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을 맡은 전지현 (왼쪽)과 김수현. 김수현은 최근 중국 위성채널 예능 프로그램 ‘쭈이창다나오(最强大腦)’에 출연하면서 출연료만으로 300만 위안(약 5억217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월 중국 ‘추톈진바오’와 ‘런민왕’ 등은 한국 드라마의 매력으로 감정적 카타르시스와 창의성을 꼽았다. 추톈진바오는 “한국 드라마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외모의 남녀주인공이 등장한다”며 “까오푸슈아이(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로 우리나라 ‘엄친아’에 해당)와 바이푸메이(白富美·피부가 백옥 같고 집안 좋고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는 신조어로 ‘엄친딸’에 해당) 등 흠 잡을 데 없는 남녀주인공이 완벽한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대중은 혹독한 현실 속 절망감을 잊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드라마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 여성이 한국 드라마에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창의력으로 대중 욕망 충족
런민왕은 “한국 드라마엔 허점도 많지만, 한국 드라마가 가진 창의성만은 인정해야 한다”며 “가족극이나 멜로극 모두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들이 지나치게 판타지적이라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가상의 이야기는 본래 대중 욕망을 반영하고 충족해준다. 왕자와의 로맨스나 진실한 벗과의 우정, 정의의 승리, 필사적인 노력 끝에 비로소 쟁취하게 되는 성공 같은 이야기가 대중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한국 드라마는 이런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잘 만들어 대중이 매료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사회를 점령한 ‘별그대’ 열풍에 중국 매체들은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인기 배경을 분석 보도하면서 ‘과연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를 찾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다. 문화계 전반에서 일종의 위기의식마저 감지된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최고지도부 권력 서열 6위 왕치산(王岐山) 서기가 “나도 ‘별그대’를 본다”고 말한 데서 시작했다. 왕 서기는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한참 앞서 가고 있다”고 말해 중국 문화계 관리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왕 서기가 ‘별그대’를 언급한 것을 계기로, 이 드라마는 젊은 세대를 넘어 기성세대의 관심까지 받게 됐다.
중국 영화제작자협회 부주석이자 배우이기도 한 시메이쥐안(奚美娟) 역시 한국 드라마의 높은 인기를 언급하며 “중국 전통문화가 지난 5000년 동안 가로막힌 적이 없었는데, (한국 드라마만큼) 힘 있는 작품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라며 탄식했다.
3월 중순 중국 창춘에서 열린 학계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성균중국연구소 이희옥 소장은 “그곳에서 주요 화제 역시 ‘별그대’였다”고 밝히며 “중국이 지난해 문화대국론을 얘기하며 문화 콘텐츠 사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도리어 ‘별그대’를 비롯한 한국 드라마 인기가 더욱 거세어졌으니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막대한 자금투자가 아닌, 발상의 전환이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과 천송이(전지현 분)가 키스를 나눈 경기 가평 쁘띠프랑스는 최근 한류 관광명소가 됐다(왼쪽). 도민준이 장영목 변호사(김창완 분)와 장기를 두는 장면을 촬영한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에도 최근 중국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소프트파워(정보과학,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의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 대중문화 종사자 사이에서 한류에 의해 위기의식이 커지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할 때 중국 정부는 한국 드라마 수입을 제한하는 법규를 만들었다. 또 중국 방송사들이 골든타임 때 외국 드라마 방영 비율을 조정하는 내규를 만든 이유도 한국 드라마를 겨냥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니 중국 대중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지금 우리는 한류 열풍을 지속하고 확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희옥 소장은 “문화는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흘러야 한다. 특히 보수주의 성향이 짙은 중국에 공격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지속가능한 방법이라 할 수 없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별그대’ 등 한류 콘텐츠의 인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격적이면서도 일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데, 그 후유증으로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번질 개연성도 높다”며 “과거 중국 내에서 위세를 떨친 한류가 한때 주춤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중국 현지에서 일부 한류 스타가 팬미팅 등의 행사를 열면서 고가 행사비를 요구한 데 대한 지적이 나온다. “현지 팬을 위한 행사라 할지라도 국가와 국가 간 교류인데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면 오늘의 영광이 길게 갈 수 없을 것”이라는 한 한류 관계자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 관계자는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현재 인기에만 만족할 수 없다”며 “지속가능한 교류 방법은 결국 상생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