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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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분류’ 전면수술 필요하다

일제 때 지정 62년, 95년 두 차례 재분류뿐… 국보급이 보물로 지정되기도

  • 입력2005-02-28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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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분류’ 전면수술 필요하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지정문화재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문화재 관련 일부 학회 등에서도 1980년대부터 이런 부분에 주목해 여러 번 토의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현실화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언젠가 한번 하기는 해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 미리미리 철저히 준비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문화재위원인 서울대 안휘준 교수는 “지정된 문화재의 내용이나 격이 국보나 보물에 합당하지 않은데도 과분하게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또 국보급인데도 보물로 지정한 사례들도 있다”고 말한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조각분야 전문가인 동국대 문명대 교수는 “지정한 문화재의 명칭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많다”고 말했다.

    시대 급변 ‘후속 평가작업’ 소홀

    회화 전문가인 안교수는 국보로 지정한 것 가운데 재분류가 시급한 것으로 두 건을 거론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46호)와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국보 238호)이 그것. 안교수는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같은 시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작품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고 현 상태가 본래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어 보물로 재지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소원화개첩 역시 서체가 힘이 약해 보물로 지정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소원화개첩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쓴 서첩으로 안평대군의 글씨 가운데 진품으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문화재.

    문교수는 경북 안동에 있는 보물 58호 ‘안기동 석불좌상’에 대해 “보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발견 당시 광배와 대좌는 물론 머리까지 없어진 상태였다. 지금은 대좌와 머리는 만들어서 붙여놓았다. 또 문화재 전문가 A씨는 “국보 가운데 일부 향로와 백자주병에 대해서는 중국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정밀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것이라고 국보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어떤 경우든 소문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 문화재 전문지는 “묘법연화경이라는 명칭이 들어가 문화재로 지정한 경우가 국보만 5점, 보물급은 무려 50여점이나 된다”며 “좀더 신중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묘법연화경’과 관련된 기존 지정문화재들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은근히 거론한 셈이다.



    반면 보물로 지정한 것 가운데 국보로 상향조정이 필요하다고 거론하는 것들도 있다. 안교수는 보물 527호인 김홍도 풍속도첩(風俗圖帖), 보물 596호인 궁궐도(宮闕圖), 보물 613호인 보한재영정(保閑齋影幀), 보물 744호인 정조어필 국화도(菊花圖) 등을 대표적 사례로 거론했다. 불교서지학 전문가인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 예능민속실장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월인석보는 국보 지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재를 둘러싼 명칭 문제도 오랫동안 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 중 하나다. 문명대 교수는 “한때 ‘불상’을 ‘부처상’으로 바꾸거나, ‘입상’ (立像) 을 ‘선상’이나 ‘선모습’으로 하는 등 한글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일반인들이 낯설게 느끼고 이미 배포되어 있는 인쇄물을 바꿔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국보 110호 ‘익재영정’은 ‘이제현 33세상(世像)’으로, 국보 11호 ‘회헌영정’ 같은 경우는 ‘안향상(像)’으로 바꾸는 등 “되도록 육하원칙이 반영되면서도 가능한 한 간편한 명칭을 부여할 수 있도록 원칙을 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문화재의 지정등급이나 명칭 등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국가 전체의 문화재 관리체계 확립과 관련이 깊다. 새로운 유물의 출현이나 기존 지정문화재의 훼손 등으로 인한 재평가 작업의 체계화, 시대변화에 따른 유물의 가치상승이나 하락에 따른 지정의 신축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재 당국은 지정한 뒤의 ‘후속 평가작업’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문화재는 그동안 횟수로만 따지면 두 번의 재분류 작업을 받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주 제한적인 부분에 그쳤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이 일차 계기였다. 일제시대 때 지정한 591건의 문화재에 대해 당시 이홍직 고려대 교수 등 7명의 문화재위원은 격론을 벌이며 문화재 재분류 작업을 했다. 이에 따라 국보 69건, 보물 270건, 사적 98건 등이 지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작업은 97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낸 자료에도 “일제시대 때 지정된 591건은 별다른 재평가 없이 1962년 재지정되었으며…”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재평가라기보다는 ‘재지정’하는 데 그쳤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문화재전문가는 “당시에 남대문보다는 석굴암을 국보 1호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호수는 단순한 관리번호여서 중요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의견에 밀렸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하나로 문화재 재평가 작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 보물 44호였던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국보 290호가 되는 등 문화재 15건의 등급이 조정되었고, 남대문이 숭례문으로 바뀌는 등 문화재 7건의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때 또한 ‘일제시대 지정 문화재’로 평가대상이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문화재 재평가’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말이 쉬워 문화재 재평가지, 실제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둘이 아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문제가 있는 지정문화재를 지적하려고 해도 지정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인사가 살아 있거나 소장자가 개인인 경우 공개적으로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인맥과 학맥 등으로 얽힌 문화재계의 속성상 충정어린 문제제기라 하더라도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고, 개인 소장자의 경우 가격하락 등을 우려해 극렬 저항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 교과서나 외국 홍보물 등을 바꿔야 하는 것도 큰 문젯거리 중 하나다. 단순히 명칭만 바꾸더라도 그에 따른 부수작업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때문에 문제점을 인식하더라도 국가적인 차원의 뒷받침이 없는 한 작업을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 지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을 어려운 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문화재전문위원은 “문화재위원이 누구인지에 따라 등급이나 명칭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자의적인 평가가 강한 상황에서는 재평가 작업을 한다 해도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마애불 등을 어디서 담당할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등 문화재위원회 각 분과별로 담당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충분히 검토를 한다고 해도 쉽지 않은 게 문화재 재평가-재분류 작업이지만 준비는 해나가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고미술전문가는 “문화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시켜 상시적인 재평가 체계를 만들든지 아니면 일정 주기를 두고 별도로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망라한 임시조직 등을 만들어 재평가작업을 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 당국은 여유를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한 관계자는 “일부 학자들이 문화재 재평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인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어떻게 재분류할 수 있겠나. 외국에서도 그런 예는 없다. 현재로서는 계획도 없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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