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1

..

[영상] 멸종위기 야생 독수리에게 밥을… 파주 ‘독수리 식당’ 

[진짜임? 해볼게요] 임진강생태보존회, 겨울철 매주 3회 독수리 수백 마리에 먹이 주기

  • 파주=이진수 기자 h2o@donga.com

    입력2026-01-0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 ‘진짜임? 해볼게요’는 기자가 요즘 화제인 현상, 공간, 먹거리부터 트렌드까지 직접 경험하고 진짜인지 확인하는 리얼 체험기다.


    경기 파주 ‘독수리 식당’에서 독수리 떼가 논에 뿌려진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김형우 기자

    경기 파주 ‘독수리 식당’에서 독수리 떼가 논에 뿌려진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김형우 기자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났죠. 독수리 보려고 연차 썼어요.”

    지난해 12월 18일 오전 9시 30분, 경기 파주 문산읍 장산리 논둑에서 만난 권기림 씨(31)가 한 말이다. 이곳은 사회적협동조합 ‘임진강생태보존회’(보존회)가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수리들에게 밥을 주는, 이른바 ‘독수리 식당’이다. 

    독수리는 멸종위기에 놓인 천연기념물로, 매년 겨울 몽골에서 약 3000㎞를 날아 한국에 온다. 윤도영 보존회장이 2009년 이들에게 먹이를 챙겨 주기 시작한 것이 독수리 식당의 출발점이다. 현재는 파주를 비롯해 강원 철원, 경남 고성 등 전국 곳곳에서 관계자들이 각각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돼지고기 150㎏ 10분 만에 동나 

    기자는 독수리 식당을 보고자 이날 일찍 파주로 향했다. 한파가 닥친 날이었다. 서리가 내린 흙바닥에서 걸음을 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이렇게 땅이 얼어붙고 눈이 쌓이면 독수리는 먹이를 찾지 못해 탈진하거나 굶어 죽는다. 보존회는 이를 막고자 일주일에 3번, 매주 화·목·토요일 아침 파주 논바닥에 폐기 대상이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돼지·소·닭고기를 뿌린다. 



    평소 배식은 오전 9시 30분 시작되는데 이날은 단체 탐조객 방문 일정에 맞춰 오전 10시로 시간을 옮겼다. 독수리들은 밥때를 아는지 오전 9시 20분 무렵부터 하나 둘 전봇대와 논둑 위로 날아들었다. 세어보니 대략 200마리 안팎. 독수리들이 급식실 앞 학생들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배식을 기다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독수리가 많이 오는 날은 최대 800여 마리가 모여들 때도 있다고 한다. 윤 회장은 “늘어나는 독수리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지인들에게 ‘같이 하자’고 권한 게 보존회의 시작”이라며 “그렇게 ‘코가 꿴’ 사람들이 우리 조합원이 됐다”고 말했다.

    보존회가 독수리에게 제공하는 고기 양은 마리당 1㎏ 안팎이다. 노황호 보존회 이사는 배식량을 조절하는 이유에 대해 “독수리의 야생성을 해치지 않으려고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엔 고기를 차량으로 옮기는데 이날은 논바닥이 질척여 조합원들이 직접 30㎏ 무게의 상자 5개를 들고 논 안쪽까지 날랐다. 

    이날 돼지고기 150㎏이 바닥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독수리들 틈새로 까치와 흰꼬리수리 등이 파고들어 눈치껏 먹이를 빼앗아 먹는 모습도 보였다. 독수리들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곧바로 떠나지 않고 논두렁에 앉아 소화를 시키려는 듯 한동안 주변에 머물렀다. 이 광경을 지켜본 탐조객 박보람 씨(31)는 “싸우지 않고 자기 먹을 만큼만 딱 먹는 모습이 똑똑한 고양이 같다”고 말했다. 

    논둑에 일렬로 내려앉아 배식을 기다리는 독수리 떼. 김형우 기자

    논둑에 일렬로 내려앉아 배식을 기다리는 독수리 떼. 김형우 기자

    독수리 먹잇값만 연간 수천만 원

    독수리 식당이 입소문을 타면서 배식 시간에 맞춰 이곳을 찾는 이가 크게 늘었다. 특히 겨울방학 기간인 1~2월에는 가족 단위 탐조객이 많다고 한다. 새 사진을 찍으러 오는 출사객도 적잖다. 문종민 보존회 감사는 “가끔 독수리 식당의 취지를 모르는 분들이 큰 카메라를 들고 와 더 좋은 사진을 찍겠다며 먹이 놓는 위치를 바꿔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있다”며 “독수리 보호라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싫은 소리를 한 번씩 한다”고 말했다. 

    윤도영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장이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던져 주고 있다. 김형우 기자

    윤도영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장이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던져 주고 있다. 김형우 기자

    독수리가 한반도를 찾아왔다가 몽골로 돌아갈 때까지 5개월간 진행하는 배식 횟수는 약 60회. 한번에 40만~50만 원 상당의 고깃값이 든다. 조합원 회비와 일부 기부금을 제외하고 윤 회장이 17년간 쏟아부은 사비만 수억 원에 달한다는 후문이다. 보존회는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2024년 사회적협동조합 법인 등록을 마치고 인당 1만 원의 탐조비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먹잇값과 논 임차료 등을 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해 조합원들의 부담이 적잖다고 한다. 김현상 보존회 이사는 “겨울에 제대로 먹지 못한 독수리들은 몽골로 돌아가는 도중 체력이 떨어져 죽기도 한다. 독수리들이 굶주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독수리 식당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