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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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산불에 죽거나 다친 반려동물도 급증

[이학범의 펫폴리] 대피소에 반려동물 못 데려가… ‘반려동물 동반피난법’ 제정 목소리↑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5-05-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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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실외에 줄로 묶어두는 반려견은 재난이 났을 때 피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S

    실외에 줄로 묶어두는 반려견은 재난이 났을 때 피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S

    최근 영남 지방을 휩쓴 역대 최악 산불로 많은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반려동물은 물론, 농장에서 사육하던 가축도 많이 죽고 다쳤죠. 수의사 100여 명을 포함해 동물단체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부상당한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긴급 봉사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 활동이 종료된 뒤 ‘반려동물 동반피난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북 안동에 동물긴급진료소를 만들고 동물 200여 마리를 구조·치료한 동물권단체 연합 ‘루시의 친구들’은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반려동물 동반피난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동반’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반려동물이 보호자를 따라 대피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재난포털이 제공하는 ‘재난 대피소 지침’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고,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 봉사 동물만 입장이 허가됩니다.

    묶어 놓고 기르는 반려견 피해 커

    대피소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행정복지센터, 학교, 지하철역 등에 지정돼 있습니다. 산불, 지진, 태풍, 홍수 같은 자연재해 또는 전쟁이 발생하면 이런 대피소로 신속히 대피해야 하는데, 반려동물은 입장이 불가능하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우선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없다”는 말에 대피소 입소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 같은 동물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거죠.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대피소로 이동을 명령할 정도면 상황이 매우 급박하고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대피를 거부하면 현장 통제 인력 등이 추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는 동물이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됩니다. 특히 묶어 놓고 기르는 반려견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가 목줄을 풀 경황이 없거나, 대피할 때는 집까지 재해가 닥치지 않아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목줄을 채워놔 반려견이 도망가지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일이 빈번합니다. 2019년 고성 산불, 2022년 울진 산불, 그리고 이번에 영남 산불에서 수많은 반려견이 불길을 피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만약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반려동물과 동반 대피가 불가능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부도 2022년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한 바 있죠. 다만 이 가이드라인에서도 대피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대피시설(임시주거시설) 목록을 만들어놓고, 해당 시설까지 이동하는 경로와 방법을 미리 생각해놓는다.”

    “출발하기 전 이동하고자 하는 대피시설에 연락해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여분의 공간이 남아 있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미리 생각해놓은 이동 수단 및 경로를 이용해 대피시설로 이동한다.”

    요약하자면 보호자 스스로 반려동물 동반 대피가 가능한 장소를 찾아보고, 알아서 대피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난 대피소 지침이 반려동물 입장을 허가하지 않다 보니 동반 대피가 가능한 대피소를 찾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동반 대피 관련 법률안 3건 폐기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2023년 재난 발생 시 대피시설에 반려동물과 효율적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한 법률 개정안 3건을 대표 발의했습니다(재해구호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민방위기본법).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 구호 대상에 이재민 및 일시 대피자의 반려동물 포함
    ‌• 구호 기관은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대피시설(임시주거시설) 제공을 위해 노력
    ‌• 정부 및 지자체는 대피 명령을 내릴 때 반려동물 동반 가능 시설 정보를 함께 제공
    ‌• 비상 대피시설 설치 시 반려동물 동반 시설도 함께 설치

    하지만 개정안 3건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3년에 한 번꼴로 큰 산불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반려동물 동반 대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합니다. 부디 이번만큼은 반려동물 동반 대피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현실적인 해결 방안도 도출되길 바랍니다.

    물론 동물을 사람보다 우선시할 수는 없습니다. 반려동물이 대피소에 입소해 사람이 대피하지 못하거나, 대피소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충분히 마련하는 동시에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확충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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