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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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검증 시스템’ 중시하는 삼성 구원투수 전영현

LG반도체 출신 설계 전문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 고성장 산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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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4-06-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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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해외 한 삼성전자 연구소의 SRAM (Static RAM·정적 램) 개발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성과도 안 나오고, 연구원들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사장으로부터 해당 연구소 실태를 낱낱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수석연구원이던 내가 사태를 파악해 직접 보고했다. 알고 보니 전영현 당시 부사장 산하에 있던 연구소였는데, 이례적 직보에 말들이 많았다. 전영현 당시 부사장은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회사에 필요한 일을 했다’며 나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뉴스1]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뉴스1]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Flash 개발실 상무 출신인 개혁신당 양향자 전 의원은 최근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부문장에 임명된 전영현 부회장과 일화를 이렇게 전했다. 선이 굵은 기술통으로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전 부회장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양 전 의원은 삼성전자 재직 시절 전 부회장이 이끄는 DRAM/Flash 개발실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6월 4일 전화 통화에서 기자가 전 부회장의 DS부문장 발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양 전 의원은 “주변 선후배 반도체 전문가 사이에서 ‘전 부회장이 위기를 타개할 최적임자’라는 얘기가 들려온다”며 “전 부회장은 위기의 전쟁터에서 삼성전자를 승리로 이끌 장수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전쟁 중에는 장수를 안 바꾼다고 하지만, 지금 삼성전자가 처한 전쟁은 그렇게 노멀(normal)한 것이 아니다. 전 부회장의 DS부문장 발탁이라는 원 포인트 인사에서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위기 타개할 적임자”

    삼성전자가 5월 21일 DS부문 사령탑으로 전 부회장을 전격 발탁한 것은 위기감에서 비롯된 쇄신 인사라는 평이다. 지난해 반도체사업에서 1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데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부회장은 대표적인 메모리 전문가로 꼽힌다. 관련 요직을 두루 거치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확보하고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삼성전자 DRAM 사업의 경쟁력을 키웠고, 그 후 Flash 분야로 옮겨 삼성전자 위상을 세계적 반열에 올렸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이 과정에서 전 부회장을 콕 짚은 원 포인트 인사도 여러 차례 있었다는 후문이다.



    전 부회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KAIST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1991년 LG반도체에 입사해 반도체 산업 일선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DRAM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팀장으로서 LG반도체의 DRAM 개발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 부회장이 ‘삼성맨’이 된 것은 2000년 메모리사업부로 이직하면서다. 1999년 LG반도체가 이른바 ‘반도체 빅딜’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인수되면서 혼란에 빠지자 삼성전자가 전 부회장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스카우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하들의 검증 안 된 기술 쇼업(show up) 싫어해”

    삼성전자 메모리사업이 급격히 성장한 2000~2010년대 전 부회장도 승승장구했다. 전 부회장은 2002년 DRAM 5팀장(상무), 2006년 DRAM 설계팀장(전무), 2009년 DRAM 개발실장(부사장) 등 관련 사업을 주도하며 승진 가도를 달렸고, 2010년에는 Flash 개발실장(부사장)을 지냈다. 2012년 메모리사업부의 핵심 요직인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을 거쳐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으로서 사장 승진했다. 당시 전 부회장의 사장 승진을 놓고 외부에선 “LG 출신이라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그의 실력과 평판을 익히 아는 내부 인사들은 “예상했던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맨’으로 정점을 찍은 전 부회장은 2017년 삼성SDI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로서 배터리 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다.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 삼성SDI 이사회 의장,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아온 그가 위기 속 DS부문 사령탑으로 복귀한 것이다.

    전 부회장의 업무 스타일과 리더십에 대해선 “실무 중심형 인물로 군더더기 없는 업무 스타일을 선호한다” “부하 직원들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쇼업(show up)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평이 나온다. 이에 대한 양 전 의원의 설명이다.

    “반도체는 어느 분야보다 기술적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서 생기는 오류를 잡기 위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전 부회장은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을 중시한다.”

    DS부문장으로서 전 부회장 앞에는 녹록지 않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급선무는 인공지능(AI) 산업과 함께 각광받는 HBM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DS부문 직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의 대두 등 노사관계도 풀어야 할 과제다. 취임 직후 전 부회장은 그간 다소 퇴색된 DS부문의 반도체 설계 능력 등 기술 혁신 역량과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간 삼성의 성공 비결로 꼽히던 치열한 혁신 의지와 비용 절감 노력이 옅어진 점에 대해 전 부회장이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기술통’으로서 현장 문제점을 파악한 전 부회장은 “반도체 설계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 간 ‘님’ ‘프로’ 같은 호칭을 경영진 회의에선 긴장감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바꾸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5월 30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취임사에서 전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 사업이 과거와 비교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절감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나를 비롯한 DS 경영진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최고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다시 힘차게 뛰어보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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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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