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시네똑똑

나쁜 놈 잡는 이상한 놈

이일하 감독의 ‘카운터스’

  •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8-08-21 10: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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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인디스토리]

    [사진 제공 · 인디스토리]

    표현의 자유를 들어 내 맘대로 아무 말이나 외쳐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주의 국가이니 그가 하는 말을 제지할 수단은 없다. 그가 거리로 나와 외치는 말은 “조선인을 죽이자” “한국 여자를 보면 돌을 던지거나 성폭행을 해도 된다” 등 글로 옮기기에도 거부감이 드는 혐오 발언이다. 일장기와 전범기를 흔들며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그들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라는 기이한 모임의 회원이다. 재특회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일본 도쿄 시내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에서 활발하게 반한국인 시위대를 조직했다. 한 해에만 300회 이상, 총 1000회가 넘는 시위를 이어갔으니 거의 매일 시위를 했다는 말이다.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는 그 시위의 모든 것이다.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조선인을 없애는 일은 해충 구제와 같다”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일본 내 코리아타운 대학살을 실행하자” 같은 구호가 도쿄 시내에 버젓이 울려 퍼진다. 경찰은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이 시위를 막지 못한다. 나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없으니 그걸 제지할 수도 없는 노릇. 그리고 걸러지지 않은 혐오 발언이 귀에 들리니 들을 수밖에 없다. 일본인 아버지와 재일조선인 2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3세 청년은 울먹거린다. 가슴을 후벼파는 구호들을 들으며 엄마가 울고 있으니 자신도 따라 울지만, 거기에 맞서 똑같이 욕을 해줄 수는 없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차별하지 마라” “함께 살아요” 등 수세에 몰린 사람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는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 거친 사내가 나타났다. “진짜 바퀴벌레는 너희다”라고 외치는 사내. 과감하게 미러링 기법으로 재특회의 발언을 맞받아치는 그는 누구인가.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는 민족주의와 배외주의에 물든 혐한 시위를 막고자 거리로 나온 일본 행동주의자 단체 ‘카운터스’의 활약을 그린다.

    재특회 vs 카운터스

    [사진 제공 · 인디스토리]

    [사진 제공 · 인디스토리]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으로 가 15여 년을 살아온 이일하 감독은 2014년 ‘울보 권투부’라는 작품으로 재일조선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기록했다. 10대 아이들이 권투를 통해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차별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감독은 이 작품을 찍던 당시 신기한 사람과 단체를 만났고 곧바로 다음 작품에 돌입했다. ‘카운터스’는 첨예한 쟁점이 된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가운데, 미스터리한 주인공의 활약을 지켜보며 그 행동의 이유를 알아나가는 재미가 있을뿐더러 거침없는 액션 장면으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역동적 작품이다. 

    ‘우리 학교’(2006), ‘60만 번의 트라이’(2013), ‘그라운드의 이방인’(2013) 등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차별과 치욕을 견뎌내면서 희망을 갖고 자이니치(在日·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재일교포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다. 하지만 ‘카운터스’는 그것과는 다른 곳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앵글을 재일한국인에 맞추지 않고 자이니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목소리를 드높인 어느 일본인에게 향하고 있다. 



    카운터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일본 시민단체로, 혐한 시위 반대 서명 운동에서부터 재특회와 물리적 충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혐한 반대 활동을 한다. 여러 방식 가운데 육체적으로 재특회와 맞서는 무력 제압 부대 ‘오토코구미(男組)’는 카운터스 산하 조직이다. 오토코구미 대장인 건장한 남자 다카하시는 어느 날 헤이트 스피치를 목격하고 ‘혐오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카운터스 운동에 동참했다. 용 문신을 한 그는 야쿠자였으나 혐오 시위를 목격한 이후 야쿠자를 그만두고 반혐오 운동에 열정적으로 나섰다.

    사쿠라이 vs 다카하시

    재특회 창설자이자 극우 인터넷 유명 논객인 사쿠라이와 그에 맞서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혐오 시위대를 향해 더 크고 강한 구호를 외치는 다카하시의 대결은 극적 긴장감을 안긴다. 전범기 스펙터클이 주는 오싹함과 이에 맞서 다양한 액션을 구사하는 카운터스의 맨몸 활약은 액션영화를 방불케 한다. 뻔뻔한 사쿠라이와 속 시원한 다카하시의 충돌은 혈압 상승과 카타르시스 사이를 오가며 극적 재미를 배가한다. 

    이 사내, 다카하시가 궁금하다. 다카하시는 과거 많은 사람을 괴롭혔던 것을 참회하며 자신도 한때 재특회 혐오시위에 가담했던 우익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다 신사참배는 찬성할지언정,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 카운터스 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눈에 띄는 외모, 거친 말과 돌출적인 행동의 이면에 자리한 따뜻한 마음은 정의로운 행동으로 이어진다. 카운터스 얼굴이 된 다카하시에게 감명받은 작가, 음악가, 배달부, 건축가, 정치인, 마트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반혐한 시위에 동참한다.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은데, 2016년 3·1절 특집 MBC 다큐스페셜 ‘일본의 또 다른 얼굴, 카운터스 행동대’로 소개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만들어진 영화는 공공장소에서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혐오표현금지법’ 시행 이후 완성됐다. 영화에는 카운터스가 혐한 시위와 맞서고, 이를 완전히 뿌리 뽑고자 민주당 참의원을 통해 법안 만들기에 돌입해 승리한 과정이 담겼다. 

    재특회라는 용어가 최근 잠잠해진 것도 어쩌면 다카하시와 친구들로 구성된 카운터스의 열정적인 활약 덕분일 것이다. 다카하시는 반혐한 시위 이후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각종 차별에 맞서는 운동과 연대하는 활동가로 성장해나간다. 몸으로 직접 맞서는 것을 넘어 폭력적 행동으로 혐오집단을 위협하던 그는 철창신세를 지기도 한다. 방송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거칠고 생생한 현장이 영화에는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현재 모습은 또 하나의 반전이다. 영화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진지한 소재임에도 펑키한 감각으로 풀어낸 연출력 덕에 영화는 재미와 유쾌함으로 다가온다. 입체적 캐릭터가 가지는 힘, 이야기에 속도감을 부여한 경쾌한 편집과 발랄한 음악, 그리고 적절하게 구사되는 유머러스한 컴퓨터그래픽(CG) 등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그래서 시위도 명랑하고 유쾌하게, 슬픔도 웃음과 패러디로 승화해 다가선다. 바닥에서 몸으로 느끼며 깨달은 거리의 활동가 다카하시의 시원한 목소리와 낙관적 웃음이 우리 안의 혐오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아끼고 나누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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