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조영철 기자
“AI 산업 관건 에너지 수급… 전력 인프라株 주목”
국내 기업들이 겪는 AI 사업의 어려움과 관련해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소개한 일화다. AI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지만 선두인 미국과 중국 빅테크를 추격하는 한국 기업들이 강한 규제와 구체적인 전략 부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라고 이 센터장은 지적했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AI·반도체 정책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6월 16일 이 센터장을 만나 새 정부의 AI·반도체 육성 정책이 어느 곳에 집중되고, 그 수혜 기업은 어디일지 들었다.새 정부의 AI·반도체 정책 특징은 무엇인가.
“이전 정부는 ‘민간 주도’를 강조했다. 가령 정부가 세금을 깎는 등 혜택을 줄 테니 그만큼 기업이 투자하라는 식이었다. 반면 이번 정부는 ‘국가 주도’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회의 뒷받침 하에 강력한 반도체 지원법을 입법화하는 게 뼈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는 기업 자율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매우 긍정적이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5년간 GPU 5만 개 이상 확보’ ‘AI 고속도로 구축’이 눈에 띄는데.
“현재 최신 GPU 기준으로 개당 가격이 4만 달러(약 5500만 원) 정도다. GPU 5만 개 확보에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가량이 든다. 국가 재정과 기업 투자 여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그 외 해결할 과제가 많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한 ‘AI 고속도로’ 구축에서 관건은 에너지 수급이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AI 산업 발전에 필요한 중요한 조건이다. 당장 전력 인프라 관련주가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눈여겨볼 종목군인 이유이기도 하다.”
새 정부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실현도 강조한다.
“AI·반도체 산업 내에서 많은 우려가 생길 수 있다. 명분은 좋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 데이터센터 운영이나 반도체 제조가 원활하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RE100 실현에 적극적이던 구글도 최근 재생에너지 기조를 사실상 포기하고 CF100(무탄소에너지 100% 사용) 추진으로 선회했다.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무탄소에너지원 사용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도 무리한 RE100 추진보다 CF100 같은 현실적 대안을 통해 AI·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수급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퓨리오사AI 칩, 좋은 퍼포먼스”
시장에선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이 100조 원 규모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개발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근 대통령실에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에 하정우 전 네이버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이 임명된 것도 이목을 끈다. AI 전문가로 꼽히는 하 수석은 평소 ‘한국형 AI 모델’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국내 AI 기업들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4월 14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인공지능(AI)·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 사무실을 찾아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글로벌 빅테크가 AGI(범용인공지능), 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시장을 선점하지 않았나.
“그렇다. 따라서 한국은 이른바 온디바이스(on-device) AI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의료, 교육 등 한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솔루션을 만드는 AI다. AI 칩도 기능과 목적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가령 데이터센터용 칩 개발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엔비디아의 ‘쿠다’ 플랫폼에서 벗어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특정 영역에서 반도체 개발부터 실제 앱 구동까지 테스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 AI 기술을 바짝 따라잡은 중국의 추격 전략이 이랬다. 당장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일단 자국산 반도체 칩으로 실제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국내 상당수 AI 기업이 비(非)상장사라서 관련 벤처캐피털(VC) 상장사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는데.
“대개 VC가 펀드를 만들어 GP(위탁운용사)가 되면 여기에 LP(기관투자자)와 증권사가 여럿 참여한다. 문제는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문제로 금융업계의 투자 여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기술력이 높은 스타트업도 투자를 유치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VC의 경우 IPO(기업공개) 당시 증권사들이 밸류에이션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 측면도 있다.”
“중국, 화웨이 중심 기술 생태계 구축”
글로벌 AI 경쟁은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을 선점한 미국 빅테크는 물론, 이를 추격하는 중국 테크기업의 기세도 매섭다. 이와 관련해 이 센터장이 들려준 한 가지 일화.“4월 말 중국에서 상하이 모터쇼가 열렸다. 우리 회사의 자동차 애널리스트가 다녀오더니 ‘자율주행 등 중국의 AI 기능이 국내 자동차 브랜드보다 크게 앞선다’며 놀라움을 전했다. 그 중심에 있는 회사가 바로 화웨이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캠브리콘 등 중국 AI 개발업체들이 자동차라는 플랫폼을 통해 협업하고 있다. 네트워크 기업인 줄만 알았던 화웨이가 반도체는 물론 소프트웨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자체적인 기술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그런 역할을 하던 기업이 삼성전자였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AI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당장 온디바이스 AI 개발에서 중요한 클라우드 시스템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클라우드 규제가 완화될 경우 수혜 기업은.
“우선 국내에 AI 인프라를 가진 네이버, SK텔레콤, 삼성SDS,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다. 동시에 온디바이스 AI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가령 의료용 AI 분야 ‘루닛’이나 AI 언어모델 업체 ‘몰로코’ ‘셀바스AI’ ‘코난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규제 완화로 전 국민이 클라우드에 접속한다면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될 것이다. 관련 기업들로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업 기회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 중심의 구조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그렇다. 한때 ‘AI 피크(peak)’ 우려가 있었지만 불식됐다. 지난 1년간 감소 추세이던 엔비디아의 사업 마진율이 최근 반등했고, 올해 하반기 더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 덕이다. 따라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엔비디아 중심의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으로 보는 게 맞다. 엔비디아의 GPU 생산비용에서 비중이 가장 큰 것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자연스레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를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의 화두는 서로 다른 칩을 어떻게 잘 붙이지는 여부다. 그런 측면에서 첨단 패키징 관련 업체의 투자 전망도 당분간 유망할 것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