워드에 따라 들여다볼 수 있는 지리적 범주나 분야가 제한돼 있다. 그 하부 시스템 중 하나인 PASS-K는 같은 태평양사령부 소속인 주일미군에서 분석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통로다.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하는 한국군 근무자의 경우 원론적으로 이들 시스템에 올라오는 북한 관련 정보 분석 결과물에 접근할 수 있게 돼 있다. 앞서 전한 소식은 최근 들어 이곳에 올라오는 분석 결과 중 상당수 항목에서 한국군 관계자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해 지난해 11월 이후 최근까지 한국 측은 평양~원산선 이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방법이 부족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까. 최근 상황이 정보 유출에 ‘분노’한 미국 측의 대응조치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비정상 상태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국군 합참이 미국 측 반대에도 언론 브리핑을 강행했던 2007년 6월, 장거리 로켓 발사 징후가 한국 언론에 유출됐던 2009년 2월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 당시에도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국 측 고위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에 따라 한국 측의 보안조사가 진행됐으며, CENTRIX-K를 비롯한 정보 공유 채널에서 ‘한국군 접근 불가’ 항목이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미국 측 전문으로 확인된다. 정보 공유를 둘러싼 한미 군당국의 충돌은 알려진 것만 해도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공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나
미국 측 전·현직 당국자들은 정보 유출 문제를 강력하게 항의해온 이유를 둘로 나눠 설명한다. 먼저 자신들의 정보 수집 역량이 노출될 경우 상대가 이를 회피하거나 심지어 역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앞서 설명한 북한의 신호체계 변경은 그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특히 단순히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으로서는 한반도에서 노출된 정보 수집 역량을 참고해 다른 지역의 ‘적’들이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또 다른 부분은 이른바 ‘정보저작권’ 문제. 미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찰자산을 통해 수집한 정보는 미국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그 적절한 시점이 언제인지 역시 미국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철학적 기반’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정보는 미국의 정책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문제라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주한미국대사관 전문은 이러한 미국 측 태도를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여준다. 두 번째 충돌에 해당하는 2009년 2월 당시 월리엄 스탠튼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는 한국 정부에 “북한 미사일에 대한 위성사진 정보 유출과 관련해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한국이 미국의 기밀정보를 (외부에) 알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일갈한다. 같은 해 3월 초에는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청와대 참모진과 면담한 자리에서 “(이러한 정보 유출은) 정책적 선택지의 폭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경고하며 유출자 색출과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전문에는 당시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고위급 관계자들이 총출동해 미국 측을 달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 한미 안보당국 사이에서 벌어진 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돼왔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긴밀한 한미공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4차 핵실험 직후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가 내놓은 제일성이다.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응카드가 바로 동맹이었던 셈. 그러나 한미 두 나라의 이해관계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군사동맹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뇌관을 품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인 셈.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미공조’만을 되뇌는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해도 좋을지, 의구심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도마 오른 안보라인, 그래도 경질 없는 이유는▼
“장관이 누구든 결국 일은 본인이 한다는 게 대통령 생각”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1주일, 안보 분야 당국자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이야기 중 하나는 1월 9~10일 주말 박근혜 대통령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불러 크게 질책했다는 소식이었다.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화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간 “미·중 두 나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축복일 수 있다”고 강조해온 윤 장관이 가장 눈에 띄는 ‘타깃’이 된 셈이다.
청와대 당국자들이 전하는 ‘질책’의 또 다른 배경 역시 흥미롭다. 핵실험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먼저 통화했고,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은 시진핑 주석이 이튿날 오바마 대통령과는 비공개로 통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 골자. 핵실험 직후 주변국 정상 논의에서 한국만 소외된 셈이다. 백악관의 자체 의전서열에 따라 진행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를 자임해온 청와대로서는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러한 소식이 유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통화한 이틀 후에야 아베 총리와 통화한 바 있다.
요컨대 그간 박 대통령은 미국의 질시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 공을 들였으나, 결국은 양측 모두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했다는 것. 베이징은 ‘핵 문제는 미국과 논의할지언정 한국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셈이고, 청와대는 싸늘해진 미국 측 시선을 되돌리고자 국내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으나 워싱턴은 여전히 미·일 동맹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소식이 전해진 후 안보부처 안팎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논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윤병세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라인의 문책성 경질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한 당국자는 “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인사를 앞두고 스스로 사의를 밝힌 안보 분야 핵심 참모조차 유임케 한 바 있다”면서 “누구를 장관으로 기용하든 결국 일은 본인이 하는 것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게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