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결혼만큼 잘 어울려야 하는 술과 안주의 ‘마리아주’

와인엔 초코파이, 보드카엔 알탕, 치킨엔 맥주, 삼겹살엔 소주가 어울리는 이유

  •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19-12-30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GettyImages]

    [GettyImages]

    새 밀레니엄이라며 호들갑스럽게 시작했던 2000년대도 벌써 19년이 흘러 2019년이 저물고 있다. 돌이켜보면 최근 20여 년은 대단한 시절이었다. 개인용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이 몰고 온 정보기술(IT) 혁명은 급기야 안 되는 게 없는 스마트폰까지 탄생시켰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우리 일상을 또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IT 혁명에 비하면 술과 음식은 지극히 변화가 적다. 가장 보수적인 것이 입맛이기 때문일 수도, 먹고 마시는 것에 우리가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연말을 맞아 술자리가 잦은 요즘, 우리가 즐겨 마시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한번 짚어본다. 치킨에 맥주, 삼겹살에 소주가 언제부터 찰떡궁합을 이뤘을까. 이 조합은 정녕 맞는 것일까.

    ‘치맥’을 완성하는 것은 맥주의 탄산

    ‘치맥’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다. 치킨에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0년대 중반 처가댁, 멕시칸, 페리카나치킨 같은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맥주의 주요 안주는 일명 ‘쏘야’라고 부르는 소시지야채볶음이었다. 1980년대 독일에서 들어온 맥줏집인 호프(HOF)가 유행하면서 독일 사람처럼 맥주에 소시지를 즐긴다는 기분도 한몫했다. 1990년대 들어 ‘캔맥주에 치킨’이 야구장을 필두로 야외 활동의 핫 아이템으로 서서히 자리 잡았고, 2002 한일월드컵 거리응원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 

    치킨과 생맥주의 공통점은 번거롭지 않다는 것. 기름에 튀긴 치킨은 젓가락이나 포크 없이 손으로 먹을 수 있다. 생맥주도 술잔에 따라 나오기 때문에 술을 따라주고 그걸 받아 마시는 ‘권위’로부터 해방됐다. 굳이 주도(酒道)를 따를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마시는 것도 다른 술에 비해 수월하다. 한 손에 치킨, 다른 한 손에 생맥주 잔을 들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셈이다.

    맛 적은 소주가 삼겹살 맛 살려줘

    맥주와 치킨은 맛의 조합도 좋다. 맥주의 탄산 덕분이다. 탄산이 빠져나간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면 단맛이 확 올라온다. 이는 단맛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일시적인 마비로 단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탄산의 자극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맥주의 탄산은 치킨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면서 입안이 깔끔해지는 느낌을 준다. 햄버거나 피자가 콜라와 잘 어울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식당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생맥주 서버를 갖추지 못한 식당은 주로 소주를 팔았다. 소주가 맥주보다 훨씬 저렴하기도 했다. 1985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공장 출고가가 소주(360㎖)는 247원, 맥주(500㎖)는 516원이었다. 맥주 값이 소주 값의 2배에 가까웠다. 서민이 즐겨 찾는 삼겹살집에서 소주가 주력 주종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소주와 삼겹살의 궁합도 썩 괜찮다. 삼겹살집에 가면 종업원이 남은 소주로 테이블을 닦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알코올이 기름을 분리시키기 때문인데, 이는 입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돼지기름으로 가득한 입안을 소주의 알코올이 헹궈준다. 청주나 와인은 자체의 맛을 갖고 있어 삼겹살 맛을 방해한다. 반면, 맛이 적은 소주는 삼겹살 맛을 더 살려준다. 

    다만 치킨에 맥주, 삼겹살에 소주는 과식이나 과음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 몸속 간은 알코올과 지방을 동시에 분해하는데, 흡수된 알코올 양이 너무 많으면 지방을 그대로 남겨 지방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알코올 중독자 중에 지방간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위스키는 국물요리 피해야

    [GettyImages]

    [GettyImages]

    와인 역시 육류와 궁합이 좋지만, 치즈가 더 찰떡궁합이다. 치즈가 위벽을 코팅해 알코올 흡수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위에서 흡수되면 뇌의 중추신경계로 빠르게 이동해 금세 취기가 올라온다. 그러나 위에서 소장으로 보내진 알코올은 천천히 취하게 한다. 그래서 와인을 빚는 유럽 수도원들은 보통 치즈도 함께 생산한다. 

    와인은 초콜릿과도 잘 어울린다. 초콜릿이 뇌에 영양소를 전해 숙취 해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맛의 조합도 훌륭하다. 특히 타닌감이 풍부한 레드 와인을 마시면 입안에 떫은맛이 가득할 때가 있는데, 이때 초콜릿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초코파이’ ‘오예스’ ‘몽쉘’ 같은 초콜릿 파이를 와인 안주로 추천한다.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콜릿과 마시멜로의 도톰한 식감이 와인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폴란드 프리미엄 보드카 ‘스노우 레오파드’. [사진 제공 · 스노우 레오파드]

    폴란드 프리미엄 보드카 ‘스노우 레오파드’. [사진 제공 · 스노우 레오파드]

    ‘북유럽의 소주’라 할 보드카는 40도 이상의 높은 알코올 도수와 무색·무취·무미라는 심플한 맛을 가진 술이다. 알코올 이외에는 워낙 특성이 없어 칵테일의 베이스로 즐겨 사용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증류 기법 및 횟수, 원료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진 보드카가 등장하면서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독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는 국물요리다. 알코올이 이뇨작용을 일으켜 수분을 많이 배출시키고 이것이 숙취로 이어지는데, 국물요리를 안주로 삼으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요리에는 국물요리가 드물다. 한국의 국물요리로 대체하면 되는데, 이왕이면 수분과 단백질 비중이 크면서 지방이 적은 것이 좋겠다. 단백질은 간의 회복을 도와 숙취를 줄여준다. 

    겨울에는 알탕과 연포탕이 제격이다. 주로 동태 알로 끓이는 알탕은 알 자체의 담백함과 국물의 뜨끈하고 매운맛이 보드카의 차가운 성질을 잡아준다. 낙지를 넣어 끓이는 연포탕 역시 맑고 시원한 국물이 보드카의 진한 맛을 중화해준다. 낙지의 타우린 성분도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같은 독주라도 위스키는 국물요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위스키 자체에 초콜릿, 아몬드, 헤이즐넛 등 다양한 향이 있는데, 국물이 이러한 향을 없애기 때문이다. 위스키는 되도록 적은 양을 물, 견과류, 과일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다. 


    [GettyImages]

    [GettyImages]

    막걸리가 파전과 어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의 조화도 훌륭하지만, 막걸리가 파전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막걸리 속 누룩이 파전의 전분을 분해해준다.

    오메기술은 방어회, 해창 막걸리는 떡갈비

    [박해윤 기자, 제주샘영농조합법인]

    [박해윤 기자, 제주샘영농조합법인]

    결혼을 뜻하는 단어 ‘마리아주(marriage)’는 프랑스어로, 술과 음식의 조합을 의미한다. 술과 음식이 남녀의 결혼만큼 잘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술도 그 가치를 잃고, 음식 역시 맛이 없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마리아주는 비단 서양의 술과 음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술과 음식의 마리아주가 존재한다. 제주 오메기술과 방어회,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와 염소불고기, 전남 해남 해창 막걸리와 떡갈비, 충남 서천 소곡주와 아귀찜은 훌륭한 마리아주의 예다. 훌륭한 술과 음식의 궁합이 연말의 즐거움을 더해주길 기대해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