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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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초콜릿은 수만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는 행복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신기루 같은 보석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02-11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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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 [사진 제공·김민경]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 [사진 제공·김민경]

    1989년 오리온제과의 초콜릿 광고에 장궈룽(장국영)이 등장했다. ‘사랑을 전할 땐 투유초콜릿’이라는 광고 문구와 애절한 장궈룽의 모습을 함께 담았다. 한 해 앞서 롯데제과는 배우 이미연을 가나초콜릿 광고에 등장시켰다. 닮고 싶은 예쁜 언니였던 이미연이 남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는 영상은 금세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초콜릿은 순식간에 풋풋한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로 자리 잡았고,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대신 표현하는 매개체 구실까지 두루 했다. 초콜릿은 달콤한 호감과 부드러운 선의의 상징이 됐다.

    여러 형태로 가공하기 좋은 초콜릿

    부드럽게 또는 걸쭉하게 녹여 먹는 초콜릿. [사진 제공·김민경]

    부드럽게 또는 걸쭉하게 녹여 먹는 초콜릿. [사진 제공·김민경]

    당시에는 지금처럼 초콜릿 선택의 폭이 넓지 못했다. 초코파이, 빼빼로 같은 초콜릿 스낵이 있었지만 초콜릿 자체의 맛은 물론, 형태와 식감도 다양하지 않았다. 광고 경쟁을 펼친 양대 제과회사의 초콜릿은 모두 밀크초콜릿이었고, 똑똑 부러뜨려 먹는 판 모양이었다. 요즘에는 끝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초콜릿의 변신이 다양해졌다. 

    초콜릿 원료는 카카오 열매다. 1년에 두 번 카카오 열매를 수확해 쪼개면 그 안에 카카오 빈이 들어 있다. 카카오 빈은 펄프 같은 과육이 감싸고 있는데 그대로 발효시킨다. 하얗던 카카오 빈이 발효돼 땅콩버터색으로 변하면 말리기 시작한다. 수분이 완전히 없어지면 볶는다. 커피 빈을 볶는 과정에서 맛을 조율하듯, 카카오 빈도 볶기에 따라 향과 색이 달라진다. 카카오 껍질을 벗기면 카카오 닙스가 남는데 이것을 곱게 간다. 이때 열이 발생하고 카카오 버터가 녹으면서 걸쭉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먹는 초콜릿 재료로 카카오 매스 혹은 카카오 리커라 한다. 카카오 버터만 따로 추출하면 화이트 초콜릿의 재료가 된다. 이 재료들에 설탕, 우유, 버터 등을 넣어 다양한 초콜릿을 만든다. 

    초콜릿은 사람 체온보다 3~5도 낮은 온도에서 녹는다.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 먹기 딱 좋을 뿐 아니라, 실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하기가 수월하다. 다른 식재료 겉에 말끔하게 씌워 모양을 내는 코팅용 초콜릿, 화려한 형태와 기술을 보여주는 초콜릿 공예, 여러 재료를 넣고 예쁜 타일처럼 만드는 바크 초콜릿, 몰드에 넣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만든 뒤 액체부터 고체까지 뭐든 넣어 맛을 내는 프랄린 혹은 봉봉, 겉은 단단하고 속은 크림처럼 녹아 있는 두 가지 질감의 초콜릿, 앙금처럼 말랑하고 쫀득한 생초콜릿이 모두 실온에서 제 모양을 유지하는 초콜릿이다. 

    초콜릿은 음료처럼 마실 수도 있고, 걸쭉하게 데워 갓 튀긴 추로스를 찍어 먹거나 과일, 마시멜로, 치즈 등을 찍어 먹는 퐁듀로 즐기기도 한다. 잼이나 크림치즈처럼 스프레드 질감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며, 음식 위에 글씨를 쓰거나 장식을 하는 시럽 형태, 그리고 포슬포슬 먹음직스러운 분말로도 활용된다. 게다가 초콜릿은 색상과 광택까지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표현될 수 있다. 



    변신의 귀재인 초콜릿은 혼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다양한 식재료와 조합도 훌륭하다. 아몬드, 헤이즐넛, 땅콩,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와는 오순도순 어울려 씹는 재미, 고소한 향, 풍부하고 기름진 맛을 선사한다. 오렌지, 레몬, 살구, 블루베리, 라즈베리, 체리, 딸기 등과 만나면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입안에서 활짝 피어난 다음 부드러운 단맛으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말린 과일이나 과일 껍질을 곁들이면 경쾌한 쫄깃함, 매혹적인 향과 함께 씹을수록 우아한 풍미가 느껴진다. 생강, 계피, 바닐라, 민트, 펜넬, 바질, 로즈메리 같은 허브나 향신료와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독특한 맛으로 모습을 바꾼다. 

    위스키, 코냑, 에스프레소 등 농후한 음료와 어우러지면 촉촉하고도 강렬하게 스며드는 액체의 맛을 오롯이 음미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베이컨, 소금, 매운 고추, 치즈, 동물 피, 식용꽃 같은 의외의 식재료와도 훌륭한 맛 궁합을 이룬다. 소금이 가미된 솔티드 초콜릿, 매운 고추를 넣은 초콜릿 케이크, 돼지 피를 넣은 초콜릿 푸딩 등은 실제로 오랫동안 외국에서 먹어온 음식이다.

    122세 장수 프랑스인 규칙적으로 먹어

    판 형태의 초콜릿. (왼쪽) 카카오 열매. [사진 제공·김민경]

    판 형태의 초콜릿. (왼쪽) 카카오 열매. [사진 제공·김민경]

    초콜릿은 종종 과도한 당분 섭취나 비만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초콜릿을 만들 때 설탕, 우유, 버터 등을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 초콜릿 종류도 나뉜다. 

    단맛을 내는 재료 가운데 설탕, 포화지방인 카카오 버터가 적게 든 것을 선택하면 건강 염려는 접어둬도 좋다. 카카오는 피로, 식욕 부진, 빈혈, 성욕 감퇴, 고열 등에 효과가 있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122세의 장수 기록을 가진 프랑스인 잔 칼망(1875~1997)은 일주일 동안 초콜릿 1kg씩을 규칙적으로 먹었다고 한다. 

    잘 가공된 초콜릿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향을 맡으면 식욕에 시동이 걸린다. 입에 넣고 와작 한번 씹거나 천천히 녹여 오래 음미한다. 먹는 중에도 코로 번지는 향과 뜨거운 목 넘김에 집중해본다. 이토록 오감이 행복해지는 작은 보석을 누구와 나눠 먹고 싶은지 떠올리는 일조차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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