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눈길 사로잡은 ‘이건희 컬렉션’… 국보급 문화재 첫 해외 순회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서 전시… 세계무대로 도약하는 K-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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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6-01-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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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더피’를 닮아 화제가 된 ‘법고대’를 감상하고 있다. 동아DB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더피’를 닮아 화제가 된 ‘법고대’를 감상하고 있다. 동아DB

    백제 금동불상부터 조선 화가 정선의 ‘인왕제색도’, 근현대 우리 농촌 풍경을 담은 박수근의 ‘농악’까지 1500년 한국 미술사의 걸작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미국에서 열려 화제다.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2월 1일까지 진행되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한국의 보물’) 특별전이 그것.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품으로 구성됐다. 국보 10점, 보물 16점을 포함한 총 321점의 전시작은 한국 문화의 독창성과 매력을 선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한류를 만들어낸 문화적 뿌리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미국 골든글로브 2관왕을 차지하는 등 K-콘텐츠의 인기와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 전시에도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11월 개막 후 하루 평균 750명 이상이 방문해 누적 관람객 수 4만 명을 넘겼다. 

    특히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일월오봉도(일월오악도)’다.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진 이 그림은 케데헌 후반부에 주인공 ‘헌트릭스’가 ‘사자보이즈’와 노래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 배경으로 등장했다. 푸른 하늘과 다양한 상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신비한 분위기가 화제였다. K-콘텐츠에 대한 관심으로 특별전을 찾은 외국인들에게는 깊은 인상이 남을 만한 작품인 셈이다.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일월오악도’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일월오악도’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 연장선에서 전시작 ‘법고대(法鼓臺)’ 또한 주목받고 있다. 법고대는 사찰에서 사용하는 북 받침대인데, 북을 등으로 떠받치고 있는 동물이 케데헌 속 호랑이 캐릭터 더피와 닮았다. 이런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K-콘텐츠의 바탕이 되는 한국 문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조선 선비 문화를 상징하는 ‘책가도’와 한국 현대 회화의 진수로 꼽히는 김환기의 단색화 등 다른 전시작들로도 눈길을 돌린다. 화려한 금동불상과 소박한 달항아리 등 시대를 넘어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공예품 또한 관람객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캐럴 허 NMAA 현대예술 담당 부(副)큐레이터는 미국 잡지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바로 이 부분을 강조했다. “한국 전통 예술과 문화는 인기 영화, 드라마, 음악을 통해 이미 많은 이에게 전달됐다”며 “이번 전시가 (K-컬처에 대한) 오늘날의 열기를 역사적 뿌리와 연결함으로써 한국 예술을 잘 모르는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 이 바람은 현실이 되고 있다. 황선우 NMAA 큐레이터는 “개막 후 학생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전시장을 찾고 있고 법고대와 달항아리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관람객이 많다”고 전했다.  



    K-미술 세계화 계기

    전문가들은 한국 미술사를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종합적으로 소개한 이번 전시가 K-미술의 세계무대 진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기대한다.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한국미술사를 강의하는 김성림 교수는 “세계 미술계가 한국 미술을 중국과 일본의 부수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필수적인 목소리로 인식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흥겹게 춤추는 농민들 모습을 묘사한 박수근의 ‘농악’.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흥겹게 춤추는 농민들 모습을 묘사한 박수근의 ‘농악’.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전시를 소개하면서 “현재 인기있는 한국 문화를 보통 한류(Korean Wave)라고 하는데, (‘한국의 보물’ 특별전) 전시장에서 보면 한국 문화는 파도(wave)가 아니라 하나의 물줄기(flow)”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것도 인상적이다. 한 누리꾼은 이 기사 아래 댓글을 통해 “이번 전시는 현대 K팝 에너지가 수 세기에 걸친 깊은 예술적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완벽하게 보여줬다”는 관람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고인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문화재와 미술품 약 2만3000점(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을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면서 이뤄졌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우리 문화재가 국내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이를 모아 국립박물관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에 대해 “이건희 컬렉션은 시작부터 ‘국가적 보물’의 유출을 막고 지키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월 1일 폐막 후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미국 시카고박물관, 9월 10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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