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지만 “아, 종교가 있으면 좋았겠다” 싶은 순간이 살면서 가끔 있다. 부정적인 순간 말고 긍정적인 순간만 보자면, 2016년 겨울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문했을 때가 그랬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무교인 사람도 이렇게 감동하는데 천주교인이라면 얼마나 의미 있게 느껴질까 싶었다.
다시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은 건 2022년 가을이다.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탄생 100주년에 맞춰 2026년 완공을 목표로 140년 넘게 건축 중인 성당은 완공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여기서 2026년은 코로나19 발생 전 세운 목표다. 1882년 착공한 성당이 완공되면 그동안 순수하게 방문객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지은 만큼 1년간은 대중에게 무료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자도 그간 입장료를 두 번 냈으니 완공 소식이 들리면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밝게 빛나는 베들레헴의 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동쪽 ‘탄생의 파사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만들었다. 2016년(왼쪽)과 2022년 모습. [구희언 기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역사는 바르셀로나 관광업계를 먹여 살린다는 ‘가우디 투어’를 한 번 하면 대략 알 수 있다. 기자는 2016년과 2022년 모두 같은 업체를 통해 가우디 워킹 투어를 했는데 만족스러웠다. 바르셀로나에 다양한 워킹 투어 업체가 있지만 같은 곳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2016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도 잘 버티는 곳이라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번 여행에는 천주교인 지인도 동행했는데 “그냥 보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성당 곳곳의 장식과 조각들에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는 걸 짚어줘 더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2016년과 2022년 사이 성당의 변화를 살펴봤다. 예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다녀왔다면 그때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테다. 2022년 성당을 방문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지름 6m, 무게 5.5t의 빛나는 별이 생겼다는 점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두 번째 높은 첨탑(성모 마리아 첨탑, 높이 137m) 꼭대기에 있는 별은 2021년 ‘마리아 대축일’ 행사를 위해 설치됐기에 2016년에는 볼 수 없었다. 밤에 보면 멀리서도 오롯이 빛나 더 멋지니 낮에 방문했다면 저녁에도 근처를 거닐어보자. 성당 근처 공원에서는 연못에 비친 별과 성당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빛의 숲에 온 것 같은 성당 내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서쪽 ‘수난의 파사드’. 건축가 조셉 마리아 수비락스가 건축했다. 2016년(왼쪽)과 2022년 모습. [구희언 기자]
2021년 생긴 성모 마리아 첨탑의 별은 밤에 봐야 더 멋지다. [구희언 기자]
아쉬운 점은 언제 와도 높은 크레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사가 하도 길어져 크레인이 이제 성당 일부처럼 보인다. 2016년에는 설치가 한창이라 가림막이 쳐 있던 수난의 문 쪽 조형물이 2022년에는 모두 완성돼 있었다. 그 대신 이번에는 첨탑에 가림막이 있어 전경 사진을 찍으니 석가탑처럼 보이는 게 함정이었다. 이쪽 파사드는 조셉 마리아 수비락스(Josep Maria Subirachs)가 지었다. 가우디가 건축한 동쪽 파사드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모두 가우디 설계대로 지은 것이다.
거리 곳곳에서 예술가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구희언 기자]
참고로 이곳은 람블라스 거리만큼이나 소매치기들의 ‘핫 플레이스’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을 한참 못 해 다들 굶주려 있다고 하니 주의하자. 성당 안팎을 다닐 때는 반드시 휴대전화와 가방의 안녕을 확인해야 한다. 현지 가이드는 “한 손님이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소매치기가 그대로 폰을 낚아채 도망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2016년 투어에서 만났던 사람도 성당 일정을 마치고 폰을 소매치기당했다. 목걸이나 고리 형태 휴대전화 케이스를 활용하는 걸 추천한다.
성당은 입장권을 사면 시간대별로 입장할 수 있다. 성당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으면 한국어 음성 가이드가 제공되니 이어폰을 챙겨가는 게 좋다. 종교인에게는 성스러움 그 자체인 공간, 비종교인에게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프로필 사진용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공간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는 빛이 아름다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구희언 기자]
생전에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지만 곡선은 신의 것”이라고 했던 가우디답게 내부도 남다르다. 2016년과 달라진 건 기자의 사진 촬영 실력뿐이라 따로 비교 사진을 넣지 않았다. 하늘과 별을 담아낸 천장, 태양 방향에 따라 의미와 색이 달라지는 스테인드글라스, 나무처럼 기운 나선형 기둥 덕에 빛의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당 안쪽에도 의미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조형물이 많으니 오디오 가이드에 따라 찬찬히 둘러보자. 기자가 추천하는 건 해 지기 전 시간대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묵상하다 해 질 녘에 나오는 것이다.
