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돈암시장의 ‘오백집 모자족발’(왼쪽)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감자탕집인‘태조감자국’.
겨울 끝자락이 보이지만 돈암성당 바로 옆 ‘구룡포 전어횟집’에는 과메기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가을엔 전어, 겨울엔 과메기, 봄이면 문어 같은 제철 재료를 기본으로 한 음식이 모두 맛있다. 주인이 재료 고르는 안목이 있고, 그것을 다듬는 솜씨도 만만찮다. 밑반찬도 집에서 먹는 것처럼 믿음직하다. 가을철 전어를 발라내는 주인 실력이 웬만한 일식집 저리 가라다.
‘구룡포 전어횟집’에서 성신여대입구역 쪽으로 걸어가면 돈암시장이 나온다. 돈암시장으로 가는 큰길가에 ‘오백집 모자족발’이 있다. 아들이 대를 이으면서 ‘삼백집’에서 ‘오백집 모자족발’로 이름을 바꿨다. 필자는 1980년대부터 이 집을 드나들었다. 국산 생족으로 만든 쫄깃한 껍질에 고소한 살코기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든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싱싱한 부추와 겉절이, 쪽파를 푸짐하게 주는 것도 즐겁다. 성북구 전체에 배달을 하는 등 가게 규모는 커졌지만 30년이 넘도록 이 집 족발 맛은 변함없다.
돈암시장은 1952년 들어섰다. 시장 안에는 감잣국집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태조감자국’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감자탕 전문점이다. 오래된 감자탕집들은 대개 ‘감자국’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돈암동 제일시장 터줏대감인 이 가게의 창업연도는 58년으로 알려졌다.
‘좋다’(1만1000원), ‘최고다’(1만4000원), ‘무진장’(1만9000원), ‘혹시나’(2만4000원) 같은 익살맞은 감잣국 메뉴는 이 집에서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담백한 국물에 양도 푸짐해 술꾼에게는 술안주로, 가족 단위 손님에게는 푸짐한 한 끼 식사로 인기다.
감잣국(탕)용 돼지고기는 먹을 게 없던 시절을 생각게 한다. 과거엔 돼지고기를 정육할 때 뼈에 붙은 고기를 최대한 발라냈다. 더는 발라낼 수 없는 살만 남아 가난한 사람들 식탁에 올랐다. 지금은 다르다. 감자탕이 인기를 끌면서 감자탕용 뼈에 일부러 살코기를 많이 붙여놓기도 한다.
돈암시장 건너편에는 1978년 문을 연 ‘온달치킨’이 있다. 커다란 왕돈가스와 전기구이 통닭으로 유명하다. 60년대 생겨난 전기구이 통닭이 고급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바뀔 무렵 탄생한 집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 집 전기구이 통닭은 서울에서 가장 저렴하다. 싼 가격과 푸짐한 양은 근처 맛집들과 일관된 공통점이다. 초창기부터 이 집은 생맥주를 팔았다. 이 동네를 오랫동안 어슬렁거린 토박이는 위의 세 집에서 1차를 먹고 ‘온달치킨’에서 2차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계절마다 조금씩 변하지만 고구마나 무 같은 채소를 무료로 계속 주는 것도 이 집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성신여대 입구의 패션 트렌드와 가게들 성격은 빠르게 변해왔지만 유명 맛집들의 음식맛은 여전하다. 대부분 2세가 물려받아 분위기와 음식 철학을 이어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