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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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장기하, ‘글로컬리티’ DNA

20C 혁신가 vs 21C 혁신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10-27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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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와 장기하, ‘글로컬리티’ DNA

    10월 18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선 가수 서태지.

    서태지의 새 앨범 ‘Quiet Night’, 그리고 컴백 전후 그의 행보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유를 내세운 ‘소격동’부터 파격적이었다. 이전에 서태지가 자신의 노래를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한 경우는 원미연의 3집에 담겨 있던 ‘그대 내 곁으로’밖에 없었다. 자신의 앨범에서는 그 흔한 피처링 보컬조차 기용한 적 없다. 그런 서태지가 피처링 성공률 100%인 아이유의 목소리로 신곡을 발표했다.

    서태지를 상징하는 ‘신비주의’도 깨졌다. 앨범 발매 전 유재석이 진행하는 KBS 2TV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더니, 발표 후엔 손석희의 ‘JTBC 뉴스룸’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심지어 기자간담회까지 가졌다. 솔로로 전환한 이래 가장 많은 노출이다.

    그동안 서태지는 하나의 섬과 같았다. 언론 노출은 물론이거니와 음악계, 심지어 문화계 그 누구와도 공개적으로 교류한 적이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서태지가 일관되게 지켜온 태도였다. 스스로 만든 제국 안에서, 외교 없이 홀로 선 존재였달까.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유아독존 ‘신비주의’ 깨진 서태지

    먼저, 말 그대로 이슈의 블랙홀이 됐던 이지아와의 이혼. 이 사건은 팬들을 그야말로 충격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1992년 데뷔 이래 열애설조차 없던 서태지가 이혼남이었다니. 강고하기로 정평 난 서태지 팬덤조차 흔들리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뒤이은 이은성과의 결혼.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의 신비주의는 부서졌다. 오직 음악만 아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Moai’ 이전의 피터팬 서태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모든 의혹과 실망이 사라지지 않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가 예능과 언론에 등장한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다음, 이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아이돌이 장악한 음악시장과 환경. 21세기 들어 급변한 음악시장은 아티스트가 설 자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기획사들은 도전하는 뮤지션 대신 스타가 되고 싶은 아이돌 지망생에게 모든 것을 몰아줬다.

    2000년대 중반 빅뱅과 원더걸스,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아이돌은 10대 문화상품에서 전 국민적 기호품이 됐고, 아이돌과 케이팝(K-pop)이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2010년대 이후에는 아이돌에게 관심 없던 기성 언론이나 기업조차 그들을 한국 대중음악의 모든 것인 양 다루기 시작했다. 서태지를 전혀 모르는 세대가 음악시장의 중심 소비자 위치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H.O.T.는 알아도 서태지는 모르는 세대. 2008년 한 이동통신 CF에서 그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심은경이 서태지에게 던졌던 “그런데 아저씨 누구세요?”라는 말이 더는 농담이 아닌 시대다.

    한마디로 자연인 정현철과 음악인 서태지가 처한 상황들이 ‘Quiet Night’와 함께 그가 일반적인 홍보, 즉 대중친화적 행보를 하게 된 동인이었던 거다. 이 의외의 과정을 통해 공개된 ‘Quiet Night’는 ‘역시 서태지’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좋은 의미와 아쉬운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사운드는 비슷한 장르의 해외 앨범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해외 최신 트렌드를 소화하며 자신의 음악으로 만드는 능력 또한 예의 행보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이는 서태지가 처한 딜레마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데뷔 후 20년, 그는 늘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긴 시간과 위치를 감안한다면 서태지에겐 ‘자기 음악’이 없었다. 댄스 뮤직, 테크노, 힙합, 얼터너티브 록, 뉴메탈, 이모코어, 토이트로니카, 그리고 신스팝까지, 서태지는 언제나 서구 최신 장르를 수입해 한국 대중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서태지 자신만의 음악은 제시한 적이 없다. 장르에 자신을 맞추는 데는 독보적이었지만 정작 어떤 장르 혹은 스타일을 독자적으로 구축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서태지의 지위가 지금에 비할 바 없이 압도적이던 1990년대에는 분명 그것만으로도 혁신이자 혁명이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전과 더불어 어제 미국 시카고 클럽에서 첫 공연을 연 팀의 영상을 오늘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시대엔 더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부터 서태지의 음악적 파급력이 예전 같지 않게 된 원인일 것이다. 그의 음악이 하나의 ‘레퍼런스’는 될지언정 문화적 혁신의 동인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다.

    음악계 관계자들은 서태지가 새 앨범을 낸다면 신스팝과 일렉트로니카가 주가 될 거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최근 몇 년간 서구 음악계 동향이 그랬으니까. ‘Quiet Night’로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훌륭한 음악적 완성도에도 여전히 서태지에게 아쉬운 점이다.

    트렌드 신경 쓰지 않는 장기하

    서태지와 장기하, ‘글로컬리티’ DNA

    3년 만에 3집 ‘사람의 마음’(아래)을 낸 장기하와 얼굴들.

    이 아쉬움은 서태지와 비슷한 시기 3집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온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비돼 더욱 커진다. ‘싸구려 커피’로 음악팬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기성세대까지 사로잡은 장기하의 별명 중 하나는 ‘인디의 서태지’였다. 단순한 인기 측면보다 그의 상징성을 대중의 무의식이 포착했기 때문이다.

    장기하는 21세기 들어 자기 음악으로 인기를 넘어 신드롬을 만들어낸 유일한 인물이다. 포크록 성향의 1집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은 록으로 옮겨갔다. 그의 방법론은 상당히 정통적이다. 하드록과 사이키델릭, 강력한 퍼즈톤(음을 찌그러뜨리는 효과)과 복고적 신시사이저 등 록의 클래식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사람의 마음’은 한층 더 그렇다. 록에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1960~70년대 사운드가 2014년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어떤 장르에도, 어떤 스타일에도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거꾸로 자신들의 음악을 위해 그 방법론들을 취할 뿐이다. 장기하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말도 랩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면적 멜로디 구조를 가지지도 않은 노래들이 있다. 외국어가 전혀 쓰이지 않는 가사가 있다. 각자 영역에서 각자 스타일을 유지하는 밴드 사운드가 있다. 트렌드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뚝심이 있다. 그게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이다. 장르에 자신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장르를 맞추는 것이야말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점이다. 이 점이 바로 서태지와 장기하의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튜브를 석권하던 무렵 함께 유행을 탔던 개념이 있다. 글로컬(global+local). 가장 세계적이되 가장 지역적일 것, 그리고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을 것. 인터넷으로 정보유통의 국경이 사라진 지금 성공한 문화 콘텐츠의 필수요소라고들 했다. 지금 ‘글로컬리티’를 갖고 있는 자는 서태지일까 장기하일까. 20세기 혁신가와 21세기 혁신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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