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지도자로서 10년간 통치할 시진핑 총서기의 지상목표는‘중화 부흥’을 완성하는 것이다. 2002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7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절반으로 따라붙었고, 2020년쯤이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으로, 그 규모가 1조1536억 달러나 된다. 중국 외환보유액은 3조2360억 달러로 세계 최대다.
중국에선 1842년(아편전쟁에서 패한 후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1949년(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굴욕의 세기’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시 총서기의 집권 후반기인 2019년과 2021년은 중국 현대사의 전환점이던 5·4운동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다. 중국은 2021년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세계 일등 국가가 된다는 청사진을 세워놓았다. 이 때문에 시 총서기는 국력 상승과 민족 자긍심 고양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외교·안보 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티베트와 대만 문제, 남중국해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 등 자국의 핵심 이익이나 주권 문제가 걸린 현안에선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집권한 지난 10년간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칼집에 칼날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르며 기다린다)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개입해 뜻을 관철한다) 전략으로 방향을 바꿨다.
‘중화 부흥’ 완성의 지도자
특히 중국은 인민해방군 현대화 등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 강화를 적극 추진해왔다. 올 9월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호가 정식 취역했고, 최신예 스텔스기인 젠(殲)-20의 시험 비행, ‘항모 킬러’라고 부르는 대함 미사일 둥펑(東風·DF)-21D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최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DF-41까지 개발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시 총서기가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발전하고 세계평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화평굴기를 강조했지만, 이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시 총서기는 부국강병이란 기조 하에 유소작위 전략을 정세에 맞게 적절히 배합하면서 강약을 조절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시 총서기의 외교·안보 전략은 중국인의 민심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퓨 리서치센터 여론조사 결과(10월 16일)에 따르면, 중국 국민 가운데 미국과의 관계가 협력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10년 68%에서 39%로 확 줄었다. 중국 국민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2010년 37%에서 48%로 늘어났다.
중국에선 경제성장기에 태어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민족주의 교육을 받은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가 여론 주도층으로 나서면서 미국을 전략적 협력국에서 경쟁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시 총서기는 높아진 중국 국력과 자부심을 국제사회에 투영하라는 내부 압력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시 총서기의 처지에서 볼 때 취임 초기 권력을 공고히 하려면 중화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시대에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중국 군부의 영향력 확대다. 시 총서기는 후 주석과 달리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시 부주석은 1979년 겅뱌오(耿飇) 중앙군사위 비서장의 비서로 들어가 3년간 군생활을 경험했다. 푸젠성과 저장성 등에서 근무할 때도 현지 주둔군의 정치위원을 겸임하면서 군 인사들과 가까이 지냈다.
진찬룽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시진핑은 군부에서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라면서 “시진핑 시대 중국은 미국과 국제적 책임을 나누는 동시에, 미국과 권력을 나눠 가지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도 시진핑 시대의 양국관계에서 중국 군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 군부는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중국에선 일반적인 외교문제는 외교부가 나서서 협의하고 처리하지만, 안보문제 등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일종의 태스크포스인 ‘영도소조(領導小組)’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일본과의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도 영도소조에서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데, 여기에는 당 중앙판공실(대통령비서실에 해당)과 국가해양국·어정국, 외교부, 상무부와 함께 군부 대표가 포함돼 있다.
미국 군사평론가 윌리 램은 “영도소조에서 안보나 영토문제와 관련된 대외정책은 여러 부처 의견을 들어 사실상 군부가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군사평론가 후리는 “2000년대 이후 중국 군부는 안보 전문성을 앞세워 대외 분야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 힘이 당과 행정부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군부의 젊은 장성들은 중화 민족주의와 자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당당히 자기 목소리 키울 것
10월 10일 동중국해 해상합동훈련에 나선 중국 해군 동해함대 소속 호위함이 센카쿠 근해에서 고속 기동하는 모습.
새로운 대국관계란 앞으로 중국과 미국이 대등한 자격으로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위한 게임 법칙을 만들자는 것이다. 새로운 대국관계가 미국의 포위 전략 같은 공세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중국의 변화된 위상이 외교·안보 전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제2 경제대국에 올라선 만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등한 파트너로서 국제사회에 필요한 게임 법칙을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속내는 일본과의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시 총서기는 9월 인민대회당에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부 장관과 만나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국적 관점에서 각별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이 미국과 정면 대결할 개연성은 낮다. 중국 군사력이 미국에 도전할 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대결 위주로 가고 있어 양국관계는 더 악화될 위험성이 높다. 다만 경제 분야에선 상호의존도가 높은 만큼 양국은 ‘코피티션’(Cooperation과 Competition의 합성어·협력과 경쟁)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시 총서기가 “우리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고 선언했듯이, 중국의 대국굴기(대국으로 일어서다) 전략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