지하에는 성당 역사가 담긴 사진과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어 그걸 둘러보고 굿즈숍에서 마음에 드는 굿즈를 사면 된다. 기자는 독실한 천주교인 친구들을 위해 성당 벽에 조각된 마방진 모양의 키링을 샀다.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숫자를 더하면 각각 33이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생전 가우디는 “슬프게도 나는 내 손으로 성당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후손들이, 다음 건축가가 이 건축물을 완성하고 이곳에 빛을 내려주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본디 그가 완공 시기로 생각한 건 2082년이다. 부디 그것보다는 전에 완공돼 가림막과 크레인 없는 성당을 한 번 정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성당 찍고, 가우디 투어한다면 여기만은 꼭!
기자는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는 워킹 투어를 하루 정도 하고, 다른 일정은 자유롭게 즐기기를 추천한다(투어비용 인당 4만~8만 원대). 밤에 혼자 다녀도 비교적 안전한 거리부터 기념품 상점, 디저트 가게까지 많은 최신 정보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디 작품들을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즐길 계획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들이 있다.
#카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 밤에 뼈 형태의 디자인이 더 잘 보인다. [구희언 기자]
그라시아 거리 43번지에 있는 건물로 이름 뜻은 ‘바트요의 집’. 카사 바트요는 여러 기업과 개인을 거쳐 1990년 이후 현 건물주인 베르나트 가문 소유가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다. 바로 옆에 건축가 조셉 푸이그 이 카다팔크(Josep Puig i Cadafalch)가 지은 카사 아마트예르가 붙어 있어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입장료 35유로(약 4만8080원)부터.
#카사 밀라
채석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카사 밀라. 카페에서 카사 밀라 ‘미리 보기’를 할 수 있다. [구희언 기자]
카사 바트요에서 알 수 있듯이 ‘밀라의 집’이라는 뜻이다. 라 페드레라(채석장)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졌다. 주로 돌을 사용한 파사드와 발코니 덕에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도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투구 디자인이 이곳 굴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확인해보자. 입장료가 조금 부담스럽다면 건물에 있는 카페 드 라 페드레라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부를 살짝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입장권 구매를 고려하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팁. 카사 밀라 입장료는 25유로(약 3만4340원)부터. 카페는 라테 3.5유로, 초콜릿 크루아상 2.6유로.
#구엘 공원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구엘 공원. [구희언 기자]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 전원도시를 모델로 했다. 놀라울 정도로 편한 인체공학적 의자에 앉아 살바도르 달리처럼 십자가를 모자 삼아 찍는 사진이 인기. 한 번에 잘 찍으려면 스마트폰 카메라 줌을 당겨 찍어야 적당한 크기의 ‘십자가 모자’를 쓸 수 있다. 경사가 심한 지형을 이용한 천연 동굴에서도 많은 이가 기울어진 느낌의 인증샷을 찍는다. 상징인 도마뱀 분수는 늘 사람이 붐비니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눈치 게임이 필수다. 입장료 10유로(약 1만3740원)부터.
한국인 잔뜩 맛집 vs 미쉐린 원스타 맛집
스페인 요리는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 선호도가 높다. 바르셀로나에 왔다면 반드시 가야 할 맛집, 그리고 가성비 좋게 미쉐린 원스타 식당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이를 위한 맛집을 소개한다. 식사 시간은 2시간 이상으로 넉넉히 잡는 게 좋다.
#비니투스(VINITUS)
비니투스의 꿀대구와 맛조개 타파스. [구희언 기자]
한국인 관광객 덕에 건물 몇 채는 올렸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관광객이 많은 곳. 다양한 나라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다채로운 종류의 타파스를 즐기고 싶다면 추천. 맛조개와 꿀대구는 반드시 맛보자. 레몬 맥주인 끌라라를 곁들이면 좋다. 스페인 사람들의 대중적인 식사시간을 살짝 피해 가면 기다림이 덜하다. 밤 9시가 넘으면 줄이 길게 늘어선다. 꿀대구 11.95유로(약 1만6500원), 맛조개 10.5(약 1만4500원)유로.
#오리아(Oria)
오리아의 전통 메뉴.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구희언 기자]
5성급 호텔인 모뉴먼트 호텔 1층에 있는 미쉐린 원스타의 지중해식 레스토랑. 공식 홈페이지 또는 ‘The Folk’ 앱에서 예약할 수 있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열고 일요일은 점심 영업만 한다. 점심은 오후 1시부터 3시 30분, 저녁은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전체 메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성비가 가장 좋은 건 점심 이그제큐티브 메뉴로 인당 65유로(약 9만 원). 전통 메뉴는 인당 100유로(약 13만8000원). 같은 호텔에 미쉐린 스리스타 식당 ‘라사르테(Restaurante Lasarte)’도 있다.
여기는 어쩌다 SNS 명소가 됐을까요. 왜 요즘 트렌드를 아는 사람들은 이 장소를 찾을까요. 구희언 기자의 ‘#쿠스타그램’이 찾아가 해부해드립니다. 가볼까 말까 고민된다면 쿠스타그램을 보고 결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