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로 이란 지원하며 트럼프 뒤통수 때린 푸틴

이란, 호르무즈 막히자 우회로 통해 러시아와 생필품 ‘유령 거래’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5-21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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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해군 구축함이 이란 북부 카스피해를 항해하고 있다. 카스피해는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새로운 물자 수송로가 되고 있다. 뉴시스

    이란 해군 구축함이 이란 북부 카스피해를 항해하고 있다. 카스피해는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새로운 물자 수송로가 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해상 봉쇄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자 카스피해가 이란의 새로운 물자 수송로가 되고 있다. 미국은 4월 13일(이하 현지 시간)부터 이란 해상 봉쇄에 들어갔다. 이란은 그동안 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각종 물자를 수입해왔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히자 이란은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러시아는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에 각종 물자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을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는 600마일(약 966㎞)로, 양국 화물선은 이곳을 오간다. 카스피해를 통한 양국의 무역 거래는 베일에 싸여 있다. 선박 대부분이 위성 추적 장치인 트랜스폰더를 끈 채 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의 러시아·중동 정책 전문가 애나 보르셰프스카야 연구원은 “러시아와 이란이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아냈다”면서 “카스피해가 양국의 대체 항로가 됐다”고 지적했다.

    5개국 접하는 ‘내륙의 바다’

    카스피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로, ‘내륙의 바다’로 불린다. 남북으로 1200㎞, 평균 폭은 320㎞, 해안선 길이는 7000㎞에 달한다. 총 면적은 37만1000㎢로 대한민국의 4배 정도다. 최대 수심 1025m, 평균 수심은 210m나 된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카스피해는 북동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북서쪽으로는 러시아, 남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이란, 남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하고 있다. 카스피해는 일종의 염호(소금 호수)다. 염도는 1.2%로 평균 해수 염도의 3분의 1 수준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볼가강이 카스피해 북쪽 끝에서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바닷물보다 염도가 낮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소련 붕괴 이후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지만 2018년 8월 카스피해를 특수한 지위의 ‘바다’로 규정하는 협정에 합의했다. 연안국들은 자국 연안에서 15해리(27.78㎞)까지를 ‘영해’로 삼고 다음 10해리(18.52㎞)까지는 배타적 조업수역으로 설정했다. 이들 5개국은 자신들 이외 군대가 카스피해로 진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곳에 접근이 불가능해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카스피해가 미국 등 서방의 제재 및 전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란과 러시아의 핵심 무역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카스피해는 북동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북서쪽으로는 러시아, 남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이란, 남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하고 있다. 구글 맵스

    카스피해는 북동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북서쪽으로는 러시아, 남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이란, 남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하고 있다. 구글 맵스

    러시아는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에 곡물 등 각종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 모하마드 레자 모르타자비 이란 식품산업협회 회장은 “카스피해 연안의 이란 항구 4곳이 밀, 옥수수, 사료, 해바라기유 등 필수 물자를 들여오기 위해 24시간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운업계 분석업체 포트뉴스 미디어그룹의 비탈리 체르노프 물류 분석가는 “매년 흑해를 통해 이란으로 향하던 러시아산 밀 200만t이 이제는 카스피해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매년 평균 1000만t의 밀을 생산하지만 가뭄 등으로 공급량이 상당히 부족해 750만t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해상 봉쇄로 밀을 수입할 수 없는 이란으로선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500만t을 들여올 계획이다. 

    이란 국민은 현재 식용유 부족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식물성 기름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375%로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이란의 서부 국경 지대인 튀르키예 카피코이 검문소의 경우 커다란 식용유 통을 든 이란 국민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러시아가 최근 들어 카스피해를 통해 해바라기유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어 어느 정도 값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세계 2위 해바라기유 생산국이다.



    드론 오가는 미군 감시 공백 지역

     특히 주목할 점은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에 드론 부품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5월 7일 단독 입수한 러시아 정보총국(GRU) 문건에 러시아가 이란에 5000대의 단거리 광섬유 드론, 다수의 위성 유도 장거리 드론, 전술 훈련 프로그램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의 비밀 제안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광섬유 드론은 광섬유 케이블로 드론과 조종자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주파수 방해로 무력화할 수 없다. 이 드론은 낚싯줄처럼 가는 광섬유 케이블을 달아 최대 10~15㎞를 비행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광섬유 드론으로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는 또 이란군이 미군 F-15 전투기를 격추시킨 견착식 휴대용 방공 시스템(MANPADS) 500발을 5억8900만 달러(약 8900억 원)에 공급할 계획이다. 러시아가 이런 무기들을 이란에 제공한다면 이란군 전력 증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 러시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이 잃은 60%의 드론 전력이 신속히 재건되도록 드론 부품들도 지원하고 있다.

    이란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드론과 미사일 부족으로 고전하자 러시아에 샤헤드-136 드론과 단거리 미사일, 포탄 등을 카스피해를 통해 지원한 바 있다. 이란은 또 2023년 러시아가 샤헤드-136 드론을 제조하는 공장을 타타르스탄 옐라부가에 건설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러시아는 이 공장에서 매달 샤헤드-136을 개조한 게란-2 드론 수천 대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이 공장에 노동자 1만2000명을 파견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처럼 도움을 받은 이란에 거꾸로 드론 부품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의 드론 공급이 현 속도로 진행된다면 이란이 손실된 드론 전력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니콜 그라예프스키 프랑스 파리정치대(시앙스포) 교수는 “제재 회피와 군수 물자 운송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를 생각한다면 바로 카스피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스피해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지정학적 블랙홀’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스피해가 미군의 감시 공백 지역이 된 또 다른 이유는 미군의 관할권 분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는 유럽사령부(EUCOM)가, 이란과 중앙아시아 3개국은 중부사령부(CENTCOM)가 각각 담당하고 있어 지정학적 통합 대응이 어렵다.

    푸틴 “농축우라늄 수용 가능”

    카스피해가 그동안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틈을 이용해 러시아와 이란은 제재 회피와 군수 협력, 우회 무역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전시 보급망을 강화하면 할수록 미국의 압박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앞으로 카스피해가 단순한 식량·생필품 수송로를 넘어 러시아와 이란의 상시 군수품 보급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이란의 뒷배 역할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7월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당시 이란 국가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만나 반미연대를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옛 소련 영토 바깥에 있는 나라를 처음 방문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은 2022년 7월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당시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최고지도자를 만났다.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은 2022년 7월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당시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최고지도자를 만났다. 뉴시스

    하메네이는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중에 미국과 서방이 크림반도를 구실 삼아 공격했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했다. 하메네이는 “양국은 장기간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은 이란의 가스·유전 개발을 위해 400억 달러(약 60조 원) 규모의 계약에 서명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과 미사일을 제공하는 등 양국은 그동안 밀월관계를 형성해왔다. 푸틴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025년 1월 20년간 유효한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해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4월 27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을 만나 “이란이 농축우라늄을 자국으로 이전할 경우 이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에 따라 이란이 반출한 농축우라늄 11t을 받아들인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아라그치 장관에게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친서를 받았다”면서 “이란 국민이 독립과 주권을 위해 얼마나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싸우는지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해 미국의 중동 패권을 저지하고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면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지만, 푸틴 대통령은 카스피해를 통해 이란을 지원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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