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뇌가 없는 해파리도, 헤엄치기를 멈추면 죽는 고래도, 대양을 넘어 이동하는 철새도 모두 잠을 잔다. 사진은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 해파리. GETTYIMAGES
뇌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던 잠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해파리의 잠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건 해파리에게는 뇌가 없기 때문이다. 해파리는 몸이 방사대칭 구조이고 자포(刺胞: 찌르는 세포)로 먹이를 포획하거나 적으로부터 방어하며 살아가는 자포동물이다. 신경계가 집중된 기관인 뇌를 가진 좌우대칭동물과 달리 분산 신경계를 지니고 있다. 뇌가 없어 뇌파 측정이 불가능한 해파리가 잠을 잔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이스라엘 바일란대 생명과학부 연구자들은 카시오페아 해파리의 행동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카시오페아 해파리의 활동성이 하루 24시간 주기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시오페아 해파리는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둥근 몸을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런데 그 반복 횟수가 낮에는 분당 37회, 밤에는 32회였다. 낮보다 밤에 분당 반복 횟수가 5회 적은 것이다. 낮에도 간헐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낮잠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해파리의 ‘맥동’이 느린 시간을 합치면 하루 8시간 정도로 공교롭게도 인간 수면 시간과 비슷하다.
연구자들은 또 해파리의 수면을 교란하는 행위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지켜봤다. 만일 해파리의 활동성이 떨어지는 시간이 정말 잠에 해당한다면 사람의 수면을 방해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하루 중 수족관 조명을 끈 12시간에 해당하는 ‘밤중’에 6시간 동안 수족관 물을 휘저었다. 해파리의 잠을 방해한 것이다. 그러자 다음 날 해파리의 맥동이 느린 시간, 즉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밤에 잠을 자려는데 누군가 자꾸 흔들어 깨워 제대로 못 잔 탓에 다음 날 더 오래 자는 것과 같다. 또 수족관에 척추동물의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타자 해파리의 잠이 길어지기도 했다.
해파리가 잠을 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또 있다. 동물이 깨어 있는 동안 생성되는 활성산소 등 노폐물은 DNA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노폐물 양이 몸의 해독 능력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지면 DNA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잠을 자면서 이 노폐물을 없애고 DNA를 보호한다. 연구자들은 해파리에 DNA를 파괴할 수 있는 자외선을 쪼였다. 그랬더니 해파리의 수면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해파리가 자는 시간을 늘려 DNA 손상을 최소화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해파리 같은 자포동물은 좌우대칭동물과 약 5억 년 전에 갈라졌다. 이후 좌우대칭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뇌가 등장했다. 뇌와 잠 중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잠’인 것이다. 뇌를 가지지 않은 자포동물도 잠을 자니 말이다.
끝없이 헤엄치는 고래도 잔다
자포동물과 좌우대칭동물의 공통 조상은 분산 신경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 초기 동물은 왜 잠을 자게 됐을까. 답은 신경세포인 뉴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여느 세포들과 달리 뉴런은 신경회로에 배치되고 나면 좀처럼 재생되지 않는다. 뉴런은 한번 손상되면 돌이킬 수 없기에 잠을 자면서 뉴런을 지키는 데 필요한 활동들에 집중한 것이다. 자는 동안 뉴런은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한다.자는 동안에는 감각계 등이 무뎌져 생존에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잠을 자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은 신경계를 지닌 생물에게 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계가 점점 복잡해져 한 곳에 집중된 뇌를 가진 동물에게는 잠이 더더욱 중요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천적들이 먹잇감으로 호시탐탐 노리는 영양 같은 초식동물도 토막잠을 잔다. 대양을 가로질러 수천㎞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철새도 뇌 좌우 반구가 교대로 잠을 잔다. 죽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헤엄치는 고래도 같은 전략을 쓴다. 동물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복잡하고 큰 뇌를 가진 사람에게 잠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일일이 지키려니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두고 싶다면 진화적으로 오래된 행동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래됐다는 것은 곧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해 사라지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인류가 나타난 지는 고작 200만 년이지만 잠은 5억 년 전부터 있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하루에 4시간 자는 걸 자랑했을 정도로 잠을 시간 낭비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과학이 계속 발달하면서 수면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