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일스’의 감독 겸 주연인 돈 치들은 코미디 배우로 더 유명하다. 이번이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시리즈’에서 자의식 가득한 흑인 멤버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뭐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받아서 그런 거라고 불평하는 탄약 전문가였다. 그 배역은 물론 패러디이지만, 치들의 인종적 자의식을 짐작게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신의 음악적 영웅이자 ‘흑인’ 음악가의 영웅이기도 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영화 ‘마일스’가 강조하는 것은 전성기 시절 데이비스의 ‘영웅적’ 활약이 아니다. 데이비스는 1970년대 중반 약 5년간 은둔생활을 했는데 영화는 바로 그 시절, 곧 ‘암흑기’를 다룬다.
‘마일스’에 따르면 그때 데이비스는 거의 폐인처럼 살았다. 지금도 팬들에겐 ‘의문의 은둔’으로 남아 있는 그 기간 데이비스는 마약과 섹스의 포로가 돼 방탕하게 살았다. 말하자면 ‘마일스’는 자신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삶이 ‘천재’에겐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양 묘사하고 있다. 종종 냉철한 철학자 같던 데이비스의 평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삶의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재의 파괴적인 삶은 과거 전 부인과의 사랑과 비교된다. 현재가 위험하면 할수록 과거는 꿈처럼 달콤하게 전개된다. 게다가 과거가 회상될 때면 데이비스의 걸작이 끝없이 연주된다. 특히 전 부인과의 결혼생활과 겹치는 ‘컬럼비아레코드 시대’(대략 1955~75년) 발표작이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쿨재즈의 걸작으로 남은 앨범 ‘Kind Of Blue’(1959)의 ‘So What’, 피아니스트 길 에번스와 협연한 것으로 유명한 앨범 ‘Sketches Of Spain’(1960)의 ‘Solea’ 같은 곡들이다.
사실 지금도 할리우드에선 주인공과 주요 인물이 모두 흑인인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한다. 투자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재즈의 전설인 데이비스 관련 전기영화가 이제야 발표된 데는 이 같은 영화 제작의 현실적 문제도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치들의 ‘마일스’는 반가운 소식이다. 데이비스가 5년의 암흑기 끝에 마침내 무대에 돌아오는 장면은 ‘왕의 귀환’처럼 화려하게 표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