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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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대통령이 왕? 입법까지 대통령에게 청원

4개월 동안 7만 건 올라왔지만, 청원을 위한 청원 넘쳐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12-26 16: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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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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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올려봐.” 

    요즘 답답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우스갯소리로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 대통령에게 청원해보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9일, 청와대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청원 게시판)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데다 관심이 적어 참여도가 낮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청원 게시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8월에는 하루 평균 100건 미만의 글이 올라왔는데 최근에는 12월 17일 669건, 18일 705건, 19일 585건으로 매일 500~700건씩 청원 관련 글이 올라오고 있다. 4개월이 지난 12월 19일까지 총 6만9975건의 글이 게재됐다. 

    청와대가 청원 게시판을 만든 데는 ‘직접민주주의 강화’ 기조가 깔려 있다. 게시판 상단에는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겠습니다’라는 글이 명시돼 있다.

    20만 명 이상 동의한 4건에 청와대 답변

    처음 게시판을 만들 때는 ‘20만 명 추천’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미국 백악관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은 10만 명 이상 참여할 경우 두 달 안에 해당 정책 관련 전문가가 공식 답변을 하게 돼 있다. 9월 3일 ‘청소년 보호법 폐지’ 관련 게시물이 30일이 지나기도 전 20만 명으로부터 동의를 얻자 청와대는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 청원할 경우 답한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마련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12월까지 게시물 4건에 대해 청와대는 답변 3건을 내놓았다. 또 현재 답변 대기 중인 청원으로 1건이 있다. 정부가 처음 답변한 글은 9월 3일부터 두 달간 게시된 ‘청소년 보호법은 폐지해야 합니다’는 글로, 총 29만6330명이 동의했다. 9월 1일 부산 사하구 여중생 폭행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올라온 청원 글인데 ‘청소년 보호법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청소년들이 스스로 미성년자인 걸 악용해 성인보다 더 잔인무도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어리고 힘없는 피해자 청소년을 생각해 청소년 보호법 폐지를 공론화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12분 30초짜리 동영상을 올렸다. 대통령비서실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진행하고 조국 민정수석, 김수현 사회수석이 등장해 공식 답변을 내놓은 것. 조 민정수석은 “미성년자 기준을 단순히 조정하는 등의 법 개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좀 더 사안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하고 범죄 예방 측면에서 소년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전반적으로 청소년 보호법 유지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내용에 가까웠다. 

    청와대가 두 번째로 답변한 게시물은 9월 30일부터 한 달간 게시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낙태가 불법이라 여성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며 현재 119개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을 합법화해 계획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불상사를 막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글에는 23만5372명이 동의했다. 이에 대해 조 민정수석은 9분 52초짜리 동영상을 통해 “임신중절 시술로 태아의 생명권이 박탈되는 건 부인하기 힘들지만 여성의 생명권,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논의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가의 의무와 역할도 논의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청와대의 세 번째 답변은 글 2개에 대한 것이었다. 청원답변 3호는 11월 4일부터 한 달 동안 게시된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를 건의합니다’, 청원답변 4호는 9월 6일부터 석 달간 게시된 ‘조두순 출소 반대’ 글이다. 각각 21만6774명, 61만5354명이 동의했다. 이에 대해 조 민정수석은 12월 6일 ‘LIVE 11:50 청와대입니다’라는 라이브 방송에 등장해 답변했다. 조두순 출소 반대와 관련해서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참여자들의 분노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재심은 불가능하다. 전자발찌 착용, 특정 시간 외출 제한 등 보완장치가 있으며,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르면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해 형을 감경해주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원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로 감형규정을 적용해 음주를 이유로 형을 감경하지만,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한 규정이라 삭제는 신중해야 한다. 또 성범죄의 경우 주취감형이 이미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 답변 대기 중인 글은 11월 17일부터 한 달 동안 게시된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지원’ 관련 글인데 모두 28만1985명이 동의했다. 내용은 ‘중증외상 분야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 방안 마련과 현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앞으로 개선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해달라’는 것으로 정부는 이에 대해 2018년 1월 중으로 답변을 내놓을 계획이다.

    “자유롭게 청원할 창구 생겨 좋다”

    청와대는 2017년 8월 19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국민소통 광장’ 섹션에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개설했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글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다고 공지했고, 지금까지 답변 3건을 내놓았다.

    청와대는 2017년 8월 19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국민소통 광장’ 섹션에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을 개설했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글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다고 공지했고, 지금까지 답변 3건을 내놓았다.

