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뉴스1]
먼저 거버넌스 측면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인 ESG 평가에서 고려아연과 영풍을 비교한 결과 양사의 격차가 확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기관에서 실시한 고려아연과 영풍의 ESG 평가 결과는 등급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표 참조).
고려아연, 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준수율 80%
한국거래소 ESG 포털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올해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ESG기준원에서 각각 A, A, B+ 등급을 받았다. 세 곳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기관이다. 반면 영풍은 서스틴베스트로부터 C 등급, 한국ESG연구소와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각각 B+, B 등급을 받았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서는 고려아연이 49점, 영풍은 15점을 받았다.
환경과 안전 부문에서도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2019년 이후 환경법규 위반으로 고려아연은 제재 조치를 9건 받은 데 비해 영풍은 22건을 받았다. 특히 영풍 석포제련소는 2019년 발생한 폐수 유출로 지난해 58일 조업정지를 받은 데 이어 최근 황산가스 감지기를 끄고 조업한 사실이 적발돼 별도로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한 영풍은 지난해 12월 비소 중독 근로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대표이사와 제련소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주주친화정책, 임시주총 캐스팅보드 전망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은 ‘세계 1위 제련소’로 불린다. [동아DB]
또 서스틴베스트도 1월 13일 영풍-MBK가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진 후보로 추천한 강성두 영풍 사장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서 “강 후보가 재직 중인 영풍의 재무 성과와 지속가능경영 성과는 저조한 수준”이라며 “전문성 측면에서 타 후보가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에 적합하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고려아연 경영진과 영풍-MBK 양측 모두 의결권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제3 주주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주주친화정책이 표심을 가를 캐스팅보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고려아연은 친주주정책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은 임시주총에 소액주주연대들이 강력하게 요청하는 집중투표제를 비롯해 분기배당과 배당기준일 변경, 액면분할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지난해 11월 최윤범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등의 권리 및 경영 참여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진정한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밝힌 이후 관련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임시주총의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집중투표제 도입은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이사회 다양성 보장에 기여하는 대표적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이사 수를 곱한 것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수주주들의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 소수주주가 자신의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주주나 지배주주의 권한이 다소 제한되긴 하지만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해 이사회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소수주주 의결권 강화하는 집중투표제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 [동아DB]
영풍-MBK는 “소수주주 권익 보호 목적의 집중투표제 취지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이번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채택 추진에 대해서는 “최윤범 회장의 ‘자리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것이 분명하다”며 지난해 12월 23일 법원에 집중투표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상법상 ‘3%룰’(대주주 의결권 제한)로 영풍-MBK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들고 있더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 3%까지만 의결권을 인정받아 이사회를 장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영풍은 소액주주연대와 행동주의펀드 및 기관들로부터 주주친화책을 수립하라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1월 3일 주주행동주의 플랫폼 액트는 영풍에 발송한 공개 주주서한에서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과실을 주주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주주가치 제고는 요원할 것”이라며 △5개년 주주환원정책 발표 △액면분할 등을 요구했다.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4년 만에 매출 2조 원 증가
고려아연, 매년 배당 확대… 주주환원도 영풍에 판정승
우선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수익성 차이가 크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3분기 누적 별도 기준으로 매출 5조8307억 원, 영업이익 6272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풍은 매출 8188억 원, 영업손실 204억 원을 거뒀다. 2014년 이후 고려아연이 매년 1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반면, 영풍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이익률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고려아연의 성장세는 최윤범 회장이 201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에도 꺾이지 않았다. 2019년 별도 기준 5조2910억 원이던 매출은 2023년 7조2910억 원으로 4년 동안 39.7%(2조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풍은 1조3480억 원에서 1조5467억 원으로 14.7%(1987억 원) 오르는 데 그쳤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고려아연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고려아연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약 2.06배, 영풍 PBR은 0.18배다. PBR은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가치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반대로 1배를 웃돌면 그만큼 주식가치가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정 기간 기업 주식에 투자해 실현한 수익률을 뜻하는 총주주수익률(TSR)도 고려아연이 앞선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2019년 3월부터 2024년 8월까지 고려아연의 TSR은 40.3%, 영풍은 -58.5%를 기록했다.
주주환원 측면에서도 고려아연이 우세하다. 2019년 43.6%이던 배당성향은 매년 상승해 2023년 68.8%를 나타냈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 지급 비율을 의미해 그동안 고려아연이 주주들에게 이익을 나누는 비중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 회장이 대표로 취임한 이후 배당금 지급액은 2019년 1944억 원,
2020년 2474억 원, 2021년 2651억 원, 2022년 3535억 원, 2023년 5959억 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영풍은 2017년 172억 원 배당금을 지급한 이후로 매년 동일한 배당 재원을 책정했다. 주요 밸류업 수단인 자기주식 소각 역시 고려아연이 우위에 있다. 고려아연은 2023년 11월 1000억 원, 지난해 5월 1500억 원, 8월 4000억 원을 사들인 가운데 2023년 1000억 원어치를 소각한 바 있다. 반면 영풍은 자기주식 소각을 한 번도 이행한 적이 없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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