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구매자가 가격을 정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백지수표 프로젝트’ 컴퓨터 화면 캡처.
이러한 시도를 세계 최초로 감행한 뮤지션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다. 2007년 7번째 앨범 ‘인 레인보우스(In Rainbows)’의 디지털 음원을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였다. 돈은 원하는 만큼 내고 새 음반의 음원을 다운받으라는 선언이었다. 새 음원을 공짜로도 들을 수 있다는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MP3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던 음악산업계의 인식을 뒤흔드는 것이었으므로. 더불어 음악 수용 방식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하는 거대 음반사를 향한 경고 메시지였다. 혹은 공급자가 가격을 정한다는 당연한 개념을 송두리째 뒤집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라디오헤드는 이후 어떤 프로모션도 하지 않았지만 이벤트 기간 내내 천문학적 액수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도 할 수 없는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공식 홈페이지는 접속이 폭주했다. 해가 바뀌고 결과가 공개됐다. 홈페이지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총 300만 달러. 라디오헤드 측은 기존 음원 수익을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전체 사용자의 40%만 유료결제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총 다운로드 횟수 3666회. 표본집단으로 삼기엔 그 수가 적다. 이는 출범 당시부터 뮤지션으로 하여금 원하는 음원값을 책정하게 하는 정책을 편 현대카드 MUSIC이 기존 음원유통사와 큰 접점을 갖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독립마켓으로, 대형 음악 공유사이트에서 습관적, 수동적으로 음악을 듣는 소비자들의 접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들 가운데 유료결제를 한 비율은 전체의 58%. 42%가 공짜로 다운로드받았다. 라디오헤드보다 비율이 높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적극적인 팬이 상당수였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전히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좋다 말았네’의 다운로드 평균 음원값은 976원으로 집계됐다. 0원과 1만 원 이상을 제외한 유료 다운로드 집계 결과다. 100원에서 500원을 결제한 비율이 21%, 500원에서 1000원을 결제한 비율이 18%, 1000원에서 3000원을 지불한 비율도 14%에 이른다. ‘좋다 말았네’를 다운로드한 사람이 지불한 돈이 평균 1000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실질적으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음악 소비자가 생각하는 음원값을 말해준다. CD 가격이 1만 원이 조금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계층에게 물질 형태든 파일 형태든 곡당 적정가격은 1000원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아이튠즈의 곡당 가격(0.99달러)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기도 한다.
주요 소비층인 20~40대의 유료 다운로드 비율도 높았다. 20대의 71%, 30대의 69%, 40대의 65%가 돈을 내고 ‘좋다 말았네’를 샀다. 재미있는 것은 문화 시장의 주된 소비층인 여성이 총매출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는 사실이다. 전체 유료 다운로드 비율에서는 남성이 54%를 기록했지만, 여성의 72%가 평균 1051원을 주고 노래를 산 반면 남성은 59%가 864원을 지불했을 뿐이다.
장기하와 얼굴들과 현대카드 MUSIC 양측이 독립 시스템을 갖췄기에 가능한 실험이었다. 음원 시장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향후 음원 시장이 나아갈 방향 역시 생각해볼 만한 실험이었다. 무엇보다 ‘기업이익 대 창작가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곱씹어볼 만한 데이터들을 내놓은 한국 최초의 실험이었다. 이런 실험이 쌓여 언젠가는 좀 더 풍부한 논리와 구체적인 정책으로 승화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