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박해윤 기자]
실제 인류는 현재 세계 역학관계 재편, 지구적 기후위기 심화 등 인류 문명과 지구 생태 양면에서 위기를 맞아 대멸종 또는 대전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최민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신간 ‘한국학 코드’에서 “지구는 지금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공존이냐 공멸이냐 기로에 섰다”며 “생명 가치를 활성화하고 바람직한 생명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인류 전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 켄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정치학자로서 1984년부터 36년 6개월간 성신여대 강단에 섰지만 관심 분야를 정치학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동서고금의 사상과 철학, 과학, 종교를 넘나들며 방대한 지식을 담은 다양한 책을 펴내온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한국학 코드’는 ‘천부경: 삼일신고·참전계경’(2006), ‘한국학강의’(2022)에 이은 한국학 3부작 완결에 해당한다. 8월 29일 최 교수를 만나 ‘한국학 코드’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상고사 부재가 가져온 뿌리 없는 한국학
‘한국학’이라는 용어가 낯설다. 그런 한국학을 주제로 3부작을 낸 배경은 무엇인가.“한국학 3부작을 발표한 2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학이 무엇인지, 한국학 코드는 무엇인지 밝히기 위함이다. 단, 한국학 뿌리인 우리 상고사(삼국정립 이전 광의의 고대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학 코드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함이다. 우리가 한국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명 코드’라고 명명한 한국학 고유의 코드가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물질주의 과학 코드와 본질적으로 상통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이자 신과학 운동의 거장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21세기를 생명과학(또는 생명공학)’ 시대라고 명명했다. 상고시대 수천 년 동안 통치 엘리트 집단의 통치 코드였던 한국학 코드, 흔히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 이념으로 표상되는 그것은 한국인에게만 속하는 특수 코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 코드이며, 오늘날 통합학문의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외형적 성장과 달리 국가적·국민적·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해 생명력이 결여돼 있다. 또한 현대 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지 못한 채 낡은 전통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산 정신문화의 고유성과 우수성이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거나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모아놓았다고 해서 한국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학은 낡은 전통에 머무르는 정태적 학문이 아니다. 국제지정학적 대변동과 챗GPT-4.0 시대에 조응해 새로운 규준(norm)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새로운 계몽시대를 여는 역동적 학문이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학제 간 또는 통섭적 연구를 통해 한국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심화하며, 학문적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한국학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의 수용력을 높임으로써 명실공히 한국학이 시대적·세계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학이 직면한 딜레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장 큰 딜레마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한국 사상 및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상고사에 대한 제도권 합의의 부재로 한국학 자체가 뿌리 없는 꽃꽂이 교육, 생명력을 상실한 교육이 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유럽 중심주의)의 망령, 사회적 역사관인 반도사관(식민사관)에 함몰돼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설치된 조선사편수회는 환국·배달국·단군조선, 그리고 북부여에 이르기까지 7000년 넘는 우리 상고사를 신화라는 이유로 잘라 없애버렸다. 그렇다고 지금까지도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한국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제가 날조한 역사나 읊조리면서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문명의 파편이나 주워 담는 식의 종속적 한국학이 돼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역사 창조의 길
‘한국학 코드’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하고 있는데, 어떤 사명감을 느끼는 것인가.“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나의 학문 여정은 모두 한국학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만큼 한국학은 광대하고 심오한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학 코드에 대한 명료한 인식 없이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서는 한국학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없다. 나는 ‘한국학 코드’라는 용어를 특히 한국학을 표징하는 핵심 원리인 천·지·인 삼신일체, 즉 ‘일즉삼(一卽三)·삼즉일(三卽一)’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핵심 원리에는 서구 물질주의 과학이 초래한 우주자연과 인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약(妙藥)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비밀 코드와도 같은 이 원리는 방대한 우주설계도를 함축하고 있긴 하지만, 그 설계도는 의식이 열린 만큼 볼 수 있을 뿐이다.
한국학 고유의 생명 코드는 새로운 규준의 휴머니즘에 입각한 새로운 계몽시대를 여는 ‘마스터 알고리즘’이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국가 통치 엘리트 집단의 통치 코드였을 뿐 아니라 생명학·통섭학의 효시로, 오늘날 세계 시민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 코드’이자 ‘통합학문’의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고, 동서융합의 통합적 비전도 제시한다. ‘생명’을 문화적 유전자로 이어받은 한국학이 집단지성 계발을 통해 시대적·세계사적 소명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하늘의 때(天時)’가 되어, 상고시대 유라시아를 관통하며 우리 고유의 생명 코드를 연주하던 한민족의 리바이벌을 인류의 집단무의식은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문명 대전환기에 남과 북, 그리고 온 인류가 하나 되는 새로운 역사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데 나의 한국학 3부작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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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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