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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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한의 핵 공격에도 핵무기 반격 자제”

美 국방부-싱크탱크 동북아 전쟁 시나리오 보고서 공개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6-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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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국 B-2 폭격기. 미국 공군 제공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국 B-2 폭격기. 미국 공군 제공

    정치인과 관료의 말만 들으면 한미동맹은 대단히 공고하고 한국 안보 태세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일각에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엄존하는 만큼 유사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두 나라의 상호방위조약과 ‘동맹’의 정치학적 의의를 잘 모르는 나이브한 관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말 그대로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 조약의 효력이 한반도 방위에 한정된 것처럼 주장하지만, 조약 제3조에는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반도 또는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만이 ‘공동 행동’ 발동 조건이 아닌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 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의 압도적 국력 차이와 냉전이라는 특수 환경 때문에 오랫동안 ‘자치안보교환동맹’으로서 유지됐다. 약한 나라가 정치적 자율성을 일정 부분 양보하는 조건으로 강대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동맹이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국력도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옛 소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에 맞서 여러 나라와의 동맹을 ‘국력집합동맹’으로 재설정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 대통령들이 정치·경제적 이익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오바마 1·2기, 트럼프 1기, 바이든 행정부를 막론하고 유럽 동맹들에 중국·중동·러시아에 공동 대응하자며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6월 24일(이하 현지 시간)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유럽 동맹국들에 현재 1~2%인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2030년까지 5%로 올리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복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미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이 이에 동의했고, 나토 최전선에 있는 폴란드는 GDP 대비 6% 수준까지 국방비를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당수 나토 회원국은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을 통해 군사력을 일신하고 대미(對美) 의존을 크게 줄인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을 대폭 감축하는 대신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美, 주한미군 인건비로만 2조 원 이상 지출

    이처럼 미국이 세계 전략과 동맹 정책을 크게 바꾸면서 각국은 국방예산을 기존의 2배, 많게는 5배까지 늘리고 미국의 대중·대러 견제에 힘을 보태고 있다. 문제는 한국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상당수 한국인이 한미동맹은 오로지 북한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에서 주한미군은 한국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게다가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동맹 관계를 파탄 내는 처사라며 비난하는 이도 적잖다. 마치 미국에 한국 방위를 맡겨놓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재임 시절이던 2019년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6조8700억 원)를 요구했다. 국내 정치권과 언론은 말도 안 되는 폭거라며 비난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게 필자 견해다. 올해 방위비 분담금은 1조4028억 원이다. 한국이 지불하는 돈은 대부분 국내에서 물품 구입과 용역 용도로 지출될 뿐, 미국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2만8500명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데 한국이 내는 돈의 몇 배를 쓰고 있다. 수십만 달러를 받는 장교는 차치하더라도 병장(E-5) 연봉 5만6879달러(약 7820만 원)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미국은 매년 주한미군 직접 인건비로만 16억2000만 달러(약 2조2300억 원)를 쓴다. 이는 각종 수당 등 간접비용과 장비 배치·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제외한 것이다. 가령 주한미군 F-16 전투기 1대의 연간 유지비는 인건비·탄약 비용을 빼고도 540만 달러(약 74억3200만 원)에 달한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 공군의 규모를 따져보면 전투기 운영비로만 연간 3억3480만 달러(약 4600억 원)를 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요구한 50억 달러를 ‘폭거’라고 할 수 있을까.

    북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뉴시스

    북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뉴시스

    혹자는 한국이 매년 천문학적 금액의 미국 무기를 사준다며 ‘청구서’를 들이밀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3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미국산 무기 수입 순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호주, 유럽 등에 밀리는 처지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브런슨 사령관은 5월 13일 보도된 미국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새 지도자는 자신의 국가가 ‘동맹의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한국인들도 언젠가는 대응해야 할 위협(중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미일 협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5월 15일 하와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모 같은 존재” “주한미군의 초점은 북한 격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기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군 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군 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 뉴시스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돌발적으로 나온 게 아니다. 그의 발언은 5월 초 워싱턴DC 출장 중에 참석한 도상훈련(TTX)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해당 TTX는 미 국방부 국방위협감축국(DTRA)과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함께 동북아 비상 상황을 상정해 진행한 것이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5월 12일 공개한 훈련 결과 보고서에서 2030년 북한 도발로 시작되는 한반도 전쟁 가상 시나리오 ‘가디언 타이거 I’과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시작되는 동아시아 전쟁 시나리오 ‘가디언 타이거 II’ 일부를 공개했다. 해당 훈련에는 미 정부 관료와 군 장교, 비정부 전문가 60여 명이 참가했다. 해당 보고서 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한국, 중국 협박에 주한미군 자산 반출 반대”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가디언 타이거 I’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국지도발로 시작된다. 우선 북한은 서북도서에서 한국 군함과 항공기, 해군기지를 타격한다. 이에 한국은 제한적으로 대응하면서 한미군사위원회를 소집해 미국 측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고 북한에 대한 연합 공습작전을 수행한다. 다만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는 것을 피하고자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병력을 투입한다. 그럼에도 충돌이 격화되자 중국은 북한을 도와 제한적 군사 개입을 시작한다. 급기야 북한은 동해상의 한국 해군 함정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고 일본 열도를 관통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하는 전략 도발을 자행한다.

    해당 보고서는 이번 모의훈련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미국 측이 이렇다 할 대응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백악관 등 국가기관 구성원은 미국 대통령에게 핵·비핵 옵션을 모두 제안하면서도 후자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국방부에선 대북 정밀타격 작전을 제안하는 동시에 북한과 중국에 “북한이 추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미국은 핵무기를 쓰거나 김정은 정권 종식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직 주한미군 측 참가자들만 핵·재래식 전력을 총동원한 연합 총공세와 평양 인근 핵공격을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의훈련 결과이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이 굳게 믿고 있는 미국의 확장억제, 즉 ‘핵우산’을 맹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대만 유사시 상황을 다룬 ‘가디언 타이거 II’ 보고서에도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해당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막대한 손실과 전비 지출 부담으로 주한미군 자산 반출을 추진하지만 한국 측 반대에 가로막힌다.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을 억제하지 않으면 한국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는 중국 측 위협에 한국 정부가 굴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것이 아니다. 미 백악관과 국방부, 주한미군 수뇌부 인사들이 참가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미국 지도부가 한반도나 대만 유사시 한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4500여 명을 철수해 괌 등 다른 지역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3일 동아일보 질의에 “주한미군을 감축할 것이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우리는 늘 병력 배치를 평가한다(evaluate force posture)”고 덧붙여 관련 논의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중국 해군 랴오닝 항공모함 전단. 뉴시스

    중국 해군 랴오닝 항공모함 전단. 뉴시스

    WSJ “주한미군 4500명 철수 검토”

    여기서 4500여 명은 7월 순환배치 교대 예정인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과 지원 병력을 더한 규모다. 7월에 순환배치 부대가 철수하고 그 공백을 메울 부대가 한국에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순환배치 지상전투여단은 주한미군 유일의 지상전투부대다. 제8군 예하 제210포병여단과 제2전투항공여단·제501군사정보여단·제19원정지원사령부는 이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지상전투부대가 사라지면 이들 지원부대의 배치 이유도 없어진다. 미국이 최근 주한미군 전투기 전력 3분의 1을 줄인 것도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 움직임과 관련 있어 보인다. 지상전투부대 4500명이 나가면 주한미군 전면 철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번영의 한 축이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다. 국제정치를 직시하지 못한 한국 위정자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서 과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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