    일반 시민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직장인 이재훈(37) 씨는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일이 발생했다든지, 누군가 크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든지, 답답한 상황에 처했을 때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되니까 좋은 것 같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말 한마디에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절실하다. 그럴 때 일을 해결해줄 만한 희망의 끈을 찾기 마련인데, 청원 게시판이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여러 사람의 동의를 구하고 의견을 모아 이슈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업주부인 김보라(32) 씨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바뀌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많은 사람이 변화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원 게시판은 그런 면에서 결이 같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국민 목소리를 낼 만한 창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어서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많이 접수됐다. 참여 인원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청원도 있고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어떤 의견이든 국민이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청원이라도 장기적으로 법제를 개선할 때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참여 인원이 기준보다 적더라도 관련 조치들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성실하게, 상세하게 알려드리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일부 전문가는 청원 게시판을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20만 명 이상이 추천할 경우 정부가 대답하도록 기준을 마련한 것도 논의를 활성화하는 요소가 된다. 사안에 따라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국민이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만으로도 좋은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대의를 생각한 청원 글보다 개인의 민원 창구처럼 변질돼가는 부분과 관련해 최 부소장은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관계 부서를 통해 민원 청탁이 들어가고 있을 테지만, 그보다 청원 게시판을 통해 공론화하는 게 낫다고 본다. 청원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생각하게끔 공개한다는 점에서 청원 게시판의 핵심은 투명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12월 12일 ‘초등교실을 활용한 공공보육시설 확충’에 관한 청원 글을 올리면서 ‘개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 정책의 아이디어를 청와대나 총리실에 건넬 수도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그 참모들도 안다. 그러나 여러 부처가 합의하고 협력해야 하는 일은 한 부처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진척이 더디기 마련이라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청원 게시판을 택했다’며 취지를 밝혔다. 

    문제는 게시물의 성격이다. 국민청원은 대의적으로 논의할 사안이어야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글이 상당수 눈에 띈다. ‘담뱃값 인하시켜주세요’ ‘MAMA(Mnet Asia Music Award) 폐지해주세요’ ‘스승의 날 폐지해주세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등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청원에서부터 ‘가상화폐로 대한민국을 말아먹을 거냐’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을 방법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한다’ ‘지진 좀 안 나게 해주세요’ 등 엉뚱한 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구청 민원도 청원 게시판에…

    청원답변 1호 ‘청소년 보호법 폐지’와 관련해 청와대가 올린 동영상에는 대통령비서실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조국 민정수석, 김수현 사회수석(왼쪽부터)이 등장해 우리 사회에 왜 청소년 보호법이 필요한지 국민을 설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청원답변 1호 ‘청소년 보호법 폐지’와 관련해 청와대가 올린 동영상에는 대통령비서실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조국 민정수석, 김수현 사회수석(왼쪽부터)이 등장해 우리 사회에 왜 청소년 보호법이 필요한지 국민을 설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청원 게시판이 아닌, 해당 구청이나 관계 부처의 민원 사이트로 가야 할 것 같은 게시물도 적잖다. 11월 27일에는 ‘커뮤니티 시설의 개방을 약속하고 특혜를 받는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의 약속 이행 및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촉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재건축 아파트에 적용되는 35층 제한을 완화해 38층까지 짓는 조건으로 공동 커뮤니티 시설을 개방한다는 약속을 했으나 아파트 입주민들이 대표회의를 열어 반대하고 있다는 것. 서울 서초구청도 제재를 가하고 있지 않아 인근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내용의 게시물이었다. 

    일견 일리 있는 청원이기는 하지만 과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릴 만한 안건인가 하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서초구청이 관할하는 사안인 데다 지키지 않을 경우 행정조치를 취하면 되기 때문. 이에 대해 한 아파트 주민은 “강제이행금 납부와 관련해 서초구청 측의 계속된 강제가 있었고, 이를 납부하지 않으려면 개방할 수밖에 없어 시기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누가 그런 글을 올렸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아파트 이름이 올라가 좋을 건 없지 않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대부분 ‘국민신문고’에 올리면 해결될 문제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미 365일 민원 신청이 가능하도록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운영 중으로, 해당 사이트를 통해 갑질 피해 민원을 넣을 수 있고 정책 제안 신청과 정책 참여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심지어 우수한 제안의 경우 어떻게 반영해 현실화했는지 피드백까지 주고 있다. 정부부처의 한 공무원은 “국민신문고로 민원 신청이 들어오면 관련 정부부처 담당자들이 답하게 돼 있다. 이미 국민 목소리에 즉각 대응하는 창구가 있는 만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제로 청원 게시판을 통해 해결된 문제도 없지 않나. 그냥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글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 청원 게시판은 원칙적으로 행정과 관련된 청원만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게시물은 법안을 폐지 혹은 변경해달라거나, 국회의원이나 판검사 등을 면책해달라는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입법은 국회, 사법은 법원에서 담당하는 만큼 이러한 내용까지 청원 게시판에서 논의되는 것은 문제인 셈이다. 심지어 낙태죄 폐지, 청소년 보호법 폐지 등 법 개정과 폐지에 권한이 없는 민정수석이 이에 대해 답변을 내놓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다. 

    전문가들도 이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고 통치자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청원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제왕적 군주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얘기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원망스러운 대상을 처벌해달라는 게시물이 많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청원 게시판은 ‘그런 건 귀찮으니 최고 통치자가 나서달라’는 심리가 내재돼 있는데, 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청원법에 따라 청원을 할 수 있게끔 청원 게시판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청원법에 따르면 청원 내용은 해당 국가기관의 권한에 한정돼야 한다. 국회가 입법 청원을, 국민권익위원회가 행정 청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청원 게시판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청원법에 맞지 않는 국민청원을 청와대가 나서서 답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책임질 수 없는 민정수석 등 참모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빌려 청원에 답